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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의 이야기

[조선일보] 신(新) 단양별곡 … 도담의 세 봉우리 얼음 위에 솟았구나

조선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chosun.com)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원문 출처]  http://travel.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1/20/2010012001373.html

 

 

 

[신(新) 단양별곡] 도담의 세 봉우리 얼음 위에 솟았구나

단양=글·김우성 기자 raharu@chosun.com

사진·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 기자 canyou@chosun.com

사진·조선영상미디어 김승완 기자 wanfoto@chosun.com

 

 

단양팔경 24時
사인암·도담삼봉 조명 받으니 仙境이 되다

연단조양(鍊丹調陽). 신선이 먹는 환약과 고루 비치는 햇살을 의미합니다. 선조들은 이 말을 줄여 소백산 자락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을 단양이라 불렀습니다. 단양이 선경(仙境)처럼 느껴지는 까닭입니다.

그 단양은, 언제나 여름과 가을 사이에 있는 단양이었습니다. 물소리가 창창한 여름과 단풍 진 가을의 단양이 주된 매혹의 대상이었죠.

조금은 다른 단양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유난히 추위가 매웠던 지난주, 단양을 다녀왔습니다. 쾅쾅 언 남한강처럼 적막한 겨울에 단양팔경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더군요. 빛이 사라진 밤 도담삼봉은 인공의 빛으로 홀로 환했고, 얼음을 깨며 나아가 만난 구담봉과 옥순봉은 머리에 눈을 얹었습니다.

겨울에도, 단양은 역시 연단조양의 땅입니다. 노래한 이 드물지만 그만큼 한적한 겨울 단양유람을 권합니다.

 

  ▲ 흑백의 풍경에 덧붙는‘수묵화 같다’는 표현은 지금까지 참 많이도 쓰여 왔다.
  그러나 겨울, 눈 덮인 도담삼봉 앞에 서면 상투적이란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한 번 그 표현을 쓰고 싶다.
  정말, 수묵화가 따로 없다.
  /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 기자 canyou@chosun.com
 

PM 5:48 인간이 돌에 보내는 헌사(도담삼봉)

오후 5시 48분. 해가 서산으로 지자 도담삼봉(매포읍 하괴리 84-1)을 향해 야간조명이 켜졌다. 해는 졌지만 아직 햇빛이 남아 있는 시각이었다. 어둠은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 느린 속도에 맞춰 인공의 빛을 받은 도담삼봉이 환하게 떠올랐다. 강 건너 깊게 등을 도사린 도담리 마을에선 가로등이 흑백의 풍경을 노랗게 수놓았고 양편으론 불 밝힌 두 개의 정자가 도담삼봉을 내려보았다.

도담삼봉은 단양팔경 중 하나다. 도담리를 힘껏 휘감은 남한강 위로 홀연히 솟은 세 개의 봉우리에 반한 많은 선조들이 글로 그 경치를 찬양했다. 정도전은 이곳의 이름을 따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지었고 이황은 '신선이 번개 일으켜 강 가운데 거석을 잘라 절경을 이룬 곳'이라 노래했다. 도담삼봉은 '천공의 손으로 이뤄낸 재주(황준량)'였고, '신령스런 곳(홍이상)'이었으며 '기러기 줄지어 나는 듯 하늘로부터 비롯된 세 봉우리(김창협)'였다. 요컨대 인간의 손으로 빚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 도담삼봉이다.

그러나 이 세 개의 봉우리는 그 아름다움 뒤편으로 돌의 수난사를 온몸에 담고 있다. 한 설화에서 도담삼봉은 대홍수의 거센 물살에 밀려 강원도 정선에서 이곳까지 굴러왔다. 보다 믿음직한 이야기에 따르면 봉우리 옆에 있는 천계봉이 강물에 침식당하고 남은 산자락이 바로 도담삼봉이다. 이러나저러나, 돌은 물에 떠밀리거나 물에 깎인다.

물에 의한 돌의 수난사는, 물에 의한 인간의 수난사를 닮았다. 1985년 충주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돼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주민들이 세운 이향정이 수난의 역사를 증거한다. 뿐만인가. 때로 물은 홍수가 돼 마을을 덮쳤다. 김사옥 문화관광해설사는 "단양으로 시집 온 뒤 20년간 두 번 남한강물이 도담삼봉 봉우리 끝까지 뒤덮고 이쪽으로 넘쳐 흘렀다"고 했다. 그때마다 미처 피난하지 못한 도담리 주민들은 강 저편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물의 화가 가라앉길 기원했다. 그렇게 물은 돌을 깎아내고 사람을 내쫓았다.

겨울은 그런 물의 공격이 멈추는 유일한 계절이다. 영하의 기온에 물은 스스로 굳어 돌을 닮는다. 돌은 그 얼음 위로 검은 그림자를 남기며 위용을 드러낸다. 그래서 2008년 단양군이 설치한 야간 조명은, 물보다 돌을 닮은 인간이 돌에 보내는 한편의 헌사 같다.
 
  ▲ 여름철 선암계곡을 가득 채웠을 인파의 흔적은 모두 눈에 묻혔다.
  다만 눈 덮인 강과 상선암 위로 쏟아지는 창백한 햇살이 눈 부시다.
  /조선영상미디어 김승완 기자 wanfoto@chosun.com
 

AM 10:00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다(상선암·중선암·하선암)

단양팔경은 소백산맥 줄기와 남한강, 혹은 그 지류가 상호작용해 빚어낸 경승지다. 이 중 물이 돌을 깎아 빚어낸 도담삼봉과 석문에서 물의 기세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면, 절벽처럼 우뚝 선 구담봉과 옥순봉, 사인암은 돌의 기운이 더 강하다. 하지만 돌과 물의 기세 싸움에서 서로 밀리지 않고 대등한 조화를 이루는 곳이 있다. 선암계곡을 따라 늘어선 하선암(단성면 대잠리 295)과 중선암(단성면 가산리 877), 상선암(단성면 가산리 산69-16)이 그곳. 품도 넉넉해 여름이면 피서객으로 단양팔경 중 가장 붐비는 곳이 이 세 곳이다.

그러나 겨울이면 상황은 역전된다. 여름에 붐비는 만큼 겨울에 가장 사람이 적은 곳도 여기다. 겨울, 돌과 물은 모두 눈에 묻혀 그 경계를 가늠하기 어렵다. 하얀 눈 아래 돌과 물은 기세를 죽인 채 회색이나 검은색으로 서로 비슷했고, 여름날 계곡을 가득 채웠을 인파의 흔적은 모두 지워져 적막했다.

그렇다고 단양까지 와서 이곳을 찾지 않을 이유는 없다. 적막한 만큼 이곳에선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 것들이 들린다. 먼저 빛 알갱이. 계곡 너머 짙푸른 노송 위에 앉은 눈발들이 바람에 휘날리며 눈앞에서 반짝거린다. 그 모습이 꼭 빛의 조각 같다. 둘째, 시간의 수런거림. 선암계곡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간혹 환청인 듯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영하의 기온을 이겨내고 얼지 않은 물이 까맣게 계곡을 지나는 소리다. 얼어붙어 모든 게 멈춘 듯한 겨울, 그 소리는 겨울에도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마지막으로, 생의 흔적. 중선암에 쓰인 '사군강산 삼선수석(四郡江山 三仙水石)'이란 글씨를 보러 가는 길에, 하얀 눈 위 크고 작은 동물 발자국들을 만났다. 삶이 움직인 흔적이다.

물론, 비유거나 착시다. 그러나 모두 겨울이 아니면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것들이다. 겨울의 단양에서 놓치기 아까운 풍경이다.


  ▲ 해질녘 전후로 도담삼봉은 급격히 변신한다.

  오후 5시 30분쯤 수묵화 같던 도담삼봉(위쪽)이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노랗게 빛났다(아래쪽).
  /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 기자 canyou@chosun.com
 

PM 4:00 얼음을 깨며 나아가다(구담봉·옥순봉)

오후 세 시쯤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장회유람선이 오후 4시에 뜬다는 소식이었다.

단양팔경 중 남한강이 충주호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구담봉과 옥순봉은 육지에서 보기 어렵다. 구담봉은 장회나루를 향하는 월악로에서, 옥순봉은 옥순대교에서 형체를 분간할 수 있지만 온전한 모습을 보려면 배를 타고 물 위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선암계곡을 둘러보고 찾아간 장회나루선착장에선 20명 이상이 돼야 배가 뜰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물이 얼어 스무 명이 모여도 배가 뜰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도 했다. 짐짓 포기하고 있던 차에 전화가 온 것.

일찍 도착해 장회나루에서 서성이는 동안 중국인과 태국인이 관광버스를 타고 몰려들었다. 20여명 정도의 그들과 함께 유람선 노들 1호에 올라탔다.

이내 얼어붙은 남한강 위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35t짜리 배의 선수가 얼음을 가르는 소리다. 물보라 대신 깨진 얼음 조각들이 후미에서 출렁거린다. 조영목 선장이 말했다. "이 정도면 얼음 두께가 20㎝"라고. 어른 손 한 뼘 정도의 길이다. 조 선장은 "10년 전쯤엔 30㎝까지 얼었다"며 "당시 멀리까진 못 나갔어도 선착장 주변은 돌았으니, 이 정도면 다닐 만하다"고 했다.

물은 상류부터 언다. 추운 날이 길수록 물과 얼음 사이의 경계는 하류 쪽에 생긴다. 지난 15일, 강원도 태백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은 단양군을 지나는 내내 얼음 아래로 흐르다 옥순대교를 넘는 즈음에서 비로소 얼음을 깨고 바깥 공기와 만났다. 옥순봉과 구담봉을 보러 가는 물길 전부는 얼음으로 뒤덮였다.

꼭 빙해 속을 저어가는 듯한 기분에 빠져 구담봉을 만났다. 기암절벽 암형(巖形)이 거북을 닮고 물속 바위에 거북무늬가 있다 하여 구담이라 불린 곳. 얼음 너머로 거북이 초록 소나무를 등에 업고 누워 있다. 이내 옥순봉도 모습을 드러낸다. 희고 푸른 암벽이 비 온 뒤 죽순이 솟는 것처럼 보여 이황이 옥순봉이라 이름 지었다. 아닌 게 아니라 얼음 위에 솟은 죽순 같다. 그렇게 물은 돌을 닮고 돌은 식물을 닮았다. 역시, 겨울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닮음의 미학이다.

행여 배를 타지 못했다면, 월악로나 옥순대교 위에 설 것. 월악로에서 내려본 남한강엔 물이 얼고 녹길 반복하며 만들어 낸 시간의 무늬가 찍혀 있고 옥순대교에선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계곡 사이에서 울린다.

※장회나루(단성면 장회리 90-3)에 가면 충주호유람선(043-422-1188)과 충주호관광선(043-421-8615)을 통해 배를 탈 수 있다. 일정 인원 이상이 돼야 배가 뜨니 미리 전화해 예약하는 편이 좋다.
 
  ▲ 해질녘 전후로 도담삼봉은 급격히 변신한다.
  오후 5시 30분쯤 수묵화 같던 도담삼봉(위쪽)이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노랗게 빛났다(아래쪽).
  /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 기자 canyou@chosun.com
 

◆강추_단양, 야경을 더 즐기고 싶다면

2008년 단양군은 19억원을 들여 명소마다 야간 경관 조명을 설치해 야경 8경을 조성했다. 도담삼봉을 비롯, 고수대교·상진대교·양백폭포·양백산 전망대·수변무대·장미터널·단양관문이 그곳. 도담삼봉을 제외한 나머지 7경은 모두 단양읍을 항아리처럼 둘러싼 남한강 주변에 있어 한눈에 둘러보기 쉽다. 그러나 색깔이 지나치게 화려해 다소 과장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양백산 전망대만큼은 가볼 만하다. 단양읍내에서 남한강 너머를 바라보면 꼭 보름달처럼 동그랗게 불을 밝힌 곳이 바로 양백산 전망대다. 그곳에 오르면 단양읍내가 한눈에 보인다. 원래 차로 움직일 수 있으나 한겨울엔 눈 때문에 차량 이동이 힘들다. 도보로는 강변에서 정상까지 성인 남자 걸음으로 90분쯤 걸린다. 총 거리는 3.5㎞. 단양읍내에서 고수대교를 건너 우회전해 강변을 따라 약 500m쯤 가다 보면 '양백산 전망대' 표지판이 보인다. 길이 미끄러우니 주의할 것.

단양군이 지정한 야경 8경은 아니지만 본래 단양 8경인 사인암(대강면 사인암리 64)에도 작년 11월 조명이 설치됐다. 추사 김정희가 '하늘이 내려 보낸 그림'이라 극찬한 사인암은 명암을 지워내는 조명으로 얼어붙은 강물 위에 묵중한 중량감을 드러낸다. 그 모습이 괴이하면서도 낯설다.


◆여행문의_단양관광안내소 (043)422-1146,
tour.dy21.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