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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의 이야기

[월간山] 국토 정중앙점

최선웅(한국산악회 부회장·매핑코리아 대표)

영토의 네 극지점과 정중앙점 밝혀둬야

최근 우리나라의 정 가운데가 어디인가를 놓고 지자체간에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현재 국토의 정중앙임을 내세우고 있는 곳은 강원도 양구군을 비롯해 경기도 포천시, 충청북도 충주시, 경기도 가평군, 그리고 강원도 철원군 등인데, 이 중 가장 설득력 있는 조건을 내세우며 의욕적으로 국토 정중앙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곳은 양구군이다.

양구군은 2002년부터 국토 정중앙 찾기에 나서 우리나라 영토의 동서남북 네 극지점을 기준으로 한 중앙위선(38°03′37.5″N)과 중앙경선(128°02′02.5″E)이 교차되는 지점인 양구군 남면 도촌리 일대에 국토 정중앙점을 찍고, 이를 알리는 표지석을 세웠다. 특히 양구군은 2005년 일본에 의해 독도 문제가 불거지자 국토 최동단인 독도를 기준으로 국토 정중앙이 설정된 것임을 부각시켜 독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국토 정중앙 개발사업에 나서야 된다고 촉구하고 있다.

2003년 10월 시로 승격한 포천시는 지리적으로 한반도 중심에 위치함를 내세워 ‘한반도의 배꼽’을 주장하고 있으나, 정작 섬을 제외한 한반도 육지부의 4 극지점을 기준으로 정중앙을 계측하면 그 결과는 북위 38°39′00″선과 동경 127°28′55″선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북한 지역의 강원도 회양군 현리 부근이 된다. 충주시는 가금면 탑평리에 있는 중앙탑과 옛 지명인 중원(中原)과 중주(中州)를 내세워 역사적 관점에서 국토 중앙을 주장하고 있다.

풍수지리학자 최창조의 <땅의 눈물 땅의 희망>이란 책에는 우리나라 국토의 배꼽은 태극적 위치로 봐서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에 위치한 화악산(1,468m)이라 했다.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화악산은 백두산과 한라산, 중강진과 여수, 삭주와 울산을 잇는 3개 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며, 지형도상에서 찍어 보면 우리나라 경위도 상의 중심으로 인식되고 있는 북위 38°선과 동경 127°30′선이 교차하는 지점이 된다. 또 가평군에는 단군이 묻혔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어 단군이 묻힌 곳이 바로 한반도의 정중앙이라고 주장한다.

`지구의 배꼽` 자처하는 곳 많아

라틴어로 옴파로스(Omphalos)는 중심, 중추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로 ‘배꼽’, ‘세계의 중심’을 의미한다. 배꼽은 태아가 탯줄을 통해 모체내의 자궁과 연결되어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받던 자리로 예로부터 배꼽은 생명의 출발점이자 생명력의 원천으로 여겨왔다.

이러한 의미에서 배꼽은 신체의 정중앙에 위치한 것은 아니지만, ‘배꼽’이란 말이 의인화되어 어느 국가나 토지의 중심지를 의미하는 말로 쓰이게 된 것 같다. 지리적 발견 이전부터 인간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바로 세상의 중심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신화, 종교, 예술, 문학, 지리적인 면에서 세상의 중심이 되는 ‘지구의 배꼽’은 그야말로 다종다양하다.

그리스 아테네 북서쪽에 위치한 델포이(Delphoe)에 있는 아폴로 신전에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옴파로스라는 원뿔꼴의 돌이 보관되어 있어 이 유물을 통해 델포이를 ‘지구의 배꼽’이라 부르고 있다. 고대 잉카제국의 사람들도 자기네 나라를 세계의 중심이라 생각했는데, 당시의 수도였던 쿠스코(Cuzco)도 ‘지구의 배꼽’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중국(中國)은 글자 그대로 세상의 가운데에 있는 나라를 뜻한다. 중국은 일찍이 천하관을 지니고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임을 자처하는 중화사상(中華思想)을 형성해 왔다.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었음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고산자 김정호가 쓴 대동지지(大東地志)를 보면 우리나라의 위치를 나타내는 극고(極高)편에 당시 한양의 극고 즉 위도를 37도39분이라 했고, 경도를 나타내는 편(偏)을 북경 동 10도30분이라 했다. 이는 중국의 북경을 중선(中線)이라 하여 현재의 경위도가 생기기 이전까지는 북경이 경도 0도로 천하의 중심이었다는 뜻이다.

이밖에 지리적으로 본 지구의 배꼽은 세계 곳곳에 수없이 많다. 유럽의 배꼽은 스위스의 취리히, 지중해의 배꼽은 몰타이고, 아프리카에서는 아랍세계의 배꼽이라 일컫는 카이로를 위시해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케냐의 관광지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Great Rift Vally), 마다가스카르 섬 등이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인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의 발리섬 등이 ‘지구의 배꼽’으로 불린다. 오세아니아에서는 적도와 경도 180°선인 일부변경선이 교차하는 키리바시가 하루가 시작되는 곳이라 하여 지구의 배꼽임을 자처하고 있다.

남태평양 한복판에 외롭게 떠 있는 이스터섬의 주민들도 오래 전부터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고 있는데, 이를 증명하듯 섬 해안가에는 세계의 배꼽이라 불리는 테피토쿠라(Te Pitokura)라는 직경 1m 남짓 크기의 둥근 돌이 놓여 있다. 이 돌 위에 나침반을 올려놓으면 자침이 방향을 가리키지 못한다고 한다. 호주 중앙부 사막 한가운데 솟아 있는 높이 348m, 둘레 약 10km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단일 바위인 에어스록(Ayers Rock)도 예전부터 토착민들의 신앙 숭배의 산으로, 역시 세계의 배꼽이라 불린다.

영토의 범위를 천명하는 작업

나라별로는 일본의 경우가 단연 으뜸이다. 일본의 영토 네 극지점의 정중앙에 위치하는 효고현(兵庫縣) 니시와키(西脇)시는 ‘일본배꼽공원’을 조성하고 경위도를 테마로 하는 ‘테라돔’을 세워 지역 홍보를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일본은 ‘전국배꼽마을협의회’가 결성될 정도로 일본열도의 중심, 북해도의 중심, 각 지방의 중심을 정해 놓고 자치단체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알래스카와 하와이 섬을 제외한 48주 본토의 정중앙인 켄서스주 레버넌(Lebanon)시에 미국의 지리적 중심지라는 표지석을 세워 놓고 있다.

그렇다면 지구상에서 정중앙은 어느 곳일까. 지리적 개념으로 본다면 적도와 경도 0°인 본초자오선이 교차하는 지점이 지구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이 지점은 육지가 아닌 아프리카 서부 기니만 해상에 위치하고, 지구상의 위치를 나타내는 경위도좌표 역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정중앙이나 중심을 정한다는 것은 기준이 애매하다. 따라서 지구의 배꼽이다 세계의 중심이다 하는 것은 극히 주관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 국가의 영역과 이웃한 국가와의 영역을 한계 짓는 국경선은 한 국가의 영토 범위를 정하는 선으로 국가 판도의 범주를 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래서 세계 여러 나라는 자국의 영토를 지키고 조금이라도 더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일전도 불사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나라도 영토의 네 극지점과 정중앙점을 정확히 측정해 국토의 지리적 위치와 영토의 범위를 국가 차원에서 명확히 밝혀둘 필요가 있다.(월간산 2006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