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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의 이야기

[파란 포토뉴스] 저 맑은 젖줄을 대운하로 끊을 순 없지

파란에서 캡쳐해온 오마이뉴스 기사입니다.

한반도를 관통하는 대운하에 대하여 무엇이 더 소중한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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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맑은 젖줄을 대운하로 끊을 순 없지

 

2008년 05월 11일 (일) 15:44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이기원 기자]
▲ 황지 낙동강 발원지
ⓒ 이기원
인류의 문명은 강을 따라 형성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을 문명의 젖줄이라 부른다. 어찌 사람 뿐 일까? 들숨, 날숨 쉬며 사는 모든 생명체들이 강에 의존해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강원도 태백에는 한반도 중남부 지방의 젖줄인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가 있다. 태백 시내에 낙동강 1300리의 발원지인 황지 연못이 있고, 대덕산 금대봉 골짜기에는 한강 1300리의 발원지 검룡소가 있다. 한반도 중남부의 중요한 젖줄이 모두 태백에서 시작되고 있다.
태백 답사 두 번째 주제는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를 찾아서’였다. 대운하를 공약으로 당선된 대통령이 불도저처럼 밀어붙여 삽질을 시작하면 한강과 낙동강은 어떻게 될까 걱정을 하며 황지 연못과 검룡소의 맑은 물을 눈으로 가슴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낙동강 발원지 황지

간밤 술기운을 뼈다귀 해장국으로 달래고 황지를 먼저 찾았다. 연못은 시내 한 가운데 있었다. 낙동강 1300 리의 발원지를 알리는 안내석이 먼저 맞았다. 연못 주변에는 철쭉이 환하게 피어 있었다. 도심 한 복판에 연못이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 황지 낙동강 1300리 발원지
ⓒ 이기원

여기에서 하루에 솟는 물이 5000 톤이나 된다고 한다. 그렇게 솟은 물이 1300리 낙동강 물길을 따라 흐른다. 솟는 물이 많다보니 맑고 푸른 빛깔이었다. 잔잔한 수면 속으로 도심의 풍경이 차분하게 담겨 있다.

잔잔하지만 흐르는 물이다. 흐르는 물은 살아있다. 살아 흐르는 물은 1300 리 낙동강 물길 따라 흘러 무수한 생명체들의 젖줄이 되고 있다. 유구한 우리 역사 속에서 이 물길은 멈춘 적이 없다. 그 물길 따라 역사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 황지2 흐르는 물은 살아 있다
ⓒ 이기원

"이 연못에 전해지는 전설이 있어요."

"어떤 전설인데요."

"먼 옛날 이곳에 황부자가 살았대요."

태백에서 10년 넘게 근무하신 황재연 선생님이 황지에 전해지는 전설을 들려주었다. 이곳에 살던 황부자는 엄청난 구두쇠였다. 어쩌다 스님이 시주해달라고 오면 시주를 하기는커녕 골탕을 먹여 내쫓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황부자가 외양간에서 쇠똥을 치고 있는데, 한 노승이 시주를 부탁하러 요. 황부자는 시주를 못한다고 해도 버티고 서서 염불을 외는 노승을 보며 화가 치솟았대요. 그래서 치고 있던 쇠똥을 한 삽 퍼서 노승의 바랑이에 넣고 노승을 내쫓았답니다."

그런데 디딜방아를 찧으며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며느리가 쫓겨난 노승을 뒤따라와서 대신 시아버지 잘못을 빌며 쇠똥을 털어내고 쌀 한 바가지를 시주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노승은 며느리에게 큰 변고가 있을 것이니 따라오라고 했다. 따라오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뒤돌아보지 말라고 당부했다.

"대개 이런 얘기는 끝 부분이 비슷해요. 며느리는 아이를 업고 스님을 따라가다가 뒤에서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에 놀라 노승의 당부를 잊고 뒤를 돌아보았대요. 결국 며느리는 아이를 업은 채 돌이 되었다고 합니다. 황부자가 살던 집은 무너져 내려 큰 연못이 되었답니다."
▲ 돌이 된 며느리 상 전설 속의 며느리를 조각한 상, 얼굴 이미지가 서양인 처럼 보여 아쉽다.
ⓒ 이기원

그래서 황지 연못이 생겼다는 이야기다. 전설대로라면 부처님의 자비가 눈부시다. 못된 황부자 혼내주는 대신 1300 리 젖줄 낙동강 물길을 만들어 뭇 생명의 젖줄을 만들어주었으니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

싸리재에서 야생화 꽃길 따라 걸어 넘어가다 고목나무 샘에 도착했다. 고목나무 샘은 물 한 모금 겨우 마실 정도로 수량이 적었다. 검룡소가 한강의 발원지라고 알려지고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고목나무 샘이 진짜 한강의 발원지라 주장한다. 고목나무 샘이 다시 지하로 들어가 검룡소를 통해 솟아오른다는 것이다.
▲ 고목나무 샘 한강의 진짜 발원지란 이야기도 있다.
ⓒ 이기원
바위 틈 돌이끼 사이로 솟아나는 고목나무 샘은 한 모금 떠서 목 추기기도 어려울 정도로 수량이 적었다. 저렇게 작은 샘이 한강 1300 리의 발원지라니 믿겨지지 않았다. 그래도 겉보기와는 달리 ‘샘이 깊은 물’인가보다. 샘이 깊어 가물에 말라붙지 않고 검룡소까지 가서 힘차게 솟구쳐 흘러내려 한강에 이르리라. 누구의 솜씨인지 작고 아담한 나무 조각에 '한강 발원지'란 글자를 써서 세워놓았다.
분주령에서 잠시 쉬고 검룡소로 향했다. 내려가는 길을 따라 흐르는 계곡 물이 맑아 내려가 돌 뒤치면 금방이라도 가재를 만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찔레꽃 피어날 무렵 동네 뒷산 계곡에서 돌 뒤치며 가재 잡던 생각이 그리움과 함께 밀려든다.
▲ 이정표 검룡소와 주차장 갈림길에 서 있다.
ⓒ 이기원
얼마를 내려갔을까. '검룡소 오름길' 안내판이 보였다. 산길 따라 호젓하게 걷는 재미를 느끼려고 일부러 일행보다 먼저 걸었다. 좌우로 늘어선 낙엽송 가지마다 연녹색 순이 돋아나고 있었다. 검룡소에서 흘러내린 생명수를 받아 자라서 그런지 새순마나 자르르 윤기가 났다.
검룡소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일행이 장엄한 검룡소의 모습에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검룡소에서 솟아오른 물은 하얀 물결을 흩뿌리며 용트림 모양으로 계곡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여름 장마철도 아닌데 수량도 많아 흘러내리는 모습 보기만 해도 절로 시원해졌다.
▲ 검룡소 국토지리정보원에 의해 공식 확인된 한강 발원지
ⓒ 이기원
"정말 대단하네요. 저렇게 많은 물이 산골짜기 바위틈을 비집고 솟아오르다니…."
"그래요. 한강의 발원지로 손색없는 모습이지요."
한강의 발원지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이견이 있었다. 하지만 1987년 국립지리원에 의해 한강의 발원지임이 공식 확인되었다.
▲ 검룡소2 검룡소에서 힘차게 흘러내리는 물
ⓒ 이기원
여기서 흘러내린 물은 정선 골지천으로 흘러 조양강이 되고, 정선 나전에서 오대산 우통수와 만나 영월 동강으로 흘러간다. 동강은 다시 영월 서강(평창강)과 만나 남한강이 되어 흐르다가 원주에서 섬강과 만나 더 큰 물길을 만들어 흘러가다 북한강과 만나 하나가 된다.
"저 맑은 물길을 마구잡이로 파헤쳐 운하를 만든다니 말이 안 돼요."
"미친 짓이죠."
태백에서 솟아 오른 맑은 물은 낙동강이 되어 한강이 되어 한반도의 중남부의 생명수가 되고 있다. 그 소중한 젖줄이 대운하로 단절시켜서는 안 될 일이라고 검룡소 맑은 물을 내려다보던 사람들이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