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카페 '좌충우돌 백두대간 도전기(http://cafe.daum.net/baekdudaegan-clib)'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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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지명 해설 #2(여원재~구시봉)
[여원재]
남원시 운봉과 이백면을 잇는 고개로 일명 연재라고도 한다. 고개 서편으로 평원을 이룬 구릉이 운봉면이다. 섬진강 상류가 되고 섬진지류는 남원시가지를 거처 광양만으로 빠진다.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국경 이었다.
왜구의 손길이 거쳐 간 자신의 왼쪽 가슴을 도려내고 자결하였다는 이 고갯마루 주막여인의 전설이 있는 곳이다. 자결한 이 여인의 원혼은, 고려 말 우왕 때 이성계가 운봉과 함양 등지에서 노략질 중이던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운봉읍 한복판의 황산으로 진군할 때, 백발의 노파로 나타나 승전의 전략을 일러주었다 한다. 왜장 아지발도를 무너뜨린 이성계가 돌아가는 길에 여원(女院)이란 사당을 지어놓아 이 고개이름이 여원재가 되었다는 것. 주민들은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다준 제비가 넘나들던 고개라 하며 연재라고 부른다.
여원재 남원쪽 고갯마루의 암벽에는 왼쪽 가슴이 없는 마애불이 있다고 하는데, 전설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합민성] 641m
합민성(장교산성, 할미성, 합미성, 방학산성)은 남원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산성으로, 기록에 의하면 동학농민혁명 때 운봉 민보군의 거점이었다고 한다. 조선 말 일목장군 박봉양이 동학군에게 참패를 안긴 곳이 운봉. 농민군이 패전하였다는 방아치와 관음치의 위치 또한 이곳 장치(방아치)와 합민성의 서북쪽 까막재(관음치)로 추정된다. 운봉읍 장교리의 합민성(合民城)은 이 때 쌀을 저장해 뒀던 곳이라 하여 합미성(合米城)으로도 불린다.
또한 남원시 이백면 주민들은 방학산성이라 부른다. ‘남원지’에 ‘재장교리 후 나제시고루(在長矯里 後 羅濟時古壘)’라 하였고 ‘합민성은 석축으로 주위 약 200간(약300미터)이며 산정에 있다’고 하였다. 성내 최고봉은 645m다. 성곽은 능선을 따라 서남 방향으로 누에고치 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성벽 주위는 319.6m다. 성곽의 서남각(西南角)에 우루(隅樓)를 세워 폭 6m, 길이 8m의 돌출된 적대가 있고, 그 동편에 남문, 북편에 우루대 서북각에 서문 등 세 군데의 성문 유지가 있고 서북편 중앙에 샘터가 남아 있다. 성내에서는 다수의 기와조각, 토기조각 등 삼국시대의 유물이 채집되었다.
[까막재(관음치)]
간엄치, 혹은 간암재라고도 하며 덤몰(가동)에서 산동면 대기리로 가는 고개이다. 고종 31년(1894) 11월 김개남 남원 접주가 이는 동학군이 운봉 관군에게 패퇴한 곳이다.
합민성에서 서쪽 시루봉으로 향하는 방향(서쪽)에 위치, 대간길에서는 벗어나 있음
[고남산] 846.4m
정상의 조망은 매우 훌륭하여 서부지리: 덕두산-바래봉-팔랑치-부운치-고리봉의 기맥과 반야봉아래의 크고 작은 무수한 봉우리와 도도히 뻗치는 대간의 능선이 대 장관이다. 북동으로 보면 봉화산 백운산 덕유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편으로 정읍 내장산과 광주의 무등산이 날씨 따라 오락가락 한다. 지형을 살펴보면 이곳 고남산이 남원 함양일대의 중추적인 방위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고남산 정상 부근과 함양읍 성터 부근의 지금도 남아있는 옛 성터 자리들과 작은 고을 너른 들판에 우뚝 솟은 범상치 않는 산세의 기운이 봉화대의 상징 이였지 않나 짐작된다. 고남산 산불순찰 촌노(村老)의 귀뜸이 이성계 장군이 고남산에 제단을 쌓고 큰 제를 지낸 후 왕위에 등극했다 한다. 정상 바로 아래에는 백여평의 헬기장과 통신시설물이 자리하고 있음도 이 일대 시원하게 열려있는 고남산의 조망 덕이 아닐까 한다.
이성계가 황산벌 대첩을 하기 전, 멀리 운봉쪽을 바라보니 고남산이 유난히 뾰족하여 이곳에 올라 제단을 쌓고 서쪽 기슭에 있는 창덕암 약수터에서 목욕재계하고 3일간의 산신제를 올려 천지신명께 승리를 기원하고, 황산(荒山)에서 대승을 거두고 왜장 아지발도를 사살하였다. 왜장 아지발도는 일본에서 출발할 때 애첩이 조선 황산의 산신이 크게 노하여 불길하다 하여 출정을 만류하였으나 애첩의 목을 단칼에 베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아지발도가 황산에서 죄 값을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통안재] 작은 독골재 670m
권포에서 산동 월석리 독골로 넘어가는 고개. 독골재에 비하여 동네 안쪽에 있는 고개란 의미. 동리 안 고개.
[매요마을]
이 마을은 원래 풍수설에 의하면 옛부터 말의 허리처럼 형국이 생겼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말마(馬)자와 허리요(腰)자를 합하여 마요리라 하였는데 임진왜란 때에 고승 유정대사(사명당)가 산천을 유람하다가 마요리에 당도하여 매화는 눈속에서도 시들지 않고 피는 꽃이며 향기가 순결하여 이 마을에서 낳은 사람들은 매화같이 순결하고 선량할 것이니 마요리를 매요리(梅要里)로 고치는 것이 지형과 인심에 합당하다고 한 후에 마을 이름을 지금의 매요리로 부르게 되었다.
[유치재]
매요리와 가산리의 중간, 사치마을과 연결되는 삼거리다. 인근의 마을은 모두 남원이지만 유치재 자체는 장수군 지역이다.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간다. 유치재를 매요마을 서쪽의 언덕으로 표시한 지도는 착오다. ‘흐름고개’, 즉 경사가 거의 없는 고개라는 의미다. ‘버드나무 고개’로도 부른다.
[사치재(아실재)] 498m
697봉과 618봉 중간인데 현재는 88올림픽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서는 사치마을이고, 동은 인월면 아곡리다. 조심스럽게 88올림픽고속도로를 횡단하여 원래의 대간길을 따라가라 수도 있고, 사치마을로 우회하는 도로를 따라 유치재로 직접 갈 수도 있다. 유치마을에는 장수시내버스가 들어오고, 아곡리에는 남원시내버스가 들어온다. 동쪽 1Km 지점에 88올림픽고속도로 지리산 휴게소가 있다. ‘모래언덕고개’라는 뜻이다. 이 지역은 암릉은 전혀 없고 고속도로 주변과 사치재 아래로 논과 밭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풍수설에 의하면[飛雁落沙비안낙사] 기러기(雁)가 모래밭에 앉은 형국이라 한다
[새목이재]
시리봉과 697봉 중간에 허리를 낮춘곳이다. 남동쪽의 임도와의 사이에 샘터가 있다. 인월면 아곡리인 남쪽 2km지점 88올림픽고속도로 옆에 시내버스가 들어온다. 새목이재는 새의 목에 해당되는 고개라는 뜻이다
[아막성]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운봉은 신라때 모산현이라 하였으며 따로 이 아막성(阿莫城),아영성,경덕,운성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이를보면 운봉은 신라후기에 생긴것임을 알수있다. 이무렵 백제의 군사기지는 남원에 있고,신라의 군사기지는 모산에있어 이때 백제는 신라를 막기위해 수정산성,준향산성,합민성,가산산성,성리산성의 여러 성을 두었고, 백제는 운봉 가산으로부터 정령치 이르기까지 이중으로 순라로를 설치하였으니 이로 미루어 두나라 사이에 국경분쟁이 치열했음을 알수있다. 그중 아막산성은 옛날 백제에서는 아막성,신라에서는 모산성으로 불렀던곳으로, 백제와 신라가 주도권을 잡기위해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다. 백제 무왕3년 4만의 백제군사가 이곳에서 신라군에게 전멸당했다고 한다. 성 둘레는 약 630여m에 이르고 기와조각과 백제 토기편들이 발견되고 있다. 현재 북문지와 수구가 있었던 곳으로 보이는 동쪽에 직경 1.5m의 정호지가 있다.(전북 지방기념물 제 38호)
모산성은 삼국사기에서 아막산성이라고도 하며, 지금의 운봉으로 신라때 모산현,또는 아영성,아막성이라고도 적었다. 판소리 동편제의 발상지인 운봉의 옛이름은 지금도 땅이름에 널리 쓰이는 아막이란 말과 잇닿아 아막골/아막재였던것으로 보인다.
[복성이재] 601.4m
전북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고개로서, 산줄기는 시리봉과 봉화산을 잇고, 물줄기는 낙동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이다.
임진왜란(1592년)이 일어나기 전, 기인 변도탄이 천기를 보고 국가에 큰 전란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고, 대비 할 것을 상소하였으나 평화로운 기운을 어지럽게 한다 하여 관직을 삭탈 당했다. 그후 전란을 대비하며 피난처를 탐색하던 중, 천기의 기운이 남쪽으로 비쳐 그 빛을 따라 지리산으로 향하는데 북두칠성 중에 복성 별빛이 이곳에 멈추었다. 변도탄은 별빛 멎은 곳에 자리 잡아 움막을 짓고 살았다. 이런 내력으로 인해 이 고개 이름이 복성이재가 되었다. 이후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며 복성이 마을을 이루었다. 복성이재의 남쪽에는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가 서로 영토 쟁탈전을 벌였던 아막산성(전북지방기념물 제38호)이 있다.
[치재]
치재마을의 서쪽 언덕위에 있는 고개다. 흔이 이용하는 교통로는 아니다.동쪽가까이에 임도가 올라와있다. 이지역은 각종 버섯류와 산 과일,산채나물,고랭지채소등을 많이 생산하는 지역으로 주로 대간 동쪽사면에서 이루어진다. 고개라는 뜻이 峙와 재가 합쳐서 지명이 되었다. 치재에서면 흥부마을로 유명한 아영리 성리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이 마을에는 판소리에 나오는 화초장바윗거리,흰죽배미,노리다리등의 지명이 실제로 있다고 한다
[봉화산] 919.8m
명산 지리산에 가리어 그 이름조차 생소하게 들렸던 남원의 봉화산은 덕유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 남부 구간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산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라북도 남원시와 장수군, 그리고 경상남도 함양군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무릇 우리나라에 봉화산이란 이름 붙은 산들이 수도 없이 많은 것처럼 이 산 역시 과거 봉화가 피어올랐던 산임에는 틀림없었을 터이다.
동네 뒷산처럼 보이던 봉화산은 5월 중순이 되면서 그 모습이 크게 달라진다. 해발 400∼500m 고지대에 위치한 아영면으로 접어들면서 단연 눈에 띄는 모습은 봉화산 서쪽 능선을 감싸고 있는 온통 붉은 철쭉밭이다. 마치 불타오르는 듯한 모습은 그저 말없이 지나는 여행객들이라 할지라도 입을 떡 벌어지게 할 만하다.
철쭉군락은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을 가로지르는 일명 '치재'(현지 주민들은 '짓재'라 한다)에서 백두대간 동쪽 능선을 타고 올라가 첫번째 봉우리에서부터 약 500m 구간에 걸쳐 등산로와 등산로 좌우 산비탈을 비집고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이 구간은 말 그대로 철쭉밭이다. 사방 팔방을 둘러보아도 철쭉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 심지어 좌우로 휘영청 불거진 철쭉나무들로 인해 산길이 아예 '철쭉터널'로 되어있는 곳도 있다.
봉화산 철쭉은 선연한 붉은빛을 띤다. 이곳 사람들은 봉화산 철쭉이 오히려 남원 운봉의 유명한 바래봉 철쭉이나 또는 심지어 지리산 세석고원의 철쭉보다도 더 곱고 화사하다고들 말한다.
이 철쭉밭에서 봉화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능선길 곳곳에도 작은 규모의 철쭉군락이 듬성듬성 이어진다. 하지만 멀리 보이는 봉화산 정상까지는 1시간여를 더 가야 하며, 능선 오르막길인데다가 어떤 곳은 산길을 헤치고 나가기에도 쉽지 않을 만큼 철쭉 가지가 산 길을 가로막아 가뜩이나 좁은 등산로가 비좁아지기도 한다. 그래도 모름지기 산행을 목적으로 왔다면 국토의 등줄기 백두대간 산마루를 타고 철쭉 숲을 헤치고 또한 넓게 드리워진 억새평원을 지나 봉화산(919.9m) 정상에 서봐야 할 일이다.
봉화산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막힘없는 조망이 전개된다. 북으로는 전북의 오지, 장수군의 깊은 산골 지지계곡 골짜기 좌우로 장수의 진산 장안산(1,237m)과 무령고개, 그리고 경남 함양과의 경계인 백두대간 백운산(1,279m)의 웅장한 산줄기가 눈앞에 버티고 서 있다. 뒤돌아 남쪽을 바라보면 아영면 고원지대 들판너머로 천왕봉(1,915m)을 비롯, 반야봉과 바래봉까지 이어지는 명산 지리산의 장쾌한 산맥이 우뚝 솟아있다. 동으로는 함양 땅과 멀리 거창에까지 이르는 경상도 산하의 풍경이, 서쪽 아래로는 그림 같은 장수군 번암면 일대의 산골마을 풍경과 그 뒤로 뾰족하게 솟아 오른 만행산(910m) 등, 겹겹이 이어진 전라도 땅의 첩첩산중이 펼쳐진다.
봉화산 정상의 조망도 그렇거니와 특히 5월 철쭉이 아니더라도, 가을철에 이곳을 찾아도 후회하지 않을 듯싶다. 수만 평 드리워진 억새밭은 이웃한 지리산 만복대의 그것과도 견줄 만하기 때문이다. (자료 출처 : 숲ON)
[광대치]
장수군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지지리계곡과 함양군 대안리를 나누는 고갯길이다. 광대치 쉼터에서 대안리 대상동으로 내려서는 길이 갈라진다, 봉화산을 앞두고 만나는 870봉에서 대간은 경상남도와헤어져 전라북도 땅으로 진행한다.다시 경상도를 만나는곳은 지리산 반야봉남쪽의 삼도봉이다. 광대치는 넓고 큰고개라는 뜻이다. 동서 양쪽에 계곡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 계곡을 사이에 두고 동쪽 능선과 서쪽능선은 해발이 높아 산 속에 갖혀 있는 형상이다
[월경산] 981.9m
대간이 백운산을 거치면서 중치에서 그 기운이 잠시 떨어지는듯 하다가 월경산에서 다시 원상을 회복한다. 정상은 대간에서 150m쯤 벗어나 있다. 백운산을 한발치 떨어져서 관찰할 수 있는곳이다. 동북쪽에 위치한 백운리에서의 시각으로 '달이 기우는 산'이란 뜻이다.
[중치(중재)]
서쪽으로 장계와 번암면을 연결하는 2차선 포장도로가 남북으로 진행한다. 백운산의 남쪽 사면과 중치 부근은 목장이 여러 군데 여서 목초를 나르기 위한 임도가 어지럽게 흩어져있다. 중치와 중기마을은 임도로 연결되어 있다.
'가운데에 있는 고개'라는 뜻인데 이곳에서는 '백운산과 월경산의 가운데'라는 의미다. 운산리에 이 고개 이름을 딴 중재마을이 있다.
[중고개재]
고개의 동쪽 백운산 자락은 신라 영은조사(靈隱祖師)가 창건한 영은사지를 비롯해 많은 암자가 있는데. 특히 선농일치(禪農一致)에 의한 선농불교를 제창한 용성스님이 평소 선사의 지론인 선농일치를 몸소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호미를 들고 세운 농장인 화과원이 이곳에 있다. 그래서 화과원 동쪽 백운산을 넘는 고개는 절고개이며, 중들이 많이 넘나들었다는 이 고개는 중(衆)고개라는 이름이다. 용성스님은 기미독립선언서 대표 33인중 한 분이다.
[백운산] 1278m
백운산은 전북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와 경남 함양군 서상면, 백전면에 경계를 하고 있다. 백운산의 이름은 흰백(白), 구름운(雲)을 써서, 산이 높아서 산봉우리에 항상 흰 구름을 감싸 안고 있는 산이라 뜻이다. 백운산의 물줄기는 서쪽은 백운천을 통하여 섬진강으로 흘러들고, 동쪽은 옥산천을 통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백운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서쪽으로는 장안산과 괘관산, 북쪽에는 깃대봉과 남덕유산, 남쪽으로는 월경산과 봉화산 등이 보인다.
백운산을 만산홍엽의 가을 단풍과 금상첨화로 산허리마다 흐드러진 갈대와 싸리나무, 그리고 산죽이 한데 어우러져 비경의 극치를 이루는 산으로 유명하다.
[선바위고개] 1040m
백운산에서 영취산을 가다보면 만나게 되는 작은 고개. 고개 위에 큰 바위 하나 있음.
[영취산] 1075.5m
장수 영취산((靈鷲山)은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 분기점으로 함양 진산인 백운산에서 백두대간이 육십령으로 북상하는 도중에 거치는 산이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금남호남정맥줄기가 갈라져 나간다. 바로 무령고개를 지나 장안산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또한 영취산의 물줄기는 동으로는 낙동강, 남으로는 섬진강, 북으로는 금강을 가른다. 북으로 남덕유산이, 서쪽으로 장안산이, 남으로 백운산이 조망된다.
장수영취산은 신령령(靈), 독수리취(鷲)를 쓰는데, 그뜻은 산세가 '빼어나다'. '신묘하다'. 신령스럽다는 뜻으로 산줄기와 물줄기의 요충지인 이름에 걸맞은 이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옛 지도상에는 영취산의 이름이 없었다. 혹자들은 장안산을 영취산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는 장안산이 주변의 산줄기 중에서 주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영취산은 13개 정맥 중 3개의 정맥을 가지 친 중요한 지점이다. 장안산-팔공산을 뛰어넘어 진안의 명산 마이산의 금남호남정맥, 대둔산을 경유 부여 부소산으로 빠지는 금남정맥, 내장산을 경유 광주무등산-순천조계산-광양백운산으로 떨어지는 호남정맥이다. 동으로 낙동강 서남으로 섬진강, 서북으로 금강을 발원하는 삼강 분수령이다. 영험한 수리취는 무엇을 의미할지 아마도 호남3대정맥 발원지(發源地)영취산(靈鷲山) 영험한 독수리 산으로 당당함을 표현함이 아닐까?
장수군, 함양군 도 군계의 백운산-영취산은 이 지역 정신적 지주의 산이다.
- 산이 물을 가르는 상징적인 곳, 장수 수분재(水分峙)
호남정맥의 시발점인 영취산에서 서진(西進)하여 완주의 주화산까지가 섬진강과 금강을 가르는 산줄기이다. 19번 국도가 호남정맥을 관통하는 곳이 수분치(水分峙)인데 이곳이 산이 물을 가르는 상징적인 곳이다. 금강의 발원지는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 금남호남정맥의 산줄기인 신무산(896.8m) 북동계곡의 ‘뜬봉샘’으로 알려져 있다. 장수는 산고수장(山高水長), 즉, 산이 높고 물이 긴 고장이다. 이 때문에 이름도 긴장(長), 물수(水)를 쓴다.
수분치(水分峙)는 섬진강과 금강의 분수령(分水嶺)이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이름이 수분재이며, 지명도 물을 나눈다는 뜻으로 장수읍 수분리(水分里)이다. 특히, 수분치에서 서쪽으로 0.5km 위치에 있는 원수분마을 뒤산인 신무산 기슭에는 금강의 발원샘인 ‘뜬봉샘’이 위치하고 있다.
실제로 옛전에 이 수분재에 집이 있었는데, 이집의 지붕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천수(天水)가 남쪽가면 섬진강, 북쪽으로 가면 금강의 물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수분재는 주유소와 휴게소 등이 들어서서 분수령을 구분하기가 어렵다. 다만, 분수재 위에 있는 소나무를 정맥꾼들이 ‘수분송(水分松)이라고 부르면서 이를 분수령으로 삼고 있을 뿐, 농경지 개간으로 정맥의 능선이 뭉개져 능선 구분도 어렵게 되어 있다.
- 팔공산에서 만나는 네 줄기의 강줄기
영취산에서 서진하던 정맥(正脈)은 수분재에서 서북(西北)으로 급히 방향을 틀어 신무산을 거쳐 국도 13번과 만나는 차고개을 건너 팔공산에 이르게 된다.
팔공산은 섬진강 발원지 데미샘을 품고 있는 산이다. 팔공산은 전북의 장수군과 진안군의 경계를 이루는 산인데 팔공산을 중심으로 오른쪽인 동쪽으로 흐르면 금강의 물줄기가 된다. 호남정맥이 금강과 섬진강을 가르는 산줄기라 했으니 왼쪽으로 흐르면 당연히 섬진강의 물줄기가 된다.
그런데 팔공산에서 서진하여 분기하는 지맥이 있다. 마령치를 건너 구름재에 이르면 이 지맥은 다시 스스로 분기하는데 오른쪽으로 분기해간 지맥이 성수지맥이요, 왼쪽으로 분기해간 지맥이 개통지맥이다. 이 지맥은 장수-진안-임실군의 경계이기도 하다. 이리하여 팔공산에서 보면 네 개의 유역을 만나게 된다. 팔공산의 오른쪽을 흐르는 금강유역이 그 하나요, 성수지맥과 팔공산의 앞으로 진행하는 호남정맥 사이의 섬진강이 그 둘이며, 영취산에서 팔공산을 돌아 개통지맥으로 갈리는 요천이 그 셋이며, 마지막 넷은 성수지맥과 개통지맥으로 갈리는 오수천이다.
[호남정맥]
전라북도 장수군 주화산(珠華山)에서 뻗어 내장산에 이르러 전남 지역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다시 전남 광양시의 백운산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의 종착지인 주화산에서 갈라져 남서쪽으로 내장산에 이르고, 내장산에서 남진하여 장흥 제암산(帝巖山)에 이르며, 제암산에서 다시 남해를 끼고 동북으로 상행하여 광양 백운산(白雲山)에 이르는 산줄기이다. 이 산줄기는 영산강 유역을 이루는 서쪽 해안의 평야지대와 섬진강 유역을 이루는 동쪽의 산간지대로 갈라놓았다. 이 산줄기의 산들은 대체로 곰재·만덕산·경각산(鯨角山)·오봉산·내장산·백암산·추월산(秋月山)·산성산(山城山)·설산(雪山)·무등산·천운산(天雲山)·두봉산(斗峰山)·용두산·제암산·일림산(日林山)·방장산(方丈山)·존제산(尊帝山)·백이산(伯夷山)·조계산·희아산(戱娥山)·동주리봉·백운산 등이다.
[금남호남정맥]
전북 장수의 장안산(長安山:1237m)에서 서북으로 뻗어 무주의 주화산(珠華山:600 m)까지 약 65km에 이르는 옛 산줄기의 이름.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백두대간(白頭大幹)에서 갈라져 금남정맥(錦南正脈)과 호남정맥으로 이어주는 산줄기이다. 장안산에서 수분현(水分峴:530m) ·팔공산(八公山:1151m) ·성수산(聖壽山:1,059m) ·마이산(馬耳山:667m) ·부귀산(富貴山:806m)으로 이어져 주화산에서 끝난다. 또 주화산에서는 금남정맥이 시작되어 호남정맥으로 이어진다. 또 이 산줄기의 팔공산 서사면(西斜面)에서 발원하는 천천(天川)이 북류하여 금강을 이루고, 남사면(南斜面)에서 발원하는 오원천(烏院川)이 섬진강을 이룬다.
[낙동강]
영남지방 전역을 유역권으로 하여 그 중앙 저지대를 남류하여 남해로 흘러드는 하천. 길이 506.17km. 유역면적 2만 3384.21㎢. 압록강(鴨綠江) 다음가는 한국 제2의 강이다. 강원 태백 함백산(咸白山:1,573m)에서 발원하여 상류부에서는 안동을 중심으로 반변천(半邊川)을 비롯한 여러 지류를 합치면서 서쪽으로 곡류하다가 함창(咸昌) 부근에서 다시 내성천(乃城川)·영강(嶺江) 등 여러 지류를 구심상(求心狀)으로 받아들이고, 유로(流路)를 남쪽으로 돌려 상주(尙州) 남쪽에서 위천(渭川)을, 선산(善山) 부근에서 감천(甘川), 대구(大邱) 부근에서 금호강(琴湖江), 남지(南旨) 부근에서 남강(南江)을 합친 뒤 동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삼랑진(三浪津) 부근에서 밀양강(密陽江)을 합치고 나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남해로 들어간다. 옛날에는 내륙지방의 교통동맥이 되어 조운(漕運) 등에 크게 이용되면서 강기슭에 하단(下端)·구포·삼랑진·수산(守山)·풍산(豊山)·안동 등의 선착장이 번창하였고, 또 6·25전쟁 당시에는 유엔군의 최후 방어선이 된 바 있다. 한편, 김해삼각주 말단부에 있는 을숙도(乙淑島) 일대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철새도래지이다.
[섬진강]
길이 212.3 km. 유역면적 4,896.5 km2. 전북 진안군과 장수군의 경계인 팔공산(八公山)에서 발원하여 진안군 백운면(白雲面)과 마령면(馬靈面) 등에 충적지를 만들고, 임실군 운암면(雲岩面)에서 갈담저수지로 흘러든다. 곡성읍 북쪽에서 남원시를 지나 흘러드는 요천과 합류한 후 남동으로 흐르다가 압록 근처에서 보성강과 합류한다. 그 이후 지리산 남부의 협곡을 지나 경남 ·전남의 도계(道界)를 이루면서 광양만(光陽灣)으로 흘러들어간다. 대체로 강너비가 좁고 강바닥의 암반이 많이 노출되어 있어 항해하는 데는 불편하다.
[데미샘]
데미라는 말은 더미(봉우리)의 전라도 사투리. 금남호남정맥의 산줄기인 팔공산 북서쪽의 '천상데미(하늘에 오르는 봉우리)' 서쪽 기슭, 진안군 백운면 원신암마을 북쪽 계곡 상추막이골에 위치. 천상데미에 있는 샘이라 하여 데미샘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고 수정같이 맑고 이가 시리도록 차가우며 다른 어떤 샘에서도 맛볼 수 없는 미묘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무령고개] 900m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금남호남정맥을 넘는 첫 고개로, 마치 춤추는 용과 같다 해서 무룡이라고도 불린다.
[민령]
싯대봉과 영취산 사이에 있는 중요한 참고점이다. 백운산은 논개의 고향이다. 생가는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이고, 무덤은 경남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방지마을이다. 민령은 바로 논개의 생가와 무덤을 오가는 대간의 고갯길이다. ‘밋밋한 고개’라는 우리 이름인데, 소리에 따라 ‘岷’이라는 한자를 음차하였다. (신동길저/뫼따라 하늘까지 中)
[깃대봉(구시봉)] 1014.8m
장수군 장계면과 경남 함양군 서상면의 경계에 있다. 옛날 임금님이 신하나 백성들 중에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땅을 하사했는데, 이를 사패지(賜牌地)라 했고, 이 땅에는 누구의 사패지라고 하는 깃대를 꽂아 놓은 데서 깃대봉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깃대봉은 특히 가을의 억새와 구절초 향으로 유명하다. 정상에 오르면 북으로 남덕유산, 동으로는 기백산, 남쪽으로는 장안산과 백화산이 보인다. 정상에는 구시봉으로 표지석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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