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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정맥 자료

[월간山] 13세 소녀가 백두대간을 종주하다

월간山 홈페이지(http://san.chosun.com)의 '화제&인물'란에 실린 기사입니다.

13세 소녀가 백두대간을 종주했다는 기사입니다.

김은비양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원문출처] http://san.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8/11/20110811014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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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 소녀가 백두대간을 종주하다
초등 6년 김은비양, 가족과 함께 평균 시속 2.6㎞로 24차례에 끝내

 

최연소 백두대간 종주자는 과연 몇 세일까? 기록을 종합 집계할 기관이 없어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아마 초등학교 6학년인 13세 김은비양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은비양은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09년 6월 6일 새벽 2시 진부령에서 출발해서 2011년 5월 6일 6학년이 돼서 중산리에 도착, 꼬박 2년에 걸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누구나 할 수 있을 듯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백두대간 종주, 말이 2년이지 어른도 하기 힘든 백두대간 종주를 10세를 이제 갓 넘긴 어린이가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매번 꼭두새벽에 감기는 눈을 뜨고 일어나 한 번에 무려 20~30㎞씩이나 걷는 강행군을 계속했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한편으로 애처롭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사진을 보면 출발 당시 보송보송하던 얼굴이 어느덧 한결 성숙해진 듯한 느낌이다.

 

▲ 2009년 9월 백두대간 덕항산 정상 비석에서 아빠와 함께 섰다.

 

2년여의 백두대간 종주를 끝낸 은비의 첫 마디는 “커다란 숙제를 끝낸 것 같다”고 어른스럽게 소감을 밝혔다. 이렇게 큰 숙제를 그렇게 어린 나이에 해결했는데, 앞으로는 어떤 숙제가 닥쳐도 무난히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기특한 은비의 종주를 한번 따라가 보자.

 

은비의 첫 산행은 두 살 되던 해 아빠를 따라 간 주왕산에서 시작됐다. 업고 걷고 7시간여 주왕산을 누볐다. 그것을 기억하는지 모르는지 그렇게 시작된 산행이 급기야 백두대간 종주로까지 이어졌다.


2009년 6월 출발, 2011년 5월에 완주
2009년 6월 6일 꼭두새벽, 아빠는 은비를 깨웠다.

 

"은비야 백두대간 종주하기로 했잖아. 일어나라, 가자"

부스스 일어난 은비는 눈을 비비며 귀찮은 듯 “왜 내가 산에 꼭 가야 돼”라며 항변한다. 아빠는 "중학교 올라가면 시간이 없으니 초등학교 때 끝내기로 아빠랑 약속했잖아"하며 다시 다그친다.

 

마침내 열한 살짜리 은비의 백두대간 대장정이 시작됐다. 초여름이었지만 새벽 찬공기를 맞으며 아빠와 함께 출발지 진부령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출발한 차는 새벽 2시 30분쯤 진부령 고개에 도착했다. 등산복으로 단단히 무장한 은비는 아빠와 엄마, 고모, 이렇게 넷이 힘차게 첫발을 내디뎠다.

 


▲ 암벽 밧줄을 잡고 오르는 게 재미있다는 은비가 밧줄을 잡고 오르고 있다.

 

무사히 첫 종주산행을 마친 은비는 2009년 6월 21일 두 번째 종주 산행지인 미시령으로 향했다. 미시령에서의 산행 출발시간은 모두들 잠든 새벽 2시 15분. 은비에게는 새벽에 잠을 잘 수 없다는 게 너무 힘들다. 이날은 미시령~황철봉~저항령~마등령~오세암을 거쳐 백담사까지 18㎞를 걸었다.

 

지난 번 종주에도 가는 길에 비가 부슬부슬 오더니 이번에도 비가 내렸다. 우중에 황철봉 그 난코스 산행은 은비에게는 정말 만만찮은 구간이다. 출발한 지 한 시간쯤 지나 시작된 너덜겅은 은비 키보다 더 큰 바윗덩어리들이다. 두 발로 걷기 힘들 정도로 미끄럽다. 네 발로 기다시피 걸었다. 은비 뒤에서 아빠가 조심스레 따라 올라갔다.

 

은비가 한 발짝 먼저 올라와 뒤따라오는 아빠에게 물음을 던졌다.
"아빠, 산이 좋아?"
"좋지는 않은데, 산에 오면 마음이 차분해져."
"그럼 산을 좋아하는 거네, 뭐."
"아빠는 은비랑, 엄마랑 우리 가족이 이렇게 산행을 같이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단다." 은비는 아무 말 없이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이어 2주 뒤 7월 4일엔 한계령~서북삼거리~끝청~대청~희운각~천불동계곡~설악동소공원으로 하산하는 강행군이 계속됐다. 7월 19일은 한계령~망대암산~점봉산~오색삼거리~단목령~북암령~조침령까지 약 23㎞를 완주했다.

 

8월 15~16일엔 구룡령 진고개~약수산~응복산~만월봉~신배령~두로봉~신선목이~동대산~진고개까지 23.8㎞, 8월 29일엔 진고개~노인봉~소황병산~매봉~곤신봉~선자령~대관령까지 24.7㎞, 9월 5일엔 대관령~능경봉~고루포기산~닭목재~화란봉~석두봉~들미재~삽당령까지 약 27㎞, 9월 12일엔 삽당령~두리봉~석병산~기뱅이재~생계령~백봉령까지 약 17.3㎞, 9월 19일엔 댓재~황장산~큰재~자암재~환선봉(지각산)~덕항산~구부시령~푯대봉~건의령~삼수령(피재)까지 약 26㎞, 10월 10일엔 피재~매봉산~비단봉~금대봉~두문동재~은대봉~함백산~만항재~수리봉~화방재까지 약 21㎞, 10월 24일엔 화방재~장군봉~천재단~깃대배기봉~신선봉~곰넘이재~구룡산~도래기재까지 약 23.8㎞, 11월 7일엔 도래기재~옥돌봉~박달령~선달산~늦은목이~갈곶산~마구령~고치령까지 약 26.3㎞, 11월 14일엔 고치령~마당치~국망봉~비로봉~연화봉~죽령까지 약 25㎞를 종주하고 오랜 휴지기에 들어갔다.

 


▲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은비가 도봉산 입구에서 부모와 함께 나란히 섰다.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한번 가서 나흘 동안 72㎞를 걷기도
겨울 날씨가 추워진 탓에 어린 은비가 고생하는 게 안쓰러워 따뜻한 봄이 되면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나 봄이 와도 은비는 학교 수업에 빠지기 싫어 종주는 쉽게 연결되지 않았다.


아빠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2010년 7월 10일 종주를 재개했다. 죽령에서 출발해서 샘~1288봉~도솔봉~묘적령~솔봉~싸리재~투구봉~저수령까지 약 20㎞를 완주했다. 7월 17일엔 저수령~문복대~벌재~폐백이재~황장산~차갓재까지 약 14㎞를 걸은 뒤, 여름휴가기간을 맞아 별도로 휴가를 가지 않고 백두대간 종주에 휴가 4일을 몽땅 사용했다. 7월 30일엔 안생달~차갓재~대미산~부리기재~꼭두바위봉~마골치~포암산~하늘재까지 20㎞, 2일째인 31일엔 하늘재~탄항산~부봉삼거리~동암문~마역봉~조령3관문~신선암봉~조령산~이화령까지 18㎞, 3일째인 8월 1일엔 이화령~조봉~황학산~백화산~곰틀봉~이만봉~배너미평전~희양산성터~은티마을까지 17㎞, 마지막 휴가인 4일째는 은티마을~지름티재~구왕봉~은치재~악휘봉삼거리~정성봉~버리미기재까지 17㎞를 걸었다. 어린 은비가 휴가 4일 동안 무려 72㎞를 내달렸다. 가히 '어린 철인의 건각'이 아닐 수 없다.

 

이어 8월 8일엔 버리기미재~촛대봉~대야산~밀재~조항산~갓바위재~청화산~늘재~밤티재까지 20.8㎞, 8월 21일과 22일엔 밤티재~문장대~신선대~천황봉~피앗재~형제봉~갈령~비재까지 21㎞와 비재~봉황산~화령재~윤지미산~무지개산갈림길~신의터재까지 19㎞ 등 이틀 동안 40㎞를 종주했다.

 

9월 18일엔 큰재~국수봉~용문산~기도터바위~작점고개~금산~추풍령까지 18㎞, 10월 10일엔 추풍령~눌의산~장군봉~가성산~괘방령~운수봉~황악산~바람재~여정봉~삼성산~우두령까지 23㎞, 10월 17일엔 우두령~석교산~밀목령~삼마골재~삼도봉~백수리산~부항령까지 약 19㎞, 10월 30일엔 부항령~덕산재~얼음골약수~대덕산~삼도봉~소사재~삼봉산~빼재까지 20.5㎞, 11월 13일엔 신풍령(빼재)~갈미봉~대봉~지봉~백암봉~동엽령~무룡산~삿갓골대피소~남덕유산~서봉~할미봉~육십령까지 32㎞를 무박2일에 걸쳐 내달리는 강행군을 은비는 잘 참고 견뎠다. 그리고 다시 겨울의 살을 에는 찬바람을 피해 이듬해를 기약했다.

 

▲ 1 대미산 정상 비석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엄마와 포즈를 취했다. 2 시원한 차림으로 도솔봉 앞에 섰다.

   3 은비가 힘든 듯 마당치 표지판을 기대고 섰다. 4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장승 사이에 은비가 쉬고 있다.

 

2011년 올해 들어 종주 산행은 계속 됐다. 3월 12일 육십령에서 재개한 종주는 깃대봉~민령~영취산~백운산~중재~월경산~광대치~봉화산~복성이재까지 31㎞를 내달렸다. 3월 26일엔 복성이재~시리봉~사치재~매요리~고남산~여원재~노치마을~고리봉~정령치~운봉까지 40.5㎞를 종주하는 초강행군을 벌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난 5월 6일 성삼재에서 계속된 백두대간 종주는 노고단~연하천~벽소령~세석~장터목~천왕봉을 거쳐 중산리로 내려와 약 35㎞를 걸으며 약 2년여에 걸친 백두대간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총 700㎞ 이르는 거리를 24차례에 걸쳐 평균 시속 2.6㎞로 끝냈다. 웬만한 어른 산꾼도 하기 힘든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숙제 끝내는 심정으로 마쳤어요"

은비의 백두대간 종주를 축하하기 위해 서울, 대구에서 가족, 친지들과 지인들 10여 명이 지리산 중산리에 모였다. 감격에 겨워 울먹이는 엄마 옆에서 은비는 무덤덤하게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만 했다.

 

아빠 김동진씨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초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은비가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 앞으로 커가는 데 여러 모로 도움 되지 않을까 싶어 시작하게 됐다"며 "만약 종주할 때 문제가 생기면 그 때 그 때 해결하고 한 구간 한 구간씩 가면 무난히 끝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빠는 종주를 마친 뒤 "특별한 의미를 둔 종주가 아니었기 때문에 은비에게 뭔가를 바라는 건 없다"며 "은비가 또래들하고 잘 어울려 놀고 건강하게 잘 컸으면 하는 바람뿐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가족이 서로를 느끼며 자연이 주는 복된 선물을 공유하면서 2년을 보낸 것이 너무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엄마도 "은비가 백두대간 종주를 끝낸 사실은 조금 더 크면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백두대간 종주를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보다 더 약속을 잘 지키고 시간을 엄수하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 은비가 새벽 여명을 바라보며 힘차게 기운을 받고 있다.

 

은비는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백두대간을 마치고 나서는 정말 너무 행복하다, 왜냐하면 새벽 2~3시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그 어린 아이가 얼마나 일어나기 힘들었을까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백두대간 종주할 때는 기분이 어땠어?"
바로 한마디로 되돌아왔다. "싫었어요"라고.
"왜? 항상 싫었어?"
"아니오, 졸릴 때가 가장 싫었고 힘들었어요. 더울 때도 짜증나고 힘들었어요. 그러나 걸을 때는 좋았어요. 고모랑 속도경쟁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밧줄 타고 바위 오르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졸릴 때는 어떻게 했어?"
"잠시 10~15분씩 배낭을 베고 자거나 앉아 그대로 잤어요. 그러면 괜찮았어요."
은비가 백두대간 종주하면서 걷는 평균 속도는 2.6㎞. 성인보다 훨씬 빠른 수준이다. 은비의 산행 속도는 평소 수락~불암산을 5시간에 종주할 정도라고 한다.
"왜 그렇게 빨리 산행을 하니?"
"빨리 산행 끝내고 친구들과 놀아야 해요."
"은비의 다음 산행계획은 뭐지?”
옆에서 아빠가 말하기 전 재빠르게"대답이 돌아왔다. "없어요"라고.
순진한 어린이의 마음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1 백두대간 종주를 위해 새벽 산행에 나선 은비가 헤드랜턴을 켜고 가고 있다.

   2 초겨울의 날씨에도 얼굴만 살짝 내놓은 모습이 소백산의 살을 에는 찬바람을 실감케 하는 장면이다. 비로봉 비석 앞에서 가족이 함께 섰다.

   3 소백산 국망봉 비석 앞에서 초겨울 날씨가 추운 듯 등산복을 겹겹이 입고 'V'자를 그리고 있다.

   4 은비가 밤새 걸은 탓인지 지친 표정으로 여명을 받으며 능경봉 정상 비석에 부모와 함께 섰다.

 

은비는 학교에서 공부도 곧잘 한다고 한다. 하계동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은비는 반에서 1~2등, 전 과목 평균점수 90~95점 정도 받는다고 한다. 학교에서 개최한 수학경시대회는 전교 1등을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획득한 자격증도 주니어펠트 2급이 있고, 운동은 스키·수영·인라인 등 대부분 잘한다고 엄마는 보충 설명했다.

 

2년여의 걸친 백두대간 종주라는 서사시를 끝낸 은비는 앞으로 펼쳐질 인생이라는 장편의 대서사시도 무난히 잘 써내려 가지 않을까 싶다. 초등학교 6년 13세 어린 나이에 눈과 추위, 비바람을 견디며 백두대간 종주를 끝낸 여세를 몰아 나머지 어떤 구간에 힘든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훌륭히 헤쳐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은비는 그녀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일기를 썼다.
'산은 이로움도 있고 해로움도 있다. 우선 이로움에는 겨울 설악산이나 지리산엔 눈을 엄청 많이 볼 수 있고, 공기도 좋고, 비박(캠핑)을 할 수 있는 쉼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입는 옷이 다르다. 학교를 빼먹는다(체험학습으로 토요일 수업 대체). 5~6시간이 아닌 12시간 이상을 산을 탄다. 여름엔 너무 덥고 겨울엔 너무 춥다. 별로 재밌지도 않고 힘이 들어 짜증난다. 앞으로 백두대간 같은 숙제,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어.'
어린 은비의 솔직한 고백이다. 하지만 조금 더 크면 자신이 어린 나이에 얼마나 큰일을 했는지를 알 수 있으리라. 모든 사람이 그녀를 부러워하고 기특해하는 이유도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