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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정맥 자료

[월간山] 북한 백두대간을 오른다

월간山 홈페이지(http://san.chosun.com) '화제&인물' 란에 실린 기사 전문입니다.

[원문 출처] http://san.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7/13/20110713014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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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북한 백두대간을 오른다

글=박정원 부장대우
사진=허재성 기자


뉴질랜드인 로저, 북 허가 받아 10월~내년 연말까지 7차례 방북

 

분단 이후 북한의 산하는 어떻게 변했을까? 들리는 소문으로는 북한 주민들이 먹을 것이 없어 산에서 나무를 마구 잘라 땔감으로 팔면서 전 국토가 황폐화됐다고 한다. 외신을 통해서 간간이 보도되는 화면을 보면 실제로 그런 듯이 보인다. 이러한 북한 백두대간 산하의 실제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날이 멀지 않았다. 그것도 백두산에서 금강산까지 이어지는 북한 측 백두대간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에 담아 생생히 볼 수 있을 것 같다.

 

뉴질랜드인 로저 셰퍼드(Roger Shepherd ·46)가 북한 측 백두대간을 답사하겠다고 나섰다. 연속적 종주는 아니지만 도시를 거점으로 주변 백두대간을 1년여에 걸쳐 일제히 탐방할 작정이다. 지난 5월 21일 북한을 방문, 일주일간 평양에 머물면서 방북허가를 받고 다시 한국으로 왔다. 정치와 스포츠 교류의 목적이 아닌 순수 민간인이 '포토 에세이집' 발간을 목적으로 북한 땅을 밟는 것은 아마 분단 이후 처음이 아닐까 싶다.

그가 방북 허가를 받는 데는 한-뉴질랜드 프렌드십 소사이어티(Korea-New Zealand Friend Society)가 큰 역할을 했다. 이 단체는 외교부 문화위원회 산하 NGO 기관으로, 40여 년간 북한과 교류를 계속해 왔다.

 

▲ 1 북한 백두대간을 답사하기로 한 뉴질랜드인 로저 셰퍼드가 경복궁 주변에서 포즈를 취했다.

    2 로저가 답사할 북한 백두대간 지도를 들어 보이고 있다.

 

로저는 "북한의 평판이 국제 사회에서 매우 나쁘다는 걸 잘 알고 있다"며 "아마 이번 기회에 산을 통해 뭔가 좋은 일을 할 계기를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북한 측이 이 프로젝트가 한반도 통일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듯했다고 덧붙였다.

 

오는 10월부터 본격 북한 측 백두대간을 탐사할 예정이다. 평양을 거쳐 원산으로 가서 금강산과 강원도 일대의 백두대간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가 사전 협의를 위해 북한을 일주일 동안 방문했을 당시, 김일성대학 지리 교수와 전체 구간과 일정에 대해 의견을 구하고 합의를 했다. 한반도 전체가 그려진 '산경표' 지도를 보며 구체적 위치를 서로 확인했다. 핵 실험이나 정치·군사적으로 민감한 지역은 물론 배제됐다.

 

그가 김일성대학 지리 교수와 협의한 뒤 출입허가를 받은 구간은 다음과 같다. 강원도는 금강산·북대봉·문필봉·깃대봉·철령·항령산·백암산·백봉·두류산 등이고, 이들 산을 등산하고 촬영하기 위한 거점 지역으로 고산·새포·원산 등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할 계획이다. 평안남도는 맹산시를 거점으로 주변 백두대간을 답사하기로 했다. 함경남도 지역은 백두산과 백두고원·만수고원·개마고원 등이고, 옥령산·히사봉·천산대봉·철불산 등에 올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영상에 담을 예정이다. 삼지연·부천·장진·함흥 등을 거점으로 삼기로 했다.

 

▲ 1 묘향산에는 등산보다는 관광차원의 산책코스를 몇 군데 조성해 놓았다. (사진 로저 셰퍼드 제공)

    2 묘향산에도 우거진 숲속에 인공 새집을 걸어놓았다.

 

북한 측 백두대간을 답사하기 위해 북측 관련 인사를 만났을 때 다들 "산에 올라서 뭐 하느냐"며 신기하고 이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듯했다고 한다. 로저가 남한 백두대간을 이미 완주했고 책도 발간했다는 얘기를 하자 북한 측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당신은 새(bird)같이 훨훨 나는 사람"이라며 믿지 못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일단 오는 10월에 북한을 방문해서 20일가량 머물 예정이다. 금강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와 영상에 담기 위해 원산으로 향한다. 원산에서 금강산과 황룡산·깃대봉 등을 오르고, 이어 새포로 옮겨 백봉의 자연을 카메라에 담을 예정이다. 다시 고산으로 나와 백암산과 두류산에 오른다.


한-뉴질랜드 프렌드십 소사이어티가 나서

 

북한에 머무는 동안 그는 도시 생활을 제외하고 산이나 산 주변에서는 주로 캠핑을 하거나 비박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묘향산에서 흘러내리는 폭포 앞에서 몇몇 관광객이 구경하고 있다.

 

"좋은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선 날씨가 필수요건입니다. 순간순간의 기후조건에 따라 장면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항상 산에서 지낼 계획입니다."

 

사뭇 그의 각오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10월 말이나 11월쯤 한국으로 돌아와서 내년 2월쯤 다시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내년엔 여섯 번쯤 방북해서 김일성대학 지리 교수와 논의했던 구간을 전부 끝낼 계획으로 있다. 한 번 갈 때마다 최소 2~3주가량 머물면서 북측 백두대간의 모습을 빠짐없이 카메라에 담을 생각이다. 북한에 머무는 기간만 따진다면 4개월이 훨씬 넘는다. 남한 백두대간을 연속 종주할 때 소요된 시간인 70일보다 더 긴 셈이다.

 

"금강산 같은 경우는 단풍이 아름답기 때문에 가을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0월에 갈 계획이고, 백두산은 그 웅장함을 담기 위해선 겨울이 적기라고 봅니다. 내년 2월 백두산에 올라 화려한 모습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백두대간의 사계를 처음으로 렌즈에 담아 선보일 것입니다."


한 번 방북하면 최소 2~3주 머물 계획

 

그의 북한 백두대간 트레일 답사 계획은 남한 백두대간 종주를 마칠 때부터 잉태되고 있었다. 그는 2007년에 이미 남한 백두대간 종주를 마쳤다. 그리고 2년여 간의 자료정리와 집필을 거친 뒤 2010년 첫 백두대간 영문 가이드북 <Baekdu-daegan Trail : Hiking Korea's Mountain Spine>을 발간했다. 외국인으로서 처음 썼고, 백두대간 영문 안내서로도 처음이었다.

 

직업이 경찰이었던 그는 책을 출판한 뒤 뉴질랜드로 돌아가 아예 사표를 내고 다시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때부터 본격 북한 측 백두대간 답사 계획이 진행됐다. 한국에 와서 애초엔 한국의 산에 대한 책 출판에 대해 여기저기 의견을 나눴다. 그러다 진선출판사 허창성 회장을 만났다. 허 회장은 "한국의 산에 관한 책은 여기저기서 출판이 많이 된 상태라, 거기에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북한에 갈 수 있다면 그곳의 산 사진을 찍어 보라"고 권했다. 로저는 이 말을 듣고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한-뉴질랜드 프렌드십 소사이어티를 찾아 의견을 타진하고 북한의 초청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 묘향산의 암벽에 '묘향산은 천하제일 명산'이라는 김일성의 친필이 새겨져 있다. (사진 로저 셰퍼드 제공)

 

그가 왜, 그것도 외국인이 남한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북한 백두대간을 오르려고 하는지 물어봤다.

 

"먼저 명확히 짚고 넘어갈 건 내가 북한 백두대간 종주를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북한 백두대간의 <사진 에세이집>을 만들기 위해서 갑니다. 그래서 백두산에서 금강산을 거쳐 지리산까지 한반도 전체의 백두대간 사진 에세이집을 발간할 계획입니다. 그것은 남북이 둘이 아니라 하나이고 똑 같은 사람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기도 합니다. 산을 통해서 남북이 동질성을 회복하는 계기도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남한의 산을 종주할 때 보았던 산에 관한 전설이나 역사 등도 찾을 생각입니다."

 

한-뉴질랜드 프렌드십 소사이어티 북한 측 회원 2명과 운전기사 1명 등이 그의 답사를 지원해 주기로 북한과 합의한 상태다. 이들이 짐을 나눠지면서 카메라 촬영을 돕거나 길을 안내하고 답사에 필요한 자료도 제공하기로 했다. 거점 도시에 차로 접근해서 거기서부터는 역사 유적지나 경관이 좋은 지역을 찾기까지 걸어서 가기로 했다. 그는 또 북한의 불교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 산에 있는 사찰도 빠짐없이 방문할 계획이다.

 

▲ 지난 5월 의견 타진을 위해 방북했을 때 묘향산 등지를 안내한 한-뉴질랜드 소속의 북측 회원들과 함께 자리를 했다.

    (사진 로저 셰퍼드 제공)

 

1년여 북측 백두대간 답사를 마친 뒤 그는 예정대로 백두대간 사진 에세이집을 낼 예정이다. 출판사는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몇몇 군데에 벌써 타진을 한 상태다. 때문에 한국에 오래 머무를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졌다.


북 안내원 2명과 함께 답사키로

 

"사진 에세이집 발간 이후엔 무엇을 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어요. 뉴질랜드로 돌아갈 수도 있고, 한국에 더 머물 수도 있고…. 그러나 분명한 건 상당 기간 한국에 머무르며 할 일이 많을 것 같아요. 만약 북한과 관계가 좋아져 백두대간 전 구간 종주허가를 받을 수 있다면 백두산에서 출발해서 광양 연대봉까지 걸어서 종주해 볼 각오도 있습니다. 만약 그것을 할 수 없다 하더라도, 한국의 봉수대에 관심이 많아 직접 답사해서 연구해 볼 생각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2012년 한국의 섬에 관한 영문 가이드북도 발간할 예정이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한국의 산하'를 찾기에 바쁜 외국인이다.

 

▲ 묘향산에 있는 정자인 솔봉정.

 

그의 역마살 같은 방랑벽은 어떻게 보면 어릴 때부터 가진 습성으로 보인다. 그는 20대가 채 되기도 전에 '차 도장(Car Painter)' 사업을 시작하면서 여기저기 떠돌아 다녔다. 21세 때는 뉴질랜드를 떠나 영국으로 향했다. 거기서 1년 동안 일한 뒤 아프리카로 다시 떠났다. 9년간 남아공·모잠비크·잠비아 등을 거치며 국립공원 관리인, 사파리 가이드 등으로 활동했다.

 

1998년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간 그는 여행관련 일에 잠시 종사하다가 2002년부터 경찰이 됐다. 2006년 6개월의 휴가를 받아 친구가 영어강사로 있는 '운명적인' 한국을 찾았다. 백두대간을 발견하고는 그해 절반쯤 남한 구간을 종주하고 다음을 기약한 뒤 뉴질랜드로 돌아갔다. 이듬해 2007년 다시 한국으로 와서, 같은 영어강사로 있는 앤드루 더치(Andrew Douch)와 함께 70일간에 걸쳐 남한 백두대간 종주를 마쳤다. 이어 2009년까지 첫 백두대간 영문가이드북 발간 작업을 끝냈다.

 

2009년 겨울부터 9개월에 걸쳐 낙남정맥, 호남정맥, 금남정맥, 금남호남정맥 등을 종주하고 뉴질랜드에 잠시 귀국한 뒤 2010년 아예 뉴질랜드 경찰직 사표를 내고 다시 한국을 찾아 왔다. 지금도 그는 정맥과 지맥, 한국의 섬을 찾아 시도 때도 없이 다니고 있다. 벽안의 외국인이 앞으로 과연 한국의 산하에 관한 몇 권의 책을 내놓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