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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2011-01-07] 제주도 한라산

제주도 한라산 - 설국(雪國)을 가다

 

[산행일시] 2011. 01. 07(금) 08:00~17:00(9시간)

[날      씨] (오전) 구름 많음, (오후) 맑음

[산행인원] 성봉현, 김만기
[접근방법] 서귀포 구 터미널→성판악휴게소 : 제주행 시외버스
[복귀방법] 성판악휴게소→제주 시외버스터미널 : 시외버스

[산행지도] 국제신문사(http://www.kookje.co.kr) 지도 참조

 

[산행기록]

2010년 12월 중순 경 제주 한라산을 가자는 처의 이야기가 농담인 줄 알고 있었는데 해가 바뀌어 다시 이야기를 한다.
뜨끔하여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항공편을 예약하고 출발 전날 배낭을 꾸린 후 목요일에 김포공항에서 제주로 출발한다.
가는 날이 장날인지 제주공항에 도착하여 공항청사 바깥으로 나오니 하늘에서 눈발이 날리고 있다.
자투리 시간으로 올레길 8코스를 걷기로 하였기에 공항버스로 서귀포시로 이동하여 눈발이 흩날리는 올레길을 걷다가
시에스호텔을 지나 정면으로 불어오는 눈바람에 걷기를 포기하고 호텔 앞 정류장에서 공항버스로 서귀포시로 이동한다.
원래 제주를 찾았던 주목적인 한라산 등산을 위하여 서귀포시 구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하여 차시간을 파악한 후
인근의 모텔에서 하룻밤을 유숙하고 어둠이 걷히지 않은 금요일의 새벽녁에 구 터미널에 다시 도착한다.

  ▼ 서귀포 구 터미널에서 출발하여 성판악휴게소를 경유하는 제주행 시외버스 시간표

 

성판악을 넘어 제주로 가는 7시발 시외버스에 승차하였는데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버스는 잠시 후 만원이 된다.
적설이 보이는 516 횡단도로를 힘들게 올라선 버스는 7시 35분 경 고갯마루의 성판악휴게소 정류장에 도착하고
배낭을 맨 많은 등산객들과 함께 버스에서 하차하여 정상부를 보니 백록담을 에워싼 능선은 회색빛 구름에 숨어버렸다.
어정쩡한 아침 시간이지만 흐린 하늘에 제법 차가운 기온이 몸으로 느껴지는 성판악 도로를 건너 휴게소에 들어간 후
적설에 대비한 산행채비를 하는데 상점 주인이 어제는 대설로 진달래밭대피소부터 동릉 정상까지 통제되었다고 한다.
내심 신설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겠거니 생각하면서 스패츠와 아이젠을 착용한 후 산행 준비를 마치고
성판악탐방안내소 앞에서 사진을 촬영한 후 앞서간 산님들의 발자국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 성판악휴게소 들머리

 

8시 정각, 공원관리소를 통과하여 얼마나 갔을까,
등산로 안내용 로프가 눈에 묻히어 보이질 않는 것이 적설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되게끔 한다.
중간중간 현위치를 알려주는 안내판을 벗삼아 가는 산길은 완만한 오름길을 유지하면서 이어지고
해발고도가 아직 낮은 것인지 땀이 배는 체온으로 속밭휴게소에서 외투를 벗어 배낭에 넣은 후 산길을 계속 오른다.
나뭇가지를 살포시 덮고 있는 어제의 신설이 펼치는 설화의 아름다움이 연속되는 산길은
등산로를 벗어나면 깊게는 허리춤까지 빠지는 눈의 나라인 한라산…
어느새 산길에는 많은 산꾼들로 불어나 길게 늘어진 줄을 따라 올라간다.

  ▼ 줄지어 오르는 등산객들

 

하지만 갑자기 정체가 시작되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도 움직일 줄 모르는데
러셀된 등산로를 벗어나 무릎까지 빠지는 신설을 밟으면서 잠시 올라가니 스패츠와 아이젠을 착용하는 산꾼이 있다.
그 사람들도 뒤에서 하소연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서둘러 착용하여 막히었던 길이 풀리면서 다시금 산꾼들이 움직이지만
얼마 떨어지지 않았던 곁지기가 보이질 않는다.
어느정도의 산꾼들이 지나도록 사람도 배낭도 보이질 않아 스치고 먼저 올라갔으려니 생각하고 뒤늦게 산길을 오른다.
서서히 가팔러지면서 사라오름 갈림길을 지나도록 보이질 않아 다시 한 번 기다려보지만 역시나 보이질 않는다.
이제 진달래밭대피소에서 만나는 방법만이 최선이라 생각하고 나보다 앞서갔으려니 하고 빠르게 올라간다.
한 무리의 팀들이 앞서 올라간 산길은 조금씩 높아만 가는 고도처럼 더 많은 눈이 쌓인 외길로 이어지는데
눈에 보이는 모습은 그저 눈만 보일 뿐이다.
그렇게 눈과 함께 올라가다가 잠시 헤어졌던 곁지기를 만나 사연을 들어본 즉 내가 앞서 올라갔으려니 하고 올라갔단다.
초반부와 달리 다소 가팔러지는 산길에 스틱이 없어 걱정하던 차에 만난 것이다.
힘겨워하는 눈치를 보이는 곁지기에게 스틱을 건네주고 흐렸던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는 하늘선을 따라 오른다.
30여 분을 더올라 한가해진 산길에 만난 진달래밭대피소는 다시금 짙은 운무와 함께 강풍만이 반겨준다.

   ▼ 운무에 쌓인 진달래밭대피소

 

바람을 피해 들어선 대피소에는 오늘 아침 김포공항에서 첫 비행기로 이동한 서울의 모 산악회 팀들로 만원이지만
잠시 기다려 대피소에서 파는 컵라면을 사서 아침에 준비한 김밥과 함께 좁은 자리에서 선 채로 점심을 해결한다.
동능 정상부에서 관음사로 하산한다는 서울팀들이 빠져나가니 대피소는 다소 여유로워지는 듯 하더니만
다시 빈 공간을 채우는 산꾼들로 북새통이다.
떠밀리 듯 점심먹던 자리를 다른 팀에게 양보하면서 대피소를 나와 동능 정상부로 향한다.
속밭쉼터를 지나 만났던 서울팀들이 먼저 지나간 길을 오르니 하늘이 열리면서 백록담 분화구의 능선이 보이고
뒤돌아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짙은 구름 사이로 남원으로 추정되는 해안선 마을이 살짝 열려있다.

  ▼ 동능벽 능선길과 뭉게구름 사이로 보이는 해안선 마을

 

눈이 만들은 설국을 벗어나 하늘 아래 우뚝선 백록담을 향하는 산길에는
얼굴을 세차게 할퀴면서 지나가는 바람과 뚝 떨어진 체감온도의 차가운 공기만이 반겨준다.
얼굴을 버프와 마스크로 감싸 보온을 유지해보지만 파고드는 칼바람은 매섭기만 하고,
한라산 동능 정상부까지 길게 늘어선 산꾼들의 줄을 이어 후미에서 천천히 올라간다.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진 한라산 백록담 능선…
그 좌측 아래로 뭉게구름이 만드는 하늘선 밑으로 살짝 보이는 능선이 어디쯤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짐작이 되질 않는다.
사면을 따라 바람이 만들은 눈 처마를 보면서 눈에 파묻힌 계단길을 얼마나 올랐을까,
이윽고 한라산정상안내소가 보이고 그 윗편의 동능정상부에는 많은 산꾼들로 북적이고 있다.
백록담에는 물대신 하얀 눈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분화구의 능선을 덮고 있는 눈(雪)이 눈(眼)을 즐겁게 해준다.
1980년대 중반 처음으로 올랐던 여름날의 서북능 정상부에서 보았던 백록담의 얕은 호수가 생각난다.
회사일로 출장왔다가 서둘러 마치고 영실에서 윗세오름대피소를 거쳐 한라산 정상인 서북능으로 올라
분화구 능선을 따라 한바퀴 돌았었는데 이제는 목책에 기대어 서북능을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다.

  ▼ 한라산정상안내소와 동능정상 그리고 한라산 정상인 서북능선, 눈덮인 백록담

 

짧은 시간을 머물렀지만 매서운 찬바람에 떠밀려 증명사진을 촬영하고 서둘러 하산 준비를 하는데
원래는 관음사 방향으로 내려가려 하였지만 계획을 바꾸어 원점회귀인 성판악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관음사 뱡향으로 내려가는 산꾼들을 보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가해진 계단길을 따라
고도차가 심한 동능벽 능선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간 후 다시 만난 설화의 터널을 지나 진달래밭대피소에 도착한다.

  ▼ 진달래밭대피소

 

백록담으로 올라갈 수 있는 시간이 지나서인지 한가해진 대피소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점심을 급하게 먹었던 것인지 아니면 식후 찬바람을 맞으면서 산행하였던 여파인지 불편한 속이 풀리지 않고 있다.
쉴 수 있는 시간도 한계가 있는지 이제 성판악으로 하산을 준비하라는 대피소 직원의 말을 듣고 다시금 여장을 준비한다.
올라올 때에는 가파르다고 느끼지 못했던 산길이 내리막길에서는 다소 경사진 길이었음을 느끼게 한다.
눈이 만든 설국을 천천히 벗어나는 길은 아침과 달리 우리를 추월하는 팀 이외에는 보이질 않는다.
사라오름 갈림길을 지나고 화장실이 있는 속밭쉼터를 거쳐 원없이 눈구경을 하게 해준 한라산 자락을 서서히 벗어나
아침에 출발하였던 성판악휴게소에 도착하여 얼었던 몸을 녹일겸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면서 휴식을 취한다.
이제 산행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갈 일만 남았으니 복장을 정리한 후 버스 도착시간에 맞추어 정류장으로 이동하여
한라산 정상부를 바라보니 어느새 구름으로 치장하여 자신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예정했던 관음사 코스로 내려가지 못한 아쉬움을 접고 하루종일 눈이 있어 즐거웠던 산행을 기억하면서
제주행 시외버스에 승차하여 어둠이 내린 제주터미널로 향한다.

  ▼ 신축건물 공사 중인 성판악휴게소과 정류장에서 본 한라산

 

이후 구제주에서 공항이 가까운 신제주로 이동하여 저녁을 먹기 위해 찾은 식당의 방마저
점심이 얹치었던 필자나 다리가 무거웠던 곁지기의 피로를 풀기에는 너무 냉골이었다.
비행기 시간이 남아 공항까지 걸어도 될만한 거리였지만 몸 상태때문에 택시로 공항까지 이동하여
훈훈한 실내에서 출발시간을 기다리면서 얼었던 몸이 풀리었는지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잠시나마 짧은 숙면을 취하였다.
이번에 걷지를 못했던 관음사 길을 다시 찾을 것을 기약하면서 설국의 한라산을 기억 속으로 접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