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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둘레길)/한양도성길

[2016-06-06] 한양도성길 - 한양도성, 후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선대의 소중한 문화유산

한양도성, 후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선대의 소중한 문화유산

[일       시] 2016.06.06(월) 08:13~15:05(6시간 52분 / 휴식시간 1시간 18분 포함)

[날       씨] 맑음 / 구름 많음

[인       원] 성봉현

[구간 시간] 흥인지문(동대문역 6번 출입구, 08:13) → 광희문(08:28) → 국립극장(09:04) → 남산(09:30~09:42)

                 → 숭례문(남대문, 10:20) → 경교장(10:51) → 인왕산(11:33~11:48) → 창의문(12:11~12:25)

                 → 북악산(12:46~12:56) → 숙정문(북대문, 13:22~13:24) → 와룡공원(13:54) → 혜화문(14:22~14:25)

                 → 낙산(14:48) → 흥인지문(동대문역 1번 출입구, 15:05)

[안내 지도] 서울 한양도성 관광안내지도(종로구청ᆞ중구청 제작)

 

[구글 어스]

2016-06-06_한양도성길.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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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도성(사적 제10호)]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태조 5년(1396), 백악(북악산) · 낙타(낙산) · 목멱(남산) · 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이후 여러 차례 개축하였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1396~1910, 514년) 도성 기능을 수행하였다.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북쪽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숙정문 · 흥인지문 · 숭례문 · 돈의문이며 4소문은 서북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창의문 · 혜화문 · 광희문 · 소의문이다.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되었다. 또한 도성 밖으로 물길을 잇기 위해 흥인지문 남쪽에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을 두었다.

 

   한양도성이 처음 완공된 것은 약 620년 전이다. 태조 5년(1396) 음력 1월 9일부터 2월 28일까지 49일 간, 이어서 8월 6일부터 9월 24일까지 49일 간, 모두 98일 동안 전국 백성 19만 7천 4백여 명을 동원하여 쌓았다. 전체 공사구간(총 5만 9,500척)을 600척씩 97구간으로 나누고 각 구간을 천자문 순서에 따라 이름 붙인 뒤 군현(郡縣)별로 할당하였다. 태조 때 처음 축성할 당시 평지는 토성으로 산지는 석성으로 쌓았으나, 세종 때 개축하면서 흙으로 쌓은 구간도 석성으로 바꾸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성벽 일부가 무너져 숙종 때 대대적으로 보수 · 개축하였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정비하였다. 성을 쌓을 때에는 일부 성돌에 공사에 관한 기록을 남겼는데, 태조 · 세종 때에는 구간명 · 담당 군현명 등을 새겼고 숙종 이후에는 감독관 · 책임기술자 · 날짜 등을 명기하여 책임 소재를 밝혔다.

 

[원문 출처] 서울한양도성 홈페이지(http://seoulcitywall.seoul.go.kr) '도성소개 → 도성의 역사' 참조

 

[한양도성 구간 안내] 서울한양도성 홈페이지(http://seoulcitywall.seoul.go.kr) '순성안내'

[백악 구간] 구간 : 창의문~혜화문 거리 : 4.7km 소요시간 : 약 3시간 창의문에서 백악을 넘어 혜화문에 이르는 구간이다. 백악(북악산, 342m)은 옛 서울의 주산으로 내사산 중 가장 높다. 공극산(拱極山), 면악(面岳)이라고도 하였으며 산세가 ‘반쯤 핀 모란꽃’에 비유될 만큼 아름답다. 한양도성은 백악을 기점으로 축조되었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40년 가까이 출입이 제한되다가 2007년부터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 개방시간 : 매주 월요일 휴무(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화요일 휴무)

                  여름철(3월~10월) 09:00~16:00·(퇴장시간 18:00), 겨울철(11월~2월) 10:00~15:00(퇴장시간 17:00)

* 주의사항 : 창의문 · 숙정문 · 말바위 안내소 입장 시 반드시 신분증(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을 지참해야 한다.

 

[낙산 구간]

구간 : 혜화문~흥인지문

거리 : 2.1km

소요시간 : 약 1시간

혜화문에서 낙산을 지나 흥인지문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낙산(124m)은 서울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산으로 내사산 중 가장 낮다. 생긴 모양이 낙타 등처럼 생겨 낙타산, 타락산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낙산 구간은 경사가 완만하여 산책하듯 걷기에 적당하다. 특히 가톨릭대학 뒤편 길을 걷다 보면 축조 시기별로 성돌의 모양이 어떻게 다른지를 볼 수 있다.

 

[흥인지문 구간]

구간 : 흥인지문~장충체육관

거리 : 1.8km

소요시간 : 약 1시간

흥인지문에서 광희문을 지나 장충체육관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흥인지문 일대는 도성 안에서 가장 지대가 낮아 성 안의 물이 이곳으로 흘러들어 수문(오간수문·이간수문)으로 빠져 나갔고, 하도감·염초청·훈련원 등의 군사시설도 밀집했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전차 개설로, 일제 강점기에는 도로 건설과 경성운동장 건설 등으로, 해방 후에는 도로 확장과 주택 건설 등으로 인해 흥인지문에서 장충동에 이르는 성벽 대부분이 철거·훼손되었다. 현재 이간수문은 원 위치에 정비되어 있고, 하도감 유구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안으로 이전되어 전시 중이다. 주변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동대문시장·평화시장·방산시장 등에서는 쇼핑도 즐길 수 있다.

 

[남산(목멱산) 구간]

구간 : 장충체육관~백범광장

거리 : 4.2km

소요시간 : 약 3시간

장충체육관 뒷길에서 남산공원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남산(목멱산, 해발 270m)은 서울의 안산(案山)에 해당하여 조선 초기부터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비는 국사당을 이 산에 두었다. 또 정상에는 변방의 변란을 알리는 봉수대를 설치하여 궁궐에서 직접 살필 수 있게 하였다. 한강 남북을 포괄하는 현재 남산은 서울의 행정구역상 중심부에 해당하며 정상 부근에는 서울의 지리적 중심임을 표시하는 ‘서울 중심점’이 설치되어 있다. 1921년부터 1925년까지 일제가 남산 중턱에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주변 성벽을 대부분 파괴했으나 1970년대 이후의 성곽 보존 · 정비 사업과 1990년대 중반 남산 제 모습 찾기 사업을 통해 현재는 옛 모습을 상당 부분 회복하였다.

 

[숭례문 구간]

구간 : 백범광장~돈의문 터

거리 : 1.8km

소요시간 : 약 1시간

백범광장에서 숭례문을 지나 돈의문 터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한양도성의 정문인 숭례문은 한강과 도성을 최단거리로 잇는 문이어서 사람과 물자의 통행도 가장 많았다. 상업이 발달한 조선 후기에는 문 밖에 칠패시장, 문 안 선혜청 창고 앞에 남대문 조시(朝市)가 만들어졌다. 이중 칠패시장은 종루, 이현(梨峴)의 시장과 함께 ‘도성삼대시(都城三大市)’로 꼽혔으며, 남대문 조시는 오늘날의 남대문시장으로 이어졌다. 서구(西歐) 각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하고 서울을 개방한 이후에는 남대문 인근의 정동에 각국 공사관(公使館)과 외교관 사택,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와 학교들이 들어섰다. 1899년 전차가 개통됨에 따라 숭례문은 더 이상 문의 구실을 못하게 되었고, 1907년에는 교통 불편을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숭례문 양쪽 성벽이 철거되었다. 이후에도 남대문로 주변에 대형 건축물이 들어설 때마다 성벽이 철거되어 숭례문 주변에서는 옛 성벽을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숭례문 구간에서 한양도성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세 군데 있다. 밀레니엄 서울힐튼과 SK남산빌딩 뒤쪽의 성벽,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올리브 타워로 이어지는 길가에 성벽 일부가 담장처럼 남아있으며, 창덕여자중학교 담장 아랫부분에서 50m 정도의 성벽을 볼 수 있다.

 

[인왕산 구간]

구간 : 돈의문 터~창의문

거리 : 4km

소요시간 : 약 2시간 30분

돈의문 터에서 시작해 인왕산을 넘어 윤동주 시인의 언덕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해발 339m인 인왕산은 풍수상 우백호(右白虎)에 해당한다. 거대한 바위들이 노출되어 있는 바위산으로 치마바위, 선바위, 기차바위 등 기암괴석이 많다. 인왕(仁王)은 불교식 명칭으로, 무학대사가 이 산을 주산으로 삼으면 불교가 융성할 것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다가 1993년 개방되었다.

 

 

[순성(巡城) 후기]

유월을 시작하는 첫 주말은 현충일인 월요일까지 3일간의 연휴였지만 산에도 못 가고 마지막 날이 되었다. 저녁에 모임 약속이 있어 멀리 가지 못할 상황이라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서울둘레길이 끝났으니 한양도성길을 걷기로 한다. 한양도성길은 2012년 11월 25일 대구참사랑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걸었었는데 당시 대구팀의 귀가 시간 때문에 혜화문에서 장충체육관까지의 구간을 빼먹어 미완성 상태였는데 이번에 새로 걸으면서 원점회귀하기로 한 것이다.

 

저녁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두른다 하였지만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생각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신내동 집을 나선다. 시내버스를 타고 봉화산역에서 지하철로 환승하여 동대문역에 도착하니 8시를 넘어섰다. 서울한양도성 홈페이지(http://seoulcitywall.seoul.go.kr)에서 사전에 확인한 출발점인 동대문역 6번 출입구로 올라가서 동대문이라 부르는 흥인지문(興仁之門, 보물 제1호)에 도착하여 휴대폰의 GPS 앱인 트랭글을 실행하고 트랙 기록을 시작한다. 내사산을 중심으로 한 백악·낙산·남산(목멱산)·인왕산 구간과 도성이 멸실된 흥인지문·숭례문 구간 등 6구간으로 구분되는 한양도성길의 시작은 흥인지문 구간을 기점으로 시작하여 낙산 구간에서 끝내기로 하고 흥인지문(興仁之門, 보물 제1호)을 출발한다(08:13).

 

서울 흥인지문(興仁之門)

지정번호 : 보물 제1호 / 시대 : 1869년(고종 6)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6가 69번지

흥인지문은 1398년(태조 7)에 세운 당시 서울 도성의 동쪽 문이다. 지금의 문은 1869년(고종 6)에 다시 지은 것이다. 당시 서울 성곽에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을 세웠다. 동서남북의 사대문에는 각각 인(仁)·의(義)·예(禮)·지(智)의 글자를 넣어 이름을 지었는데, 그 중 동쪽의 대문을 흥인문이라 하였다. 현판에 특별히 지(之)자를 넣은 것은 동대문 앞의 평평한 땅의 기운을 보강하기 위한 의미라고 한다. 흥인지문은 서울의 숭례문과 더불어 가장 규모가 큰 성문이다. 성벽과 이어진 축대에 아치형의 통로를 내고, 그 위로 문루를 세워 성문을 만들었다. 서울의 성문 가운데 문루를 2층으로 만든 것은 숭례문과 흥인지문 밖에 없다. 문루는 문을 지키는 장수가 머무는 곳으로 유사시에는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의 역할도 한다. 문루 바깥으로는 벽돌로 된 담장과 나무판으로 된 창문을 설치해서 적을 막는 데 유리하게 하었다. 흥인지문의 문루는 구조의 맞춤은 간단하고 장식이 많은 19세기의 건축적 특징을 잘 반영한다. 또 흥인지문의 앞에 적을 막기 위한 반달 모양의 옹성(甕城)을 둘렀는데, 이는 서울 성문 가운데 유일하다.

… ['서울 흥인지문' 안내문 全文]

 

좌측 남산방향으로 걸어가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면 청계천의 다리 중 하나인 오간수교인데 오간수문(五間水門)이 있었던 자리로 한양도성 내 지역이 가장 낮아 내사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두 이곳을 거쳐 도성 밖으로 흘러나갔다고 한다. 신평화시장을 지나 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 들어서면 옛날 동대문운동장의 관중석에 매몰되어 있다가 발굴된 이간수문(二間水門)이 내려다 보이며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와 나란히 흔적만 남은 성터가 이어지고 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끝지점에서 DDP 살림터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다가 한양공고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내려가면 우측편으로 광희문(光熙門, 사적 제10호(서울 한양도성))이 보이는데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 도착한다(08:28).

 

광희문(光熙門, 사적 제10호(서울 한양도성))

한양도성의 동남쪽 문으로, 시구문(屍口門) 또는 수구문(水口門)이라고 불렀다. 일제강점기에 일부 무너지고 1960년대에 퇴계로를 내면서 반쯤 헐렸던 것을 1975년 본래의 자리에서 남쪽으로 15m 떨어진 이곳에 고쳐 지었다.

 

광희문은 시구문(屍口門) 또는 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부르는데 어렸을 적에 시구문으로 부르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성벽은 얼마 못 가서 끊어지고 우측으로 조금 올라가면 '광희문 달빛로드' 안내도가 그려진 건물의 좌측 골목길로 이어진다. 성벽은 없지만 마음 속으로 그려가면서 골목길을 따라가다가 계단으로 내려가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고 한양도성길은 바로 우측으로 90도 방향을 틀면서 이어지는 차도를 따라 계속 걸어가면 천주교 신당동교회(성당)이 나온다. 신당동성당은 아마도 여덟 살 때로 기억되는데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어머님의 손에 이끌려 유아세례를 받았던 성당이다. 그 신당동성당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장충체육관이 우측으로 보이는 고갯마루에 이른다(08:41).

 

보행자 신호에 왕복 8차로의 도로를 건너 만나는 성곽의 바깥을 따라 신라면세점과 나란히 진행한다. 흥인지문 구간이 끝나고 이제 남산(목멱산) 구간을 시작하는 지점으로 이곳부터 대구팀과 순성 시작한 기억을 떠올리며 걷는다. 성곽 옆으로 이어지는 나무데크 보행로를 얼마나 걸었을까, 팔각정과 반얀트리클럽으로 분기되는 갈림길을 만난다(08:55). 한양도성은 이곳에서 우측길인 반얀트리클럽 방향의 나무데크로 이어지는데 이곳부터 사유지로 18시~익일 09시까지는 통행할 수 없으며 우회로를 이용해야 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나무 데크로 만들어진 통로를 따라 골프연습장을 지나면 '반얀트리클럽 & 스파서울' 건물이 보이는데 차도 우측 가장자리의 인도로 내려가면 '국립극장 교차로'가 나오고 남산 쪽으로 우뚝 솟은 국립극장 건물이 보인다(09:04).

 

차도를 건너 남산둘레길(순환버스 정류장) 방향으로 올라간다. 차량통제소를 지나 순환버스가 N서울타워로 올라가는 도로를 따르다가 첫 번째 횡단보도를 만나 이곳으로 건넌다(09:08). 나무 계단이 시작되는 곳에 세워진 이정표를 보면 이곳부터 N서울타워까지의 거리는 순환버스가 다니는 도로는 2000m, 성곽을 따르는 나무 계단의 오름길은 1000m라고 되어 있다. 나무 계단을 조금만 올라가면 오래된 성돌에 붙어 있는 하얀 물체들이 보이는데 그 앞의 안내판을 보면 성벽의 원형 보존을 위한 안전진단 및 계측용 기구들이라 한다. 그런 계측 기구들이 붙어 있는 오래된 성돌 위에 복원을 위해 새로 쌓은 성돌이 만드는 색상의 조화를 보면서 오르다 보니 어느새 나무 계단의 오르막이 끝나고 성곽의 내부로 넘어가는 상단부에 이른다(09:18).

 

이제 순성은 성곽 내부로 이어지는 포장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우측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하여 다시금 순환버스가 다니는 차도로 올라서는데 정면으로 N서울타워가 보인다(09:24). 이어 순환버스 종점인 동시에 관광버스 주차장인 팔각정휴게소를 지나 조금 더 올라서면 남산(270m) 정상이다(09:30). 넓은 광장에 N서울타워와 팔각정이 있는 남산은 목멱산으로도 불리며 조망이 시원스레 트이는 곳이다. 조망데크에서 북한산, 도봉산 및 수락산, 불암산 등을 조망하면서 쉬었던 발걸음을 남대문이라 불리는 숭례문으로 옮긴다(09:42).

 

팔각정에서 내려가면 목멱산(남산) 봉수대 터가 나오고 길은 다소 경사진 내리막 계단길로 바뀌어 고도를 빠르게 떨어뜨린다. 성곽과 나란히 내려가는 돌계단을 따라 남산 케이블카 승강장을 지나고 잠두봉 포토 아일랜드라 적힌 조망데크를 만나 잠시 들러서 팔각정에서 보았던 북한산 방향을 다시 한번 더 보고 내리막길을 계속 이어간다(09:50). 조금 더 내려가 남산의 중턱에 이르면 공사장에서 쓰이는 듯한 철판 가림막이 세워져 있는데 2014년 9월 19일자로 발굴조사가 끝났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는 남산 회현자락 유적 발굴현장으로 발굴조사가 연장되어 계속 진행 중인 곳이다(09:57). 가림막을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면 서울특별시 교육연구 정보원 건물이 나오는데 맞은편에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다(10:00). 서울특별시 교육연구 정보원 건물은 원래 1970년 7월 25일 개관하였던 어린이회관에서 국립중앙도서관으로 변경되었다가 지금의 건물로 바뀐 것이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홈페이지(http://ahnjunggeun.or.kr)의 '안중근의 사상과 정신 자취 - 애천/애족/애인사상' 페이지를 보면 "안중근은 교육가이며 애국계몽 운동가로 민족정기의 화신이며 천주교를 전도하는 종교사상가로 그리고 일제의 군경과 직접 맞서 싸운 의병지휘관으로 항일운동에 헌신하였으며 나아가 우리나라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처단한 위인으로서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을 이룩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마침 오늘이 현충일이라 열시 정각에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의 사이렌이 울린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5월 16일부터 7월 15일까지 약 두 달간 기념관 관람이 제한된다고 한다. 생전 어록을 새겨놓은 주변의 빗돌들을 둘러보고 발걸음을 아랫편에 있는 백범광장으로 옮긴다. 성곽은 광장 좌측으로 이어는데 우측편에 서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주석 백범김구선생 상'이 넓은 광장을 지켜 보는 듯하다. 새로 복원된 성곽이 시작되는 곳 앞에는 성곽 가운데 땅에 묻혀 있던 130m 구간을 원형대로 복원했다는 안내문이 있으며 성곽을 따라 내려가기 전 잠시 멈추어 서서 내려왔던 남산을 뒤돌아본 후 숭례문을 향한 내리막길을 이어간다.

 

남산공원이라 표기된 커다란 글자판 앞의 도동삼거리에서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 내려가면 1961년 12월에 준공되었다는 남산육교가 나오고 그 아랫편에 2008년 2월 10일 방화로 2층 누각이 소실되었던 숭례문(崇禮門, 국보 제1호)이 있다(10:20).

 

숭례문(崇禮門)

지정번호 : 국보 제1호 / 지정일 : 1962.12.20

조선 태조 7년(1398)에 한양도성의 남쪽 대문으로 세워졌다. 그 후 세종 30년(1448), 성종 10년(1479), 고종 연간에 큰 수리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매일 밤 인정(10시 무렵)에 문을 닫았다가 다음 날 아침 파루(4시 무렵)에 문을 열었는데, 이때 문루에 종을 달아 그 시간을 알렸다. 장마나 가뭄이 심할 때는 임금이 몸소 기청제와 기우제를 지내는 등 숭례문에서는 국가의 중요한 행사가 거행되곤 하였다. 석축 위에 세워진 중층 누각은 장식이 간결하고 내부 구조가 견실하여 조선 초기의 건축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 1907년부터 1908년 사이에 해체보수를 하였다. 한국전쟁 때 피해를 입어 1961년부터 1963년 사이에 해체보수를 하였다. 2008년 2월 10일 방화 사건으로 크게 훼손되어 2013년 4월까지 복구하였으며, 이때 좌우 성곽도 함께 복원하였다.

… ['서울 숭례문' 안내문 全文]

 

순성 발걸음은 서울역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만나는 횡단보도에서 도로를 건너 다시 숭례문 방향으로 진행하여 좌측 맞은편으로 보이는 대한상공회의소 건물을 향해 도로를 또 건넌다(10:26). 유리창 벽면으로 이루어진 대한상공회의소 건물 담장을 겸하는 성곽의 시작부에는 다음과 같이 음각된 검은 대리석이 있다.

    서울성곽

    이 성곽은 조선 태조 5년(1396년)에 축성된 서울성곽의 일부 구간으로서 옛 성곽의 흔적을 재현시키고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복원·정비한 것이다

    2005. 10. 25

 

그래서인가 유난히 하얗게 보이는 성곽은 건물의 담장 역할을 하면서 도로와 나란히 이어지는데 중간의 거뭇거뭇한 옛 성돌이 새로 복원된 성돌과 묘한 조화를 이루는 짧은 구간도 만난다. 우측 퍼시픽 타워와 대한통운 빌딩 사이의 골목길로 진행하여 서소문로로 나간 후 횡단보도를 건너니 순성길이 헛갈린다(10:32). 시청 방향으로 내려가는데 아무래도 방향이 틀린 것 같아 2012년에 작성하였던 GPS 트랙을 띄워 보니 역시나 반대 방향이다. 횡단보도를 건너 파리바케트 매장 앞의 골목길을 따라 배재학당역사박물관 앞을 지나야 하는 것을 우측으로 내려간 것이다(인왕산을 지나 창의문안내소에서 나누어주는 한양도성 안내지도를 보면 대한상공회의소 담벽을 대신하는 복원된 성곽을 따라 서소문로까지 진행한 후 좌측의 호암아트홀을 보면서 내려간 사거리에서 도로를 건너 좌측 골목길로 진행한다고 되어 있다).

 

다시금 정상적인 순성길을 따라 배재학당역사박물관 앞을 지나면 덕수궁 돌담 앞 갈림길을 만난다(10:39). 좌측 7시 방향으로 진행하여 정동극장을 지나면 '을사늑약 체결의 아픔이 서린 곳'이라 적힌 중명전 안내판이 나온다(10:41). 우측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덕수궁 중명전을 밖에서 잠시 살펴보고 순성길을 다시 이어간다. 캐나다 대사관 앞의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된 정동회화나무를 지나 조금만 더 걸어가면 정동사거리인데 돈의문(敦義門, 서대문)이 있었던 자리에는 지금은 강북삼성병원 건물이 우뚝 솟아만 있다(10:50).

 

강북삼성병원 본관으로 사용되었던 경교장(京橋莊, 사적 제465호)을 눈으로만 보고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서울특별시 교육청을 지나 만나는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성곽이 보이는데 좌측편으로는 아파트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10:55). 월암근린공원으로 올라가다 보면 서울기상관측소 방향의 성곽으로 오르는 계단이 보여 올라보니 길이 없다고 한다. 다시 내려와 가옥들 사이의 좁은 골목길을 걸어가다가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이정표가 서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11:01). 이정표가 가리키는 좌측길로 사직터널 상단부를 지나면 끊어진 성곽이 나오고 내측인 우측에는 '인왕산 안내도'가 있다(11:04). 복원된 성곽과 나란히 진행하는 산책길은 이정표와 철제문 그리고 경비초소가 있는 무악동입구에 이른다(11:11).

 

지금까지 완만했던 순성길은 이제 인왕산을 향해 다소 거칠은 오르막 계단길로 바뀌어 이어진다. 계단길을 오르고 또 오르다가 잠시 멈추어 선 채 지나온 남산을 뒤돌아보고서 순성길을 다시 이어간다. 햇볕을 가려줄 나무 하나 없는 계단길을 오르다 보면 철제 계단이 나오고((11:27) 잠시 후 인왕산(339m) 정상에 오른다(11:33). 정상부에 있는 작은 바위 위에는 삼각점[서울 467 / 1994 복구]이 매설되어 있으며 사방으로 조망이 시원스런 곳이다. 성곽 너머 저 멀리 북한산의 족두리봉에서 향로봉을 지나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비봉능선과 보현봉이 하늘선을 그리며, 앞쪽을 보면서 아침에 출발했던 흥인지문이 있을 청계천 일대에서 남산을 거쳐 이곳까지 걸어온 자취를 눈으로 살펴본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15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있어 다시 성곽을 따라 창의문을 향해 내려간다(11:48, 인왕산의 무악동입구~창의문 간 구간은 매주 월요일(공휴일인 경우 화요일)은 탐방이 불가함).

 

성곽을 보수하기 위한 공사용 가림막을 지나면 성곽은 급하게 내려가는데 이런 곳에 어떻게 성을 쌓았을까 궁금해진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짧게 끝나면서 순성길은 성곽을 넘어 외부로 넘어가는 나무 계단으로 이어진다(11:52). 성곽 외부의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성곽을 보니 성곽이 틀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성돌을 'ㄴ'자 모양으로 살짝 파내어 맞물리게 쌓은 것에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가 있다. 코코넛 열매 등의 열대과일 껍질을 가공처리하여 만든 친환경 매트로 정비된 순성길, 다시 성곽 내부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을 만난다(11:56).

 

성곽에 올라서면 '정상 470m - 현위치 - 창의문(자하문) 2000m'라고 표기된 안내판이 있다. 잠시 후 이정표가 나오고 성곽을 등지고 내려가는 순성길은 북악스카이웨이로 내려서게 된다(12:01). 나무로 정비된 인도를 따라 좌측으로 내려가는 순성길은 청운공원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거쳐 윤동주문학관을 지나 창의문로에 내려서는데 맞은편에는 최규식 경무관 동상이 보인다(12:08). 보행자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 청계천 발원지 표석을 보고 계단을 올라 창의문 관리소 전의 의자에서 쉬었다가 창의문을 돌아보고 북악산 구간을 넘어가기 위해 출입신청서를 작성한 후 창의문안내소에서 표찰을 교부 받는다(12:11~12:25). 백악(북악산) 구간은 군사보호구역으로 신분증(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이 있어야만 출입이 가능하다. 매주 월요일(공휴일인 경우 화요일)은 탐방 휴무일이며, 개방시간은 하절기(3월~10월)는 09:00~16:00(퇴장시간 18:00), 동절기(11월~2월)는 10:00~15:00(퇴장시간 17:00)까지다.

 

창의문(彰義門, 사적 제10호(서울 한양도성)

창의문은 인왕산과 백악산이 만나는 곳에 있는 문이다. 사소문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에 지어진 문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문루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741년(영조 17)에 다시 세운 것으로, 문루를 새로 지으면서 인조반정 때 반정군이 이 문으로 도성에 들어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공신들의 이름을 새긴 현판을 문루에 걸어 놓았다. 이 문 부근의 경치가 개경(開京)의 승경지(勝景地)인 자하동과 비슷하다고 하여 자하문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 ['창의문' 안내문 全文]

 

창의문 안내소에서 북악산으로 오르는 길 역시 제법 가파른 계단길로 이어지며 우측 방향으로는 사진 촬영이 제한된다. 성곽 너머로 보이는 북한산의 모습과 함께 성돌에 붙어 있는 담쟁이덩굴을 보면서 올라간다. 내려오는 탐방객들과 교행하면서 쉼 없이 올라서니 드디어 북악산 아니 백악마루는 우측으로 있다는 안내판을 만난다. 발걸음을 우측 백악마루로 향하면 금방 북악산(342m) 정상에 이르는데 '白岳山'이라 음각된 작은 정상석이 있다(12;46). 속절없이 흐르는 땀을 식히기 위해 나무의자에 배낭을 벗어 내려놓고 쉬었다가 다시 일어나 순성길을 따른다(12:56).

 

갈림길로 내려와 조금만 가면 1·21사태 소나무가 나오고 이어 지척의 청운대에 이르는데 여러 개의 나무의자가 있다(13:00). 백악마루에서 쉬었기에 계속 이어가는 순성길은 나무 계단으로 성곽을 넘어 외부로 내려가서 진행한다. '성벽 축조의 시대별 차이' 안내판과 함께 축성된 모습도 보면서 걸어가다가 다시금 성곽 내부로 들어간다. 돌출된 치(雉)인 백악곡성을 잠시 둘러보고 내려가면 북대문인 숙정문(肅靖門, 사적 제10호(한양도성))을 만난다(13:22).

 

숙정문(肅靖門, 사적 제10호(서울 한양도성))

숙정문은 한양도성의 북쪽 대문이다. 처음에는 이름이 숙청문(肅淸門)이었으나 후에 숙정문(肅靖門)으로 바뀌었다. 현존하는 도성의 문 중 좌우 양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것은 이 문이 유일하며, 1976년에 문루를 새로 지었다.

… ['숙정문' 안내문 全文]

 

숙정문을 외곽에서도 본 후 다시 성 내부로 들어와 말바위 안내소를 향한 발걸음을 계속 이어간다(13:24). 성곽 너머 한때 고급요정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삼청각의 모습을 보았는가 싶으면 어느새 말바위 안내소가 나온다(13:28). 창의문 안내소에서 받은 표찰을 말바위 안내소에 반납하고 조금만 가면 나무 계단길이 나오는데 이곳으로 넘어가야 한다(13:30). 하지만 지난 2012년에 나무 계단을 안 넘고 직진했다는 기억을 하면서 내려가는데 성곽과 점점 멀어져 가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창의문 안내소에서 가져온 안내지도를 보니 순성길은 조금 전 나무 계단을 넘어 성곽 외부로 진행하라 한다. 별수 없이 다시 나무 계단으로 돌아와 성곽 외부로 넘어가서 내려가는데 취병(翠屛, 살아있는 나무로 만든 울타리)) 안내판이 보이고 조금은 깊숙이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서니 성곽과 다시 만나는데 우측편으로 취병을 만들어 놓아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13:49).

 

친환경 매트를 따라 와룡공원 입구까지 가니 이정표는 공원 내부가 아니라 그냥 외곽을 따라 직진하라고 한다(13:54). 2012년에는 이곳에서 와룡공원 내부로 들어가 성곽을 따라 진행했었는데 오늘은 외곽으로 내려간다. 낙산을 보면서 나무 계단으로 정비되어 정비된 길을 내려가다가 다시금 친환경 매트로 바뀌어 암문에 이른다(13:58). 성북동 북정마을 방향을 등지고 암문을 통과하여 성곽을 따라 내려가는데 잔뜩 찌푸렸던 하늘이 기어코 빗방울을 뿌린다. 점심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 지금까지 걸어왔더니 약간은 허기가 들어 빗방울도 피할 겸 간식을 먹으면서 쉬어간다(14:05). 서울과학고등학교를 마주 보는 위치의 나무의자에 앉아 오 분여를 쉬었다가 다시 순성길을 따른다(14:10).

 

내리는 둥 마는 둥 하던 비가 조금씩 굵어지는 듯 하니 발걸음은 자연스레 빨라진다. 서울과학고등학교 후문인 듯한 출입문 앞으로 보이는 골목길, 그 골목길의 담벽 일부가 되어버린 한양도성 성곽을 따라 경신고등학교를 지나고 성북동 도시텃밭 너머의 혜성교회 진출입로로 변한 성곽을 보면서 진행한다. 이렇게 소중한 문화유산이 개인의 사유물로 변해버린 한양도성, 그나마 원형이라도 남아 있으면 다행인 것 같다. 성곽의 흔적이 사라졌다가 다시 보이는 곳에는 두산빌라의 축대 일부로 남아 있다(14:19). 앞서 가는 한양도성 순성 순례자들을 추월한 발걸음은 삼거리로 이어지는데 맞은편에 복원된 성곽이 보인다(14:21). 성곽과 가옥 사이의 철망문을 통과하여 계단길을 올라가면 이내 혜화문(惠化門, 사적 제10호(한양도성))이 나온다(14:22).

 

혜화문(惠化門, 사적 제10호(서울 한양도성))

한양도성의 동북쪽 문이다. 창건 당시에는 홍화문(弘化門)으로 불렸으나 1511년(중종 6)에 혜화문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영조 때에는 없던 문루를 지어 올렸다. 문루는 1928년에, 홍예는 1938년에 헐렸는데, 1994년에 본래보다 북쪽으로 옮긴 자리에 문루와 홍예를 새로 지었다.

… ['혜화문' 안내문 全文]

 

새로 복원된 혜화문을 통과해서 도로에 나가 우측편 고갯마루에 있는 횡단보도를 이용하여 맞은편으로 건넌다(14:31). 안내지도에는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으로 내려가서 도로를 건너 올라오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새로 만들어졌는지 끊어진 성벽을 향해 바로 올라갈 수 있는 나무 계단을 따라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옛 성돌을 다시 만난다. 낙산 구간의 순성길은 나무 계단길로 정비되어 이어지고 좌측편 한성대입구역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된다(14:34). 뒤돌아보면 북악산과 우측편으로 북악스카이웨이의 팔각정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짙은 녹음 속의 한양도성 성곽을 찾아본다. 잠시 멈춘 발걸음을 다시 옮기어 옛 성돌 위에 새로 복원된 성돌이 쌓여 있는 성곽을 따라 걷는다.

 

산책로를 겸한 한양도성 순성길은 장수마을 입구를 지나(14:42) 낙산 정상을 향해 살며시 올라가는데 뒤돌아보면 북한산 보현봉과 문수봉에서 백운대로 이어지는 산성주능선 그리고 인수봉이 시원스런 조망을 선사한다. 오르막길이 끝나면서 완만해지는 순성길은 암문으로 이어지고 나무 계단을 올라 암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넓은 놀이광장이 있는 낙산(124m) 정상에 이른다(14:48).

 

성곽이 끊어진 곳의 마을버스 회차지점에서 잠시 길을 찾다가 성곽 내부로 가는 길 대신 외곽길로 내려가기로 한다(14:51). 내부길은 이화동 벽화마을을 지나면서 마을길과 차도가 얽히어 복잡하게 이어지는 반면 외곽길은 한적하게 내려간다. 일방통행의 차도를 따라 반대로 내려가는 순성길, 여러 군데의 암문을 만나지만 계속 외곽으로 내려가면 아침에 출발했던 흥인지문이 도로 건너편에 있는 '흥인지문 교차로'를 만난다(15:05). 인도의 보도블럭에 새겨진 '서울한양도성 SEOUL CITY WALL' 표식을 보면서 한양도성 순성 순례를 끝내고 성곽 내부에 조성된 동대문성곽공원과 한양도성박물관 건물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면서 휴대폰의 GPS 트랙도 함께 종료한다.

 

도성을 쌓아야만 했던 민초의 애달픔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한양도성, 일제시대에 허물어지고 해방된 후에는 개발이라는 잣대로 뭉개어졌지만 다시금 복원되어 우리의 곁을 지키고 있다. 이조시대에서 현재까지 시공을 초월하여 만날 수 있었던 조상의 문화유산을 따라 걸었던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