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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팀 합동 산행

[2015-04-26] 대구팀 합동산행-17_함양 황석산 - 산성과 암릉의 아름다운 조화

[대구팀 합동산행] 함양 황석산 - 산성과 암릉의 아름다운 조화

[산행일시] 2015.04.26(일) 10:45~16:10(5시간 25분 // 산행시간 : 3시간 54분 / 휴식시간 : 1시간 31분)

[날       씨] 맑음 / 미세먼지로 원거리 조망 불량

[산행인원] 11명(서울팀 3명, 대구팀 8명 / 이하 존칭 생략)

                   (서울팀) 하이맛, 범솥말, 성봉현

                   (대구팀) 차성섭, 임상택, 기경환, 차수근·박금선, 권재형, 박상훈·최미애

[접       근] 서울역 → 동대구역 : KTX 열차 / 동대구역 → 우전마을(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사방댐 : 대구팀 전세버스

[이       탈] 장자벌(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 동대구 : 대구팀 전세버스 / 동대구역 → 서울역 : KTX 열차

[산행시간] 우전마을 사방댐(10:45) → 피바위(11:04~11:08) → 황석산성(11:34~11:37) → 황석산(12:28~12:36)

                   → 황석산성(12:48~13:32) → 거망산-장자벌 갈림길(14:40~14:59) → 청량사(15:59) → 장자벌(16:10)

[산행지도] 영진5만지도(영진문화사 2011년판)

 

[구글어스]  2015-04-26_대구팀_함양_황석산.gpx

 

[산행기록]

무상한 것이 세월이라 하였나, 2014년 대구팀과의 가을 산행이 끝나고 벌써 여섯 달이 되었다. 한 달여 전 산행지는 황석산에서 거망산까지 이어가는 것으로 정하였고 인터넷으로 동대구행 열차표까지 예약이 끝났다. 시인마뇽 선배님은 불참할 수 없는 지인 결혼식으로 산행은 같이 못 하시지만 뒤풀이에 참석하신다 하여 산행 당일 하이맛 선배님(이규성 교수님)과 범솥말 선배님을 서울역에서 만나 동대구로 출발한다. 매번 그러하였듯이 이번에도 아침 6시 25분에 출발하는 KTX 부산행 열차편로 이동하는 것이다. 범솥말 선배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우리의 목적지인 동대구역에 도착하여 개찰구로 나가는 통로로 올라가니 우리를 마중나온 권재형님이 보인다. 이어 대합실에서 대구참사랑산악회의 동갑내기 친구들과 반갑게 악수를 나눈 후 대기하고 있는 승합차에 탑승한다. 오늘은 거창이 고향인 대구팀의 총무인 대박님이 보이질 않는데 집안에 일이 있어 저녁 뒤풀이 자리에 온다고 한다.

 

거창으로 가는 중간에 고속도로 임시휴게소로 진입하여 대구팀이 준비한 아침을 먹고 막힘없이 함양에 이른다. 거창과 함양 일대를 여러 번 들르는 것 같다. 이번이 대구팀과의 세 번째 방문이고 대간 산행을 하면서 두세 번 들렀던 곳이다. 그리 낯설지 않은 곳을 보는가 싶었는데 우리를 태운 버스 기사님은 어느새 우전마을을 지나 차량 한 대만 지날 수 있는 폭이 좁은 도로를 능숙한 운전솜씨로 가볍게 올라 산행기점인 사방댐의 주차장에 주차한다. 우전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였다면 대략 한 시간 정도 소요될 시멘트도로를 수월하게 올라온 것이다.

 

깊은 산이 주는 상큼한 공기를 피부로 느끼면서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황석산을 향해 출발한다(10:45). 들머리에서 바로 만난 이정표는 정상까지 2.6km 남았고, 하산길은 3.1km라고 알려주고 있다. 국가에서 시설한 상수도시설이 없는 것인지 '우전마을 상수도시설'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펜스를 지나자마자 황석산을 가려면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10:48). 통나무로 만든 나무계단길로 시작되는 황석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흙길이 아니라 이내 돌투성이의 길로 바뀐다. 내륙에 있는 산이라 흙산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지우라고 하면서 크고 작은 돌덩이가 만드는 길로 인도한다. 산길이 우향으로 휘어지는 곳에 서 있는 안내판 앞에서 경환 친구가 일행들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다(11:04). 다가가니 그 안내판은 '피바위' 안내판이었으며 피바위에 대한 유래를 설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진왜란의 뼈 아픈 경험을 잊어버린 선조의 실정으로 발생한 정유재란 당시의 슬픈 이야기이다. 시선을 돌리면 이정표가 보이는데 황석산 정상까지는 1.9km가 남았다고 하니 0.7km를 걸었다는 것이 된다.

 

그리 가파르게 경사진 바위 절벽은 아니지만 완만하면서도 거대한 바윗면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닫지 않는 곳의 검붉은 표면은 정유재란 당시에 아로새겨진 혈흔이리라. 황석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산길을 적시는 물을 건너 산허리를 따라가면서 조금씩 경사도를 올려간다. 오 분여 후 짧지만 다소 가파른 오르막의 돌계단길을 오르니 산등성이인데 좌측으로 산줄기가 우람하게 보인다(11:14). 아직은 봄이어야 할 시기이지만 때 이른 초여름의 기온으로 몸이 적응하질 못한 것인지 땀도 식힐 겸 간식거리로 미각을 즐기면서 잠시 쉬어간다(11:16~11:25). 하지만 바로 윗편 소나무가 있는 암릉에서 불러도 내려올 생각없는 경환 친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짧은 휴식을 끝내고 줄이 내려진 바윗길을 올라 조금 더 올라가니 좌측의 우전마을과 우측의 황석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삼거리가 나온다(11:30). 정상을 향해 고도를 높여만 가는 산길에서 하늘을 바치는 듯한 커다란 두 개의 돌탑을 볼 수가 있는데 그곳에 올라서니 황석산성의 성문인 듯하다(11:34). 황석산성 안내판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황석산성(黃石山城)

                                                                                                                                                                경상남도 사적 제322호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안의면과 서하면의 경계인 황서간(1,190m) 정상에서 좌우로 뻗는 능선을 따라 계곡을 감싸듯 쌓은 포곡식산성(包谷式山城)이다.

   성벽은 돌로 쌓은 부분과 흙과 돌을 섞어 쌓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체길이는 2.750m, 높이는 3m 정도이다. 성문은 동∙서∙남∙북동쪽에 작지만 문루(門樓)를 갖추고 있다. 성안 동쪽의 계곡 주변에서는 크고 작은 건물터가 확인되고 있다. 현재 면적은 446,186㎡ 정도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내용과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영호남의 관문으로서 전북 장수와 진안으로 통하는 요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포곡식산성의 구조로 보아 가야를 멸망시킨 신라가 백제와 대결하기 위해 쌓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는 함양군수 조종도와 안의현감 곽준 등이 왜적과 견적을 벌였으며, 500여 명이 순국하기도 하였다.

 

성을 따라 조금만 가면 황석산 정상까지 1.2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오고 그 너머 하늘선에는 황석산 정상이 보인다. 성곽을 따라 걷는 경환 친구와 대구참사랑산악회 회장인 차성섭 친구를 쫓다보니 성곽을 벗어나 남문 계곡능선으로 진행하는 팀과 우리 세 명으로 자연스레 구분되어 진행하게 된다. 아무런 설명없이 그림만 그려진 '황석산성(복원계획) 안내도'를 지나니 무너진 성곽이 나타난다. 우리도 성곽을 등지고 키 작은 산죽이 자라고 있는 계곡 능선을 따라 고도를 높여가는 산길을 올라간다. 가던 길 잠시 멈추어서서 뒤돌아 보니 우전마을 너머로 통영-대전간 고속도로가 회색빛 선을 그리고 있다. 점점 더 경사가 급해지는 오름길에는 아랫편과 달리 이곳에는 봄의 기운이 드센지 만개한 연분홍색 진달래가 땀을 흘리며 오르는 우리에게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앞서 가던 경환 친구가 왼쪽편 저 먼거리의 바위를 가리키며 거북바위라 하는데 이곳에서 보는 것이 가장 확실하단다. 한 마리 거북이가 산에서 하늘로 달려갈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멀리서 보아도 거북이와 흡사하다.

 

거북바위 조망지를 지나 진달래 관목 숲에서 황석산성 능선으로 나가니 한줄기 바람이 시원스레 땀을 식혀준다(12:08). 더불어 막힘없이 트이는 시야는 눈도 즐겁게 하지만 미세먼지가 원거리 조망을 가로막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좌우로 낭떠러지를 만들면서 황석산으로 이어지는 암릉의 산마루는 마치 공룡의 등뼈를 보는 듯하다. 남문 방향의 계곡능선으로 올라온 상택 친구를 암릉길에서 다시 만나고(12:19) 자연적 지형의 특성을 살려 암봉과 암릉을 연결한 황석산성의 성곽을 따라 우전마을 갈림길로 내려간다(12:23).

 

돌과 돌 사이에 ㄱ자 앵글과 나무로 발판을 만들고 쇠파이프로 안전난간을 만든 것도 모자라 굵은 줄이 내려진 황석산 정상 오름길에서 헤어졌던 일행들과 다시 만나 정상을 향해 오른다. 정상에 이르기 전 좌측으로 보이는 거북바위는 이곳에서 보니 거북이라기 보다는 두꺼비 같다고 생각할 즈음 어디에선가 숨어 있었던 바람이 정상으로 오르는 발걸음을 방해하려는지 쓰고 있던 모자를 벗겨버린다. 하지만 시원한 바람에 더워진 체온이 내려가니 시원스럽기만 하다. 조용하던 황석산 정상에 우리 일행들이 모두 모여 뒤에 올라온 산객에게 부탁하여 단체사진을 부탁한다(12:28).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에서 반야봉을 거쳐 성삼재로 이어지는 지리 주능선이 희미하게 보이지만 사진기 렌즈의 한계로 사진에는 나타나질 않는다. 아울러 지리산에서 시작하여 빙 돌아온 백두대간이 함양땅을 지나 솟구친 백운산과 영취산으로 불리우는 1075.6봉을 연결하는 능선도 시선을 빼앗아 간다. 가야 할 거망산 방향의 우측으로는 금원산과 기백산도 보이는 등 주변 산세를 보고 있노라니 시간도 금방 지나버리고 마냥 있을 수만은 없기에 아쉽지만 황석산 정상에서 내려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올라온 길이 암릉길이었듯이 내리막길 역시 가파은 암릉길로 이어진다. 위에서 내려다 볼 때 시각적으로 거의 수직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굵은 줄이 내려져 있어 속도는 더디어도 두어 번에 걸쳐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성곽에 내려선다(12:48).

 

성곽 옆 평탄한 곳에 점심상을 차리는데 항상 느끼지만 대구팀의 먹거리는 풍성함을 넘어 진수성찬이다. 평상시 혼자 다닐 때에는 그저 움직이는데 필요한 열량을 낼 수 있는 최소한의 먹거리만 준비하지만 대구팀과의 합동산행에서는 산행을 온 것이 아니라 소풍을 왔다는 느낌이 든다. 미안한 마음을 한 구석에 넣어놓고 그 잔치에 조촐히 끼어 점심을 해결하고서 북봉을 향해 다시 출발한다(13:32).

 

북봉으로 가는 길을 멈추고 잠시 뒤돌아 보는 황석산의 자태는 유럽 알프스에 솟은 마터호른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뾰족하다. 다시 걸음을 옮겨 거북바위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촬영하는데 나뭇가지에 가려 제 모습이 나타나질 않는다. 하지만 크고 평평한 돌덩이를 이고 있는 바위에 오르면 거북바위가 지척인데 조금 전 모습보다는 거북이처럼 보인다. 거북바위를 지나 북봉 들머리에 도착하니 암벽능선으로 위험하여 우회하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13:51). 황석산 북봉을 좌측으로 우회하는 길에도 등산용 줄이 아랫편을 향해 내려져 있는데 이후 몇몇 구간에도 줄이 있다. 올려다 보는 북봉은 거의 수직벽처럼 보이지만 그 길도 어느새 끝나 반대편 방향에서 오는 길목의 안내판을 만난다(14:03). 일행들이 모두 앞서간 길을 따라 권재형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측의 탁현 방향 하산길(뫼재)을 지나고(14:10) 산죽길을 쉬엄쉬엄 걷다보니 거망산과 장자벌로 분기되는 삼거리에서 쉬고 있는 일행들과 합류한다(14:40).

 

이제 이곳에서 거망산을 갈 것인지 아니면 장자벌로 내려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시간을 확인하니 거망산으로 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 되어 미련없이 장자벌로 내려가기로 의견이 일치되어 우측 3시 방향의 내리막길을 따라 하산을 시작한다(14:59). 좌측의 거망산에 눈길 한번 주고 내려가는 길은 '7부능선 / 현위치번호 함양 황석산 3-2'라고 쓰인 이정목을 지나 계속 빠르게 고도를 낮추라 한다(15:16). 기백산을 향해 내려가는 산등성이를 따라 얼마나 내려갔을까, 장자벌까지 1.81km 남았다고 표기된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에서 우측 계곡능선으로 방향을 바꾼다(15:31).

 

연속되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차수근 친구와 함께 말동무를 하면서 내려간다. '장자벌입구 1.4km' 이정표를 지나고 다시 '장자벌입구 560m' 이정표를 만나면서 급하던 경사길이 완만해진다(15:58). 잠시 후 우측으로 '덕유산 청량사 부처님진신사리보탑건립'이라 쓰인 안내판이 보이는데 함양 황석산에서 갑자기 왠 덕유산을 거명하는지 의아해진다. 장자벌로 내려가는 도로 옆 청량사 경내의 작은 연못 앞의 돌덩이 위에 올려진 거북바위(?)를 지나 장자벌교 바로 전에 세워진 황석산 등산안내도를 보고서야 '덕유산 청량사'라 한 이유를 넌지시 알 수 있었다(16:10). 그러고 보니 덕유산은 전북 장수군과 경남 함양군의 경계를 가르는 산줄기인 것이다. 즉 황석산의 좌측편 능선이 덕유산에 기대어 있어 그렇게 표현한 것이이라 생각한다. 장자벌교을 건너 청량사 입구임을 알리는 커다란 표석 옆의 '장자벌' 버스 정류장에서 대기 중인 대구팀 버스를 만난다. 암릉지대의 황석산 산행을 무사히 마무리한 것이다.

 

계획했던 황석산에서 거망산까지의 연계산행은 아니었지만 즐거운 사람들과 함께 하여 더욱 즐거웠던 합동산행, 이제 그 산행을 마무리하고 남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명승지인 수승대를 관람한 후 동대구역 인근에 기경환 친구의 아내가 개점한 '옛날파전'에 도착하니 시인마뇽선배님과 대박 총무님이 기다리고 있다. 깊어가는 밤시간만큼 술술 익어가는 우정을 오늘이라는 일기장에 또 한 페이지를 기록한다.

 

 

                                                                                        수승대

 

수승대는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황산마을 앞 구연동에 있는 명승지이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였고, 조선 때는 안의현에 속해 있다가 일제 때 행정구역 개편으로 거창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승대는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가 대립할 무렵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사신을 전별하든 곳으로 처음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하였다 해서 근심 수(愁), 보낼 송(送)자를 써서 수송대(愁送臺)라 하였다.

 

수송대라 함은 속세의 근심 걱정을 잊을 만큼 승경이 빼어난 곳이란 뜻으로 불교의 이름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 후 조선 중종 때 요수신권(樂水 愼權)선생이 은거하면서 구연서당(龜淵書堂)을 이곳에 건립하고 제자들을 양성하였고 대의 모양이 거북과 같다하여 암구대(岩龜臺)라 하고 경내를 구연동(龜淵洞)이라 하였다.

 

지금의 이름은 1543년에 퇴계 이황(退溪 李滉)선생이 안의현 삼동을 유람차 왔다가 마리면 영승리에 머물던 중 그 내력을 듣고 급한 정무로 환정하면서 이곳에 오지는 못하고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며 음이 같은 수승대(搜勝臺)라 고칠 것을 권하는 사율시(四律詩)를 보내니 요수 신권선생이 대의 면에다 새김에서 비롯되었다.

 

경내에는 구연서원(龜淵書院) 사우(祠宇) 내삼문(內三門) 관수루(觀水樓) 전사청(典祠廳) 요수정(樂水亭) 함양제(涵養齊) 정려(旌閭) 산고수장비(山高水長碑)와 유적비(遺蹟碑) 암구대(岩龜臺) 등이 있는데 이는 유림과 거창신씨 요수종중에서 공동 관리하고 있으며, 솔숲과 물과 바위가 어울려 경치가 빼어나고 또한 자고암과 주변에는 고란초를 비롯한 희귀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원문 출처] 거창군 수승대관리사무소 홈페이지(http://www.geochang.go.kr/ssd) '수승대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