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백두대간 산행 기록/한반도 물길을 동서로 가르는 산줄기

[2015-03-30] 백두대간 11구간(큰재 → 화령재) : 마룻금의 고도가 낮다 하지만 오르내리기는 마찬가지

백두대간 11구간(큰재 → 화령재) : 마룻금의 고도가 낮다 하지만 오르내리기는 마찬가지

 

[산행 일시]  2015.03.30(월) 07:15~18:37(11시간 22분)

                  (산행시간 : 9시간 50분 / 휴식시간 : 1시간 32분 / 헛걸음시간 : 0시간 0분 // 대간 (접근·이탈)시간 : 0시간 0분)

[날       씨]  맑음 / 미세먼지 약간 심함

[산행 인원]  성봉현

[대간 접근]  상주 → 옥산 : 상주 시내버스 / 옥산 → 큰재 : 옥산 개인택시(8,000원)

[대간 이탈]  화령재 → 화령 : 화서 개인택시(5,000원) / 화령 → 서울(남부터미널) : 시외버스(우등고속)

[산행 시간]  큰재(07:15) → 회룡재(08:13) → 개터재(08:42~08:46) → 윗왕실재(09:57~09:59) → 백학산(10:54~11:15)

                  → 개머리재(12:28) → 지기재(13:22~13:25) → 신의터재(14:40~15;02) → 무지개산 갈림길(16:11~16:24)

                  → 437.7봉(17:25~17:33) → 윤지미산(17:50~17:54) → 화령재(18:37)

[산행 지도]  1:50,000  상주, 관기(국토지리정보원 1:25,000 온맵 편집)

                  월간 '사람과 山' 1대간 9정맥 종주지도(2009년 20주년 특별부록) 7/8구간(사기점고개~개머리재/개머리재~비재)

 

 

 

[구글어스]  2015-03-30_백두대간_11구간_큰재~화령재.gpx

 

[산행 기록]

   오늘 11구간 산행을 위해 큰재로 접근하는 방법은 이곳 상주에서 옥산으로 이동한 후 옥산에서 택시로 가야 한다. 상주종합버스터미널로 가기 위해 천지연찜질방을 나와 상주역지구대 앞쪽 차도를 따라 이리저리 다니다보니 방향 감각이 사라졌다. 그냥 큰 도로로 ㄱ자 모양을 따라 역방향으로 가면 될 것을 괜히 골목길을 택했구나 후회되지만 느낌만으로 어렵게 찾아간다. 드디어 종합버스터미널이 마주 보이는 곳의 김밥천국 도챡해서 갈비탕으로 아침을 먹고 점심용 김밥 한 줄을 준비하여 터미널에 이르니 옥천을 경유하는 시내버스 첫차 시간(06:30)까지는 십 분 정도의 여유가 있다.

 

   옥산으로 가는 방법은 시내버스를 이용하거나 시외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지만 시외버스(직행)는 첫차가 아침 7시 10분에 출발한다. 버스 승하차장 왼편에 있는 시내버스 승차장으로 이동하니 옥산을 경유하여 선산까지 가는 시내버스가 보이는데 아직도 취침 중이다. 잠시 후 버스 기사님이 오고 버스에 승차하여 시동을 걸어 목적지인 옥산을 재확인하고 승차한다. 상주종합버스터미널을 6시 30분 정시 출발한 시내버스는 시내를 경유하면서 몇 명의 승객들이 탑승하고 어제와 달리 중간중간 정류장에서 정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옥산정류장에 도착하니 6시 57분이 되었다.

 

   어제 큰재에서 트럭에 편승하여 도착한 후 예약하였던 개인택시 기사님과 전화 통화를 끝내는가 싶었는데 삼 분여 만에 도착한 택시를 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가다 보니 정확히 10분 후 큰재에 이른다. 큰재에서 화령재까지 가는 길은 백학산과 윤지미산 오름길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해발 표고 차가 작은 데다가 대간 능선 중에서 가장 낮은 곳이라 하니 도상 거리 대략 35km라 하지만 부담없이 진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화령재를 향해 출발한다(07:15).

 

   어제에 이어 오늘도 대간길에서 가장 낮다는 구간, 일명 중화지구를 이어간다. 중화란 상주목을 따르던 화령현과 중모현을 이르는 말로,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과 모서면의 고려 때 행정구역인 중모현(中牟縣)과 상주시 화동면, 화서면, 화남면, 화북면의 조선시대 행정 구역인 화령현(化寧縣)의 첫자를 딴 것이다. 황악산과 속리산 사이, 천 미터 이상의 산이 없는 대간의 기세가 미약한 곳으로 추풍령에서 화령재까지 약 5~60km에 해당한다. 이 중화지구는 충청북도 사투리와 경상북도 사투리가 섞인 형태의 말씨를 쓰고 있으며, 표고가 낮으면서 기온이 3~5도 차이가 나는 고원지대의 특성으로 포도, 배, 사과 등의 과일이 많이 재배되고 있다.

 

   오늘도 낮 기온이 초여름처럼 올라간다 하지만 큰재의 아침 공기는 쌀쌀하여 겉옷을 벗지 못하고 백두대간 생태교육원 입구로 들어간다. 큰 돌을 잘게 부순 파쇄석을 깔은 생태교육원 입구로 들어가 직진하면 파쇄석이 끝나면서 바로 대간길의 들머리인 산길 입구가 나온다. 들머리의 참나무에 '백두대간 대장군 7호'라고 양각된 나무 팻말이 있는데 팻말을 묶은 줄을 따라 선답자 분들의 표지기가 어우러져 있다. 마룻금 능선이 아무리 낮다 하지만 큰재의 고도가 320능선 대이므로 400미터 능선까지는 일단 올라가야 한다. 서서히 오르는 산길은 능선이 낮아서인지 조망이 답답하지만 군데군데 피어 있는 연분홍 진달래가 반겨주니 그나마 다행스럽다. 묘가 있는 구릉에 도착하여 더워진 체온으로 겉옷을 벗어 배낭에 수납하고 다시 대간길을 이어간다(07:32~07:36). 능선이 오르내리는가 싶더만 높이를 낮추어 큰재를 지나는 68번 국지도로 이어지는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에 내려선다(07:43). 우측편에는 이정표[←버스타러 가는 길 1km (30분)  ↑회룡목장 120m  ↓큰재 1.6km (40분)]가 서 있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 이 분 정도 걸어가면 또 이정표[↑회룡목장  →회룡재 2.1km (1시간)  ↓큰재 1.7km (50분)]가 있는 삼거리인데 바로 앞 고갯마루에는 열려진 회룡목장의 철망문이 보인다(07:45). 이정표를 좌측에 두고 산길로 다시 들어가 완만한 능선을 따라 걸어가면서 좌측을 보니 회룡목장의 건물들이 보이지만 그 너머로 보이는 산줄기가 오히려 대간보다 더 당당하게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산꾼의 느낌은 이상스럽다. 그렇게 밋밋한 산등성이를 타고 가다 보니 또 한 번 내려서는데 이번에는 비포장 도로인 회룡재로 해발 표고 340m라 한다(08:13). 이정표[←공성 봉산(회룡마을) 600m  ↑개터재 1.7km (50분)  ↓큰재 3.9km (2시간)]의 시간은 너무 과장된 것 같다.

 

   차량 통행이 없는 것인지 낙엽만 쌓여 있는 회룡재 이정표를 등지고 맞은편으로 올라간다(08:15). 능선의 좌사면으로 우회하는 대간길은 이내 안부로 내려서는데 좌측으로는 인삼밭이 보인다(08:20). 인삼밭과 나란히 진행하는 산길은 472봉을 우사면으로 우회하는 곳으로 선답자의 표지기들이 매달려 있어 자연스럽게 따르게 된다(08:29). 좌측으로 높아만 보이는 구릉 능선이 언제 끝날지 모르던 우회길도 십여 분 진행하니 산등성이를 따라 내려오는 마룻금과 다시 만나고(08:39) 진달래 군락지를 벗어나 내려가니 조금은 깊게 느껴지는 안부인 개터재로 좌측으로 마을이 보인다(08:42). 이정표[↑윗왕실  ↓개터재  ↕백두대간 등산로]의 기둥에 '옛고개'라고 쓰여 있으며, 지기재산장의 아크릴 안내판에는 '개터재'라 되어 있다. 유용하게 식량을 제공한 날짐승들이 많아 개터재라 불렀다는 설과, 산세가 마치 개들이 모여 살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또한 부근의 봉산마을, 효곡마을, 왕실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넘나들던 고개라 해서 봉산재, 효곡재, 왕실재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물 한 모금 마시면서 쉬었던 발걸음을 다시 옮긴다(08:46). 약간 가파른 오름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구릉으로 올라서서 잠시 숨을 고르다가 다시 한 번 더 높이를 올려 [←백두대간 등산로→] 표시판이 있는 500능선 구릉에 이르는데 512봉으로 착각하였지만 완만한 산길을 조금 더 가서야 512봉을 만났다(09:07). 이제 높낮이의 차이가 그리 없는 능선을 따라 걷고 또 걷다 보니 두 방향으로 갈라진 [←백두대간 등산로→] 표시판을 만나는데 누군가 유성펜으로 '←개터재 2.7km', '이동통로→1km'라고 쓴 것이 보인다(09:35). 아침을 적게 먹은 것인지 약간의 허기가 져 햇볕이 따듯한 이곳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간식을 먹은 후 다시 출발한다(09:44).

 

   내리막길로 이어지던 산길이 완만해지면서 동물 이동 통로를 만나는데 좌측편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지만 우측편은 비포장 상태다. 지도에는 지명이 표기되지 않았어도 통상 윗왕실재로 부르는 고갯마루로(09:57)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안전대와 함께 서 있는 이정표[↓개터재 3.7km(약1시간20분) / 윗왕실재 400m / ↑백학산 2.9km(약1시간)]가 보인다. 백학산까지 약 3km의 거리이니 오늘 구간의 최고봉인 백학산에서 조금 이른 점심을 먹으면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대간길을 이어간다(09:57).

 

   좌측으로는 커다한 분지를 끼고 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계곡 능선을 만드는 반면 우측편 능선은 다소 가파른 비탈로 이어지는 형태의 대간길,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몇 개의 능선 구릉을 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북쪽의 499.1봉으로 산등성이가 분기되는 능선 분기점에 이른다(10:45). 이정표[↖백학산 정상(248m)  ↗(산촌체험관, 야영장, 산책로)]가 있는 야트막한 능선 구릉이다. 좌향으로 가는 산길은 이정표에 적힌 248m라는 거리를 한참 지나서야 백학산(615m)에 이르는데 거리 표기가 잘못되었다(10:54). 백학산 정상부에는 상주시청산악회에서 세운 정상석과 이정표[←백두대간 등산로→ / 백학산 / ←윗왕실] 그리고 나무 의자 두 개가 있다. 나무 의자에 배낭을 내려놓고 상주에서 준비한 김밥으로 이른 점심을 먹는데 아직 힘들다는 것을 느끼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입맛이 껄끄럽다. 결국 삼분의 일 정도도 먹지 못하고 남긴 채 행동식으로 준비한 간식거리로 점심을 대신하지만 에너지 보충이 제대로 될지나 모르겠다. 오늘 가야 할 길이 아직은 멀기에 배낭을 다시 정리하고 개머리재를 향한 내리막길을 시작한다(11:15).

 

   초반부터 급하게 내려가는 산길은 도대체 얼마나 고도를 낮추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가파르던 산길이 임도를 만나면서 끝나는데 고도계의 지시치가 백학산에서 600m였고 이곳이 393m이니 대략 200m의 높이를 떨어뜨린 것이다. 백학산 방향의 표시판이 훼손된 이정표[↓(백)학산 (약1시간20분) / 대포리 / →지기재 2.8km(약 1시간 00분)]를 지나 임도에 내려선다(11.28). 임도 옆으로는 개울물이 졸졸 흐르고 있는데 식수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할 것 같다. 비포장 임도가 시멘트 도로로 바뀌어 함박골마을 방향으로 내려가는 굴곡지점에서 대간길은 좌측 산길로 오른다(11:29). 짧은 오름을 올라서니 소나무와 참나무가 무성한 능선의 외길로 이어지면서 한동안 평탄하게 가다가 내려가는 길목에 상주시에서 세운 [←백두대간 등산로→] 이정표가 대간길이 아닌 갈림길을 막아서고 있는 곳을 지난다(11:56).

 

   계속 고도를 낮추다가 비가림용 비닐막이 쳐진 포도 농장이 있는 임도에 내려서는데 훼손된 이정표가 서 있다(12:09). 맞은편 산길로 계속 이어가는 대간길은 마을 뒷산을 산책이라도 하듯 삼밭을 지나 포도밭으로 조성하려는지 개간한 넓은 밭을 만난다(12:21). 비산비야 같은 대간길에 그나마 상주시에서 세운 [←백두대간 등산로→] 이정표가 길잡이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여름이라면 뚫고 나가기가 고역스러울 덩굴 지대를 지나니 또 다른 포도밭이 나오고 좌측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모서면 소정리와 대포리를 잇는 아스팔트 도로의 고갯마루가 나오는데 개머리재다12:28). 개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개머리재는 소정재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고갯마루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완만한 경사를 가진 개머리재 인근에 보이는 것이라곤 모두가 포도밭이다.

 

   도로를 건너 이동 전화 중계기 앞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가다가 우측 1시 방향의 산길로 다시 접어들면 묘 2기를 지나 능선 구릉에 올라서지만 그것도 잠시뿐 다시 임도로 내려선다(12:43). 잠시 후 만나는 삼거리에서 조금 더 직진하면 우측편에 방향만 표시한 이정표[↓ / 백두대간 등산로 / →]가 보이고(12:47) 이곳에서 우측 3시 방향으로 올라가는 산길은 좌측편으로 나무 기둥에 줄을 매어놓은 제법 가파른 길로 바뀌어 구릉까지 이어진다(12:54). 점심이라고 먹은 것이 부실해서인지 이 짧은 오름길도 힘에 부쳐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일어난다(13:00). 계속 올라가는 산길에 또 화살표만 있는 이정표 앞에서 좌측으로 올라가니 휴대폰의 GPS 앱인 트랭글이 뱃지 획득을 축하한다고 소리를 낸다. 그리고 잠시 후 서너 명이 편히 쉴 수 있는 평상이 설치된 곳에 이르는데 안심산(429m) 분기점이다(13:08).

 

   완만하던 산길이 전방으로 마을이 보이는 곳에서 갑자기 고도를 급하게 내려가는데 이곳에도 줄이 묶여져 있다. 낙엽송 군락지를 벗어나면 완만해지면서 개간 중인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길이 끊어져 개간 중인 밭의 가장자리로 진행한다. 이어 인삼밭을 지나면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가 나오고 포도밭 사이로 내려가면 901번 지방도의 지기재를 만난다(13:22). 옛날 동네 뒷산에 도둑이 많이 나왔다 하여 적기(賊起)재 라고 하였으나, 지기마을의 이름을 따서 다시 지기재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일설에는 적기의 사투리가 지기로 된 것이라는 말도 있단다.

 

   삼백(三白, 쌀, 누에, 곶감)의 고을로 불리는 상주하면 보통 곶감을 떠올리게 되는데 추풍령에서 이곳까지 오도록 감나무는 도통 보이질 않고 오히려 포도나무만 보일 뿐인 지기재의 주변 모습을 사진기에 담고 다시 신의터재를 향해 도로를 건너 대간길을 이어간다(13:25). 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로 가다가 컨테이너 박스의 창고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가는 대간길은 좌측편에 대나무가 있는 삼거리에서 대나무 숲을 따라 방향을 바꾸어 직진하여 산길로 올라간다(13:30). 오름길을 오르면 철망이 길을 막으면서 좌측으로 돌아가라 하는데 이 길은 조금 전 시멘트 농로로 다시 내려서게 되며(13:36) 철망이 있는 첫 번째 갈림길에서 우측편 한전 전주 뒷편의 능선으로 이어지는 것이 사유지를 피해 빙글빙글 돌아가는 형태다(13:41).

 

   산길의 형태를 유지하는 대간길은 이정표[←신의터재(3.2km/1시간05분)  ↓지기재(1.5km/35분)]가 서 있는 능선 분기점으로 이어지고(13:52) 잠시 후 붉은 색을 띠는 암반길을 오르면 이정표[↑신의터재(2.8km/1시간)  ↓지기재(1.9km/40분)]가 있는 능선 분기점이 또 나온다(13:57). 여기서는 우측 4시 방향으로 내려가는 내리막길을 따르다가(14:00) 삼거리를 만나는데(14:07) 좌직진하는 오르막 능선길이 마룻금처럼 보이지만 이상하게 선답자의 표지기들은 우측으로 내려오라고 한다. 선답자의 표지기들을 따라 우측길로 내려가니 이정표[↙지기재(2.5km/55분)  ↗신의터재(2.2km/45분)]가 서 있는 임도가 나오고(14:11) 포도밭의 가장자리로 돌아가는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진행하니 또 이정표[↑신의터재(2.5km/55분)  ↓지기재(2.2km/45분)]를 만나는데 무언가 이상하여 곰곰 생각해 보니 조금 전 이정표와 위치가 바뀐 것 같다(14:14). 평지같은 산길은 중간에 또 다른 이정표[↖신의터재(1.2km/20분)  ↙지기재(3.5km/1시간20분)]가 서 있는 능선 구릉을 거쳐(14:25) 140번 송전철탑을 지나 능선을 내려가면 20번 국지도 상 해발 280m인 신의터재에 이른다(14:40).

 

   상주시 화동면과 내서면을 오가는 이 고개의 원 이름은 신은현(新恩峴)이다. 그러다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가까운 상주 화동면 판곡리에 태를 묻은 김준신(金俊臣, 1561~1592)은 신의터재에서 의병을 모은 후 4월 25일, 60여 명의 관군과 6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상주성을 지키기 위해 왜군 17,000명과 싸우다 왜군 수백 명을 죽이고 장렬히 전사한다. 이는 임진왜란 때 내륙에서 본격적으로 벌어졌던 첫 접전이었던 것이다. 왜군은 전투에서 이겼음에도 생각지 않은 곳에서 타격을 입게 되자 분풀이를 하기 위해 김준신 가족이 살고 있는 화동면 판곡리로 몰려가 힘을 합쳐 저항하는 마을 사람들을 학살했는데 부녀자들은 왜군들에게 욕을 당하지 않으려고 마을에 있는 연못에 몸을 던졌다 하여 연못 이름은 낙화담(落花潭)이라 한다. 임진왜란 당시 1,600여 평에 이르렀다는 낙화담은 세월이 흐르면서 메워져 이제는 불과 60~70평 남짓한 연못으로 변했다. 300여 년 뒤 한일합방에 성공한 일제는 임진왜란 때 신의터재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있기에 이름을 어산재로 바꾸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문민정부 수립 후 광복 50주년을 맞아 '신의터재'란 이름으로 되돌아왔다.

 

   정자(新義峙亭)로 올라가 배낭을 내려놓고 등산화도 벗은 채 느긋한 휴식을 취한다. 예상보다 한 사십여 분 늦게 도착한 신의터재, 그리고 여기서 화령재까지는 대략 세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이므로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 좀 한다. 화령에 여섯 시 이전에 도착해야 상주에서 출발한 시외버스를 탈 수 있고 만약 일곱 시 전후로 도착한다면 상주로 나가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준비한 간식거리로 허기를 달래면서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였지만 원 예정대로 화령재까지 가기로 마음먹으니 편해진다. 이곳에서 구간을 마무리한다면 다음 구간 나누기가 애매해지는 것은 물론 여러 가지로 차질이 생긴다. 배낭을 정리한 후 등산화를 신고 화령재를 향해 멈추었던 걸음을 다시 시작한다(15:02).

 

   맞은편 시멘트 도로로 조금 걸어가면 이정표[↓신의터재  →화령재(11.9km/4시간 10분)]가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꾼다(15:03). 윤지미산 전까지는 낮은 고도를 유지하면서 진행하는 능선이지만 기본 고도를 올리기 위해 높이를 조금씩 올려가는 마룻금, 이정표[↑화령재(11.4km/4시간)  ↓신의터재(0.5km/10분)]를 지나 호젓한 산길을 산책하듯이 걸어간다. 남은 거리와 시간이 줄어드는 이정표를 지나면서 화령재까지 9.7km 남았다는 이정표 앞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묵밭인지 아니면 원래 공터였는지 분간이 되질 않는 곳이다(15:40).

 

   대간 마룻금은 임도같은 길을 버리고 좌측 산길로 서서히 오르다가 이정표[←화령재(8.8km/3시간)  ↓신의터재(3.1km/1시간 10분)]가 서 있는 능선 분기점을 만난다(18:48). 그리고 6분 후 또 다른 능선 분기점에서 좌향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무지개산이 어서 오라 하면서 손짓하고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그렇게 외길로 이어지는 산길이 고도를 올려가 무지개산 분기점을 만난다(16:11). 안내판에는 [↙백두대간 화령재(7.4km/2시간40분)  ↑무지개산(해발 441m)(0.2km)  ↘백두대간 신의터재(4.5km/1시간30분)]이라 하는데 산행 전에 무지개산을 다녀오기로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배낭을 벗어둔 채 무지개산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바로 앞에 보이는 능선 구릉이 무지개산이겠거니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 능선 구릉이 아닌 우측길로 계속 이어진다. 200미터라고 생각했던 거리는 그 이상인 듯 제법 올라가서야 무지개산을 만나는데 삼각점[상주 14 / 1981 재설]만 떨렁 매설되었을 뿐 잡목으로 사방이 막힌 그냥 평범한 구릉이다(16:16~16:18). 왔던 길을 따라 다시 무지개산 분기점으로 내려온 후 잠시 숨을 고르고서 화령재 방향으로 다시 출발한다(16:22~16:24). 무지개산을 왕복한 시간은 십여 분이었지만 이후 윤지미산을 오르면서 체력이 떨어져 고생 좀 해야 했다.

 

   좌향으로 내려가는 산길은 별 기복이 없이 진행하면서 이정표[↑화령재(7.1km/2시간30분)  ↓신의터재(4.8km/1시간40분)]를 지나고(16:29) 이정표 상 10분 거리를 5분 만에 지나는 것인지 또 다른 이정표[↑화령재(6.7km/2시간20분)  ↓신의터재(…)]가 서 있는 안부를 지난다(16:34). 주변으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고만고만한 산줄기만 보일 뿐 그저 화령재로 향하는 것이 전부다. 그렇게 안부 사거리를 지나 남은 거리가 많이 줄었다는 이정표[↑화령재(3.8km/1시간20분)  ↓신의터재(…)]도 나온다(17:12). 반면 체력이 조금씩 바닥나는지 신의터재를 출발할 때의 체력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한다. 더불어 걸음 속도도 늦어지면서 야트막한 오름이라도 만나면 발걸음이 더디어지는데 오름길에 만난 나무에 기대어 서 있는 이정표[↑화령재(4.4km/1시간30분)  ↓신의터재(…)]는 헛갈리게 한다(17:23). 이정표 바로 윗편의 437.7봉의 능선 분기점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올라선 후 배낭을 벗어버리고 쉬었다 간다(17:25). 남은 비상식으로 열량을 보충하지만 체력이 딸려 입맛도 껄끄럽고 남은 물이라고는 이제 한 모금 정도이니 걱정스럽다. 하지만 저 앞이 윤지미산이고 저 산만 넘어가면 화령재까지는 금방이리라 내 자신에게 속삭이며 지친 발걸음을 다시 움직인다(17:33).

 

   몸이 지치니 사진 촬영도 소홀해지고 머릿속에 떠 다니는 것은 빨리 하산하여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시고 싶다는 생각 뿐이다. 조금씩 올려가는 높이는 그리 크지를 않지만 그마저도 힘에 겨워 천천히 진행하는데 우측 아래에 청원-상주간 고속도로와 25번 국도도 보이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하면서 윤지미산에 이른다(17:50). 조금 큰 돌덩어리 옆에 쌓아 올린 돌무더기에 세워진 작은 정상석이 윤지미산에 오르느라 고생했다고 반겨준다. 지장봉으로도 불리는 윤지미산은 원래 '소머리산'이라고 하였으나 언제부터인가 윤지미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이는 사서삼경 중 대학에 나오는 윤집걸중(允執乞中)이라는 단어에서 나온 말로써 "인생 전반을 다 안다, 세상을 포용한다, 세상을 두루 알아맞히다"라는 의미를 가진 산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수통에 남은 마지막 한 모금의 물을 비우고 서울행 막차를 놓치지 않도록 화령재를 향해 발길을 옮긴다(17:54). 이정표[↑화령재(2.9km/1시간)  ↓신의터재(9km/3시간10분)]를 지나면 나무와 나무 사이에 줄을 묶어 놓은 가파른 내리막길이 기다린다. 한참을 내려갔나 보다, 답답하던 시야가 트이면서 마륜마을의 밭같은 넓은 개활지를 만나면서 급하던 경사길이 끝난다(18:12). 앞쪽으로 보이는 대간길과 맞다은 능선의 나무에 걸려 있는 태양이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빨리 발걸음을 서두르라 한다. 농로를 따라 조금만 가면 다시금 우측의 숲으로 길이 이어지면서 묘를 지나는데 앞쪽으로 구릉 하나가 높아만 보인다(18:16). 설마 저 구릉을 또 넘어서는 것은 아니겠지…

 

   잠시 후 청원-상주간 고속도로가 보이는가 싶더니만 잡목숲을 지나 이정표[↑화령재(1km/25분)  ↓신의터재(10.9km/3시간45분)]가 나오고 이어서 시멘트 도로와 파쇄석이 깔린 비포장 도로의 경계점으로 내려선다(18:23). 비포장도로를 따라 가다가 좌향으로 휘어지는 굴곡점의 둔덕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선답자의 표지기가 어서 오라 손짓한다(18:25). 야트막한 둔덕으로 오르는 대간길은 화서1터널의 상단부를 지나 나지막한 구릉을 넘어 멀고도 멀었던 25번 국도의 화령재로 내려선다(18:37).

 

   산림청에서 세운 '백두대간 화령'이라고 음각된 거대한 표석과 함께 '화령재 해발 320m'라고 새겨진 또 하나의 표석이 있는 화령재, 빗물이 좌측으로 흐르면 금강으로 흘러가고 우측으로 흘러가면 낙동강에 합류하는 분수령이다. 추풍령에서 시작하여 화령재에서 끝나는 일명 중화(中化)지구, 이틀에 걸친 산행으로 무사히 마무리한 것이다. 오늘 구간에서는 신의터재까지는 정상적으로 진행하였지만 부실한 점심 때문에 신의터재에서 화령재까지의 소구간에서 힘이 들었다. 체력은 바닥나고 엎친데 덮친다고 하던가, 준비한 식수마저 무지개산 분기점을 지나면서 부족하여 윤지미산을 오르면서 고전을 했다. 무지개산을 다녀오지 말 것을 하는 후회를 하면서 올라선 437.7봉에서 바로 앞에 보이는 윤지미산으로 계속 이어가질 못하고 주저앉아야 했으니 산행이 끝난 지금 생각해도 예전 체력을 믿으면서 무리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겠다.

 

   화령재에서 화령공용버스터미널까지 20~30분이면 걸어갈 수 있다는 선답자의 산행기가 생각나지만 서울행 막차 시간에 맞추기가 어려워 화서 개인택시를 호출하니 3~4분이면 도착할 수 있단다. 전화 통화를 끝내고 행장 정리가 끝나기 무섭게 도착한 택시로 화령공용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18시 50분이다. 상주에서 출발하는 남서울(서울 남부터미널)행 시외버스 승차권을 구입한 후 땀에 절은 옷을 바꿔입으니 씻지는 못했어도 개운하다. 매표소에 붙어 있는 막차 시간이 19시 5분이지만 10분 경에 도착할 것이라고 한 매표소 사장님의 말대로 버스는 19시 10분에 도착하였다. 이곳 화령을 출발한 시외버스는 청주버스터미널에서 15분 정도 정차한 후 서울 남부터미널을 목적지로 하여 어둠 속을 달려간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10분간 정차한 후 남부터미널에 도착하니 21시 52분으로 화령에서 2시간 50분 정도 소요되었다.

 

 

[교통 정보]  ※ 대중교통별 운행 시간이 수시로 변경될 수 있으므로 해당 교통편 홈페이지 또는 전화로 재확인을 요함

상주 → 옥산  시내버스 운행 시간(상주종합버스터미널  ☎ 054-534-9001~2 / 상주여객자동차(주)  ☎ 054-534-8250)

   [약 30분 소요]  06:30  07:20  08:10  08:50  10:20  10:50 13:10 14:00 14:35 14:40 16:00 17:00 17:10 17:40  19:25

   상주시청 홈페이지(http://www.sangju.go.kr)  '교통/숙박/맛집 → 교통편 안내 → 시내/시외버스 → 시내버스' 참조

 

상주 → 옥산  시외버스 운행 시간(상주종합버스터미널  ☎ 054-534-9001~2 / 상주여객자동차(주)  ☎ 054-534-8250)

    [20분 소요]  07:10  07:40  08:25  08:50  09:15 … 16:25  17:15  17:40  18:05  18:35  19:00  19:30  20:00  20:55  21:25  21:50

   상주시청 홈페이지(http://www.sangju.go.kr)  '교통/숙박/맛집 → 교통편 안내 → 시내/시외버스 → 시외버스' 참조

 

옥산 → 큰재 : 상주에서 하루 2회(12:10, 18:45)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옥산을 경유하여 큰재를 거쳐 효곡까지 운행한다.

 

옥산 개인택시(권장협)  ☎ 054-531-0304 / 010-3547-3910 (큰재 ↔ 옥산 간 10분 소요, 요금은 2015.03.30 현재 8,000원)

-----------------------------------------------------------------------------------------------------------------------------------------------------------------------

화령재 → 화령 : 대중교통편이 없으므로 화서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화서 개인택시(경북16바 2595  이진식)  ☎ 054-535-3030 / 010-4858-2595

   (화령재↔화령공용버스정류장 간 편도 5분 소요, 요금은 2015.03.30 현재 5,000원)

 

화령 → 서울(남부터미널)  시외버스 운행 시간(화령공용버스정류장  ☎ 054-533-0466)

   [2시간 50분 소요, 화령→청주→남부터미널]  07:40  08:40  10:20  14:25  16:00  19:05

   [3시간 30분 소요, 화령→보은→청주→남부터미널]  07:25  09:15  12:00  13:40  16:25  17:45  18:45  20:00(청주 종점)

   상주시청 홈페이지(http://www.sangju.go.kr)  '교통/숙박/맛집 → 교통편 안내 → 시내/시외버스 → 시외버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