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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산행

[2013-02-02] 선자령 - 계곡에 흐르는 봄의 소리

선자령(1157m) - 계곡에 흐르는 봄의 소리

 

[산행일시] 2013. 02. 02(토) 09:55~14:32(4시간 37분)
[날      씨] 맑음 / 낮 최고 5℃(기상청 대관령기상대 자료)
[산행인원] 30명(직장 산악회 '산을 꿈꾸다' 회원)
[접근방법] 서울(혜화동 방송통신대학교 정문 앞) → 구 대관령휴게소(강릉방향) : 경원관광 임차버스
[복귀방법] 구 대관령휴게소 → 강문항(강릉) → 서울(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 경원관광 임차버스
[산행시간] 구 대관령휴게소(강릉방향, 09:55) → 선자령 입구(10:01) → 동해전망대(11:01) → 새봉(11:25) → 선자령(11:56~12:23)

                → 한일목장 분기점(12:38~13:03) → 재궁골 분기점(13:46) → 구 대관령휴게소(서울방향, 14:25) → 구 대관령휴게소(14:32)

[산행지도]

 

[산행후기]

2013년을 여는 1월의 첫 산행으로 태백산을 끝내고 내려온 자리에서 즉시 정해진 2월 산행지, 선자령이었다.
그로부터 어느덧 시간은 빠르게 흘러 2월의 첫 토요일이 낼모레이다.
한 보름 전부터 인원을 모집하기 시작하였더니 20여 명을 넘어 관광버스를 임차하여 단독으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산행 준비물과 점심식사를 하기 위한 식당까지 결정되었으니 이제 출발만을 남겨놓은 상태이다.


산행 전날 전국적으로 내린 비가 선자령에는 눈이 되어 설화가 피었기를 바라면서 토요일을 맞이한다.
출발장소인 혜화동에 있는 방송통신대학교 정문 앞에 도착하니 약속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이다.
임차한 관광버스가 도착하였지만 아직 오질 않은 회원을 기다리다보니 어느새 약속시간을 넘어선다.
마지막 회원이 도착하여 인원을 확인하고 출발하는 시각을 확인하니 7시 10분 경이다.

 

비교적 일찍 서울을 떠나서인지 고속도로가 아직은 한산한 편이다.
중간에 휴게소 한 곳을 들른 후 영동고속도로 횡계IC로 빠져나간 버스는 이내 대관령을 넘나들던 옛길로 접어든다.
구 대관령휴게소에 도착하니 서너 대의 버스만 주차되어 있을 뿐 한가롭기만 한데 오늘 산길도 이럴까 생각에 잠긴다.
산행준비를 마치고 단체사진을 촬영한 후 걸음이 상대적으로 느린 A조와 빠른 B조로 나누어 팀을 진행하기로 한다.


선두에서 B조를 이끄는 박성창 대장은 이미 출발하였고 이제 후미의 A조도 출발이다(09:55).
고갯마루로 올라 차량통행이 드문 도로를 건너 선자령 들머리의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다들 아이젠을 착용한다.
초반부의 오름길에 쌓인 눈은 아이젠을 할만한 상태는 아니지만 만사 불여튼튼이라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백두대간의 주능선에 올라선 후 조금 더 걸어 만난 차량통행용 도로에는 눈이 없어졌다.
아마도 어제 내린 비와 몇 일동안 포근했던 기온에 녹아버린 듯하다(10:21).


시멘트 도로를 보면서 아이젠을 벗으려다가 다시 차기가 귀찮아 가장자리의 눈이 있는 곳으로 그냥 오른다.
'kt 대관령중계소'에서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강릉바우길 2구간이 지나는 재궁골등산로 입구와 만나고
그곳의 '대관령 관문' 안내판이 산객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10:31).
                             ◎  대관령 관문  ◎
      대관령(大關嶺)이라 처음 부른 것은 16세기경인데, 12세기 고려 시인 김극기는 '대관(大關)'이라 불렀다.
   이처럼 큰 고개를 뜻하는 '대(大)'자를 붙이고 험한 요새의 관문이라는 뜻을 담았다. '크다'의 의미를 사용한
   것은 고개의 상징성이며, 관(關)이라 함은 중요한 경계적 요새(要塞)로서 영의 동서를 가르는 출입구를 말한
   것이다.
      《신증 동국여지승람》의 기록대로 대관령이 영동의 진산(鎭山)으로 중앙과 지방, 영동과 영서를 구분하는
   지리적 방어적 관문(關門)이자 문화적 경역(境域), 상징적 공간이었다.
      일찍이 고려 초기 강릉장군 김순식(金順式)이 태조 왕건을 돕개 위해 출병을 하였다. 그는 대관령에 이르러
   제단을 만들고 승전의 기도를 올렸다. 《고려사》에 기록할 정도로 이곳은 다른 지역으로 들어가는 초입이자
   신성한 영역으로 전한다.
      풍수가들은 대관령을 '자물쇠 형국'이라 하는데 이것은 관문으로서 대관령을 넘나드는 것이 쉽지 않았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강릉지역에는 "평생 대관령을 한번 넘지 않고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전한다.
      대관령은 영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관문으로서 한 때 닫힘의 공간이었으나 오늘날에 이르러 '열린 공간'
   으로 문화소통의 원류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민속문화의 중요한 유적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대관령 관문은 영동권의 방어적 요새로서 신앙적으로 대관령산신과 성황신 등 수호신이 거처하며 동시에
   동서문화가 소통한 통로였다. 이곳에서 기관 이병화는 1824년 반쟁이 주막을 만들어 힘든 나그네를 쉬게
   하였고, 소금장수 선질꾼의 추억이 서린 곳이며, 옛 시인과 묵객들이 넘나들며 필명을 떨친 곳이기도 하다.
                                동부지방산림청


'선자령 3.7km'라고 새겨진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항공무선표지소 건물이 보이고
산길 아니 대간길은 다시금 도로에서 벗어나 좌측의 흙길로 이어진다(10:42).


눈으로 덮인 산길을 앞서간 선답자의 발자국을 따라 완만히 오르다보니 시야가 트이면서 어느새 윗편으로
철탑이 보이는 동해전망대 구릉이 보인다(10:55).
또한 좌측으로는 풍력발전기들이 바람개비를 돌리고 있는데 마치 우리와의 만남이 반갑다고 하는 것 같다.
잠시 후 길은 두 갈래로 갈라졌다가 다시 합류하게 되지만 우리는 전망대를 거치는 우측길로 진행한다.
완만한 오름길이 끝나는가 싶더니만 오늘 A조의 1차 목적지인 동해전망대에 이른다(11:01).
우측편 아래로 강릉시와 동해가 조망되는 곳이지만 오늘은 아쉽게도 흐릿한 시야로 그리 선명하게 보이질 않는다.
A조 회원들의 단체사진을 촬영한 후 조금 더 진행하다가 시간을 보아 적당한 지점에서 원점회귀하겠다는 말을 듣고
앞서간 B조 회원들을 쫓아 발걸음을 빠르게 움직인다(11:05).


선자령으로 향하는 산길을 전남 광주에서 올라온 남도산악회 회원들과 뒤섞여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오른다.
중간에 새봉인 듯한 넓은 평지 구릉에서 진한영 회원을 만났는데 속이 편하지 않은 듯하다(11:25).
잠시 볼일 좀 보고 오겠다고 하여 먼저 올라가다가 기다려보지만 10여 분을 기다려도 보이질 않는다.
먼저 올라간 것인지 아니면 뒤에서 아직 오르고 있는 중인지 헛갈리기만 하여 다시금 혼자 올라간다.

 

완만하면서도 부드럽게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능선을 따라 서사면(西斜面)에 만들어진 산길은
선자령까지 0.8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 야트막한 둔덕 구릉을 만난다(11:48).
전면에 선자령 정상석이 작게 보이는 곳으로 진한영 회원을 다시 기다리다가 만나지 못하고 그냥 길을 이어간다.


넓은 평지의 안부로 내려선 후 짧은 오름길을 올라서니 선자령 정상석 앞에서 박성창 대장이 기다리고 있는데(11:56)
역시 추측대로 진한영 회원과 지부장이 아직 오질 않았다고 한다.
먼저 도착한 팀원들은 동해쪽 사면에서 바람을 피해 간식을 먹고 있는 중이라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5분여 정도 늦게 지부장과 진한영 회원이 도착함으로써 A조를 제외한 전원이 선자령에 도착한 것이다.


희뿌연한 연무로 덮인 동해안과 작별하고 정상석이 있는 곳으로 다시 올라오니 역시나 많은 인파로 북적인다.
여러 팀의 사진 촬영이 끝난 틈을 이용하여 단체 사진을 촬영한 후 하산길은 계곡길로 진행하기로 한다.
삼양목장 방향으로 보이는 거대한 풍력발전기들을 보면서 언제일지 모르지만 백두대간 산행으로 다시 올 선자령,
그 정상석의 이면에 새겨진 산경표의 배웅을 받으며 발걸음을 바우길 1구간을 따라 임도로 내려간다(12:23).
                                       선자령(仙子嶺)
      선자령은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와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를 잇는 고개로 높이는 1,157m이다.
      예전에는 대관산(大關山) 혹은 보현산(普賢山)이라 불렸고, 보현사에서 보면 마치 떠오르는 달과 같다고
   하여 만월산(滿月山)이라고도 불렸다.
      백두대간 보호지역 지정(2005. 9. 9) 1주년에 즈음하여 우리 국토의 핵심 생태축인 백두대간을 영원히
   보존하고 국운강성과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뜻으로 이 표지석을 세운다.
                                 2006년 10월 26일
                    동부지방산림청 / 평창국유림관리소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일렬로 늘어선 풍력발전기들이 어서 오라 하지만 오늘 여정은 대관령휴게소이다.
경사진 내리막길을 내려가 임도와 만나 좌측으로 걸어가다가 한일목장 갈림길이 있는 곳에서 잠시 휴식이다(12:38).
추운 날 가스 스토브로 라면을 끓이자니 물이 끓는지 마는지 세월이 감감무소식이다.
대충 삶아진 라면에 소주 한 잔을 나누어 마신 후 머물렀던 자리를 정리하고 바우길을 따라 계곡으로 향한다(13:03).


발걸음이 상대적으로 느린 일부 회원들이 먼저 출발한 상황이라 자연스레 발걸음이 빨라진다.
계곡으로 바짝 접근하여 연결되는 강릉바우길은 선자령에서 2.5km를 왔고, 대관령까지 3.3km 남았다고 알려주는
이정표가 있는 곳을 지난다(13:28).


겨울이 좀처럼 물러나지 않을 것만 같던 계곡에도 어느새 봄이 찾아 들고 있나보다.
소리없이 흐르는 계곡물을 건너는데 봄의 기운에 밀려난 겨울은 가기가 싫은지 아직도 눈으로 흙길을 덮고 있다.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과 함께 나란히 걷다보니 어느새 재궁골 갈림길을 만난다(13:46).


좌측으로 90도 방향을 바꾸어 계곡능선을 따라 앞서가는 산님들의 양해를 구하면서 추월한다.
하지만 선두는 보이질 않고 걸음이 늦은 팀장의 발걸음에 맞추어 박성창 대장과 후미를 지킨다.
오름길이 끝나면서 다시금 능선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행한다(13:57).


백두대간 능선의 사면을 벗어나 올바른 주능선에 이르니 좌측으로 선자령으로 향하는 능선과 함께
kt 대관령중계소의 건물이 시원스럽게 보인다(14:08).
그리고 바로 만나는 양떼목장의 철망 너머로 멀리 보이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한가롭기만 하다.
지금쯤 하산을 완료했어야 할 시각이지만 앞쪽으로 보이는 능경봉 아랫자락에 있는 휴게소로 가고 있는 중이다.
양떼목장의 철망이 목책으로 바뀌었는가 싶더니만 구 대관령휴게소 서울방향의 도로를 만나면서
예정보다 30여 분 늦은 우리의 산행도 마무리 된다(14:25).


아침에 산행을 시작하였던 선자령 등산로 입구를 지나 구 고속도로를 건너 버스가 주차된 주차장에 도착한다(14:32).
우리가 마지막 후미였으니 당연히 모두들 다 있으리라 생각하였지만 엉뚱한 방향으로 내려간 2명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재궁골 갈림길에서 그냥 직진하면서 횡계IC 방향으로 내려간 듯하다.


20여 분이 지난 후 도착한 진짜 마지막 일행을 확인하고 늦었지만 점심을 먹기위해 구절양장 아흔아홉 굽이의
대관령 옛길을 내려가 강릉 경포대 옆의 강문항에 있는 횟집에 도착한다.
심재복 회원의 친구가 운영하는 횟집으로 우리는 이곳에서 산행 뒷풀이를 거나하게 하였다.
이후 건어물 시장을 거쳐 고속도로에 올라선 차량은 흔들리면서도 어둠을 빠르게 가르면서 서울에 무사히 도착한다.

 

[산행사진]

  ▼ 구(舊) 대관령휴게소의 주차장

 

  ▼ 선자령 들머리

 

  ▼ 능선 상의 'kt 대관령중계소'가 보이고

 

  ▼ 대관령중계소 좌측의 시멘트 포장도로로 계속 오른다

 

  ▼ 바우길 2구간 분기점의 '대관령 관문' 안내판

 

  ▼ 구태회 회원

 

  ▼ 대관령에서 선자령까지의 거리를 알려주는 산헹 이정표

 

  ▼ 대관령항공무선표지소 바로 전의 갈림길

 

  ▼ 지금은 백두대간(白頭大幹) 상에 있는 '강릉 바우길'의 1구간인 '선자령 풍차길'을 걷고 있는 중

 

  ▼ 삼양목장 방향으로 보이는 풍력발전기들

 

  ▼ 길은 흩어지다가 다시 또 모이고

 

  ▼ 동해전망대

 

  ▼ 동해전망대에 도착한 '산을 꿈꾸다' A조

 

  ▼ 선자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바람과 함께 동행하는 산꾼들이 줄지어 오르고

 

  ▼ 야트막한 능선을 오르면 저 멀리 선자령의 정상석이 조그맣게 보인다

 

  ▼ 선자령의 정상석 바로 전에서 뒤돌아 본 능선길

 

  ▼ 그리고 바람에 맞선 바람개비(풍력발전기)들

 

  ▼ 드디어 선자령(1157m)에 도착 - 선자령은 다른 날보다 적지만은 그래도 많은 인파로 몸살을 앓고 있다

 

  ▼ 바람을 피해 동쪽 사면에서 잠시 휴식 중인 일행들

 

  ▼ 정상석을 배경으로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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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자령 정상석의 뒷면에 새겨진 여암 신경준(旅菴 申景濬, 1712∼1781)의 '산경표(山經表)' 그림

 

  ▼ 선자령 유래

 

  ▼ 한일목장길로 내려가면서 뒤돌아 본 선자령

 

  ▼ 평탄하게 이어가는 백두대간 상의 곤신봉(1135m) 일부분이 좌측으로 살짝 보인다

 

  ▼ 국사성황당으로 내려가면서 보는 한일목장

 

  ▼ 강릉 바우길 표지

 

  ▼ 선자령 능선의 서쪽 계곡길

 

  ▼ 계곡에는 성질 급한 봄이 찾아들었다

 

  ▼ 재궁골 갈림길 - 이곳에서 좌측길로 진행한다

 

  ▼ 강릉 방향으로 아침에 올랐던 대관령중계소를 바라보고

 

  ▼ 양떼목장의 철망을 따라 돌아간다

 

  ▼ 철망 윗편으로 보이는 백두대간 상의 능경봉(1123.2m)

 

  ▼ 양떼목장을 찾은 관광객들

 

  ▼ 하산을 완료한 후 선자령 들머리로 간다

 

  ▼ 새로 뚫린 영동고속도로로 이제는 추억만을 간직한 구(舊) 영동고속도로 - 강릉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