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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팀 합동 산행

[2010-04-25] 대구팀 합동산행-07_김천 수도산

[대구팀 합동산행-07] 김천 수도산

[산행일시] 2010.04.25(일) 10:23~15:57(5시간 34분)

[날       씨] 맑음

[산행인원] 14명(서울팀 5명, 대구팀 9명)

                   (서울팀) 시인마뇽, 하이맛, 범솥말, 조부근, 성봉현

                   (대구팀) 기경환, 임상택, 박영홍∙천정미, 차성섭∙나경숙, 차수근∙박금선, 권재형

[접       근] 서울역 → 동대구역 : 열차(KTX) / 동대구역 → 심방마을 : 대구팀 전세버스

[이       탈] 수도암 → 대창고로쇠식당/대창고로쇠식당 → 동대구역 : 대구팀 전세버스 / 동대구역 → 서울역 : 열차(KTX)

[산행시간] 심방마을(10:23) → 흰대미산(10:59~11:17) → 헬기장(11:34) → 양각산(좌봉, 12:27~12:32)

                   → 양각산(12:27~ 13:12) → 1237봉 삼거리(← 4.1km 우두령, 13:51) → 심방마을 갈림길(13:58~14:01)

                   → 신선봉(14:44) → 수도산(14:49~15:02) → 헬기장(15:30) → 수도암(15:57)

[산행지도] 홀대모 조진대님 지도(http://hangu227.com.ne.kr/map-soodo/soodo-2.jpg) 및 국제신문사의 등산지도 인용

 

[산행기록]

대구팀과 연락을 하여 봄철 산행지로 김천과 거창의 경계면에 있는 수도산으로 결정하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겨울과 봄을 오가는 날씨와 함께 어느덧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서울역에서의 약속시간을 위하여 맞추어 놓은 알람이 울리기 전 잠에서 깨어 준비를 한 후 전날 꾸려 놓았던 배낭을 매고 조용히 현관을 나와 봉화산역에서 아침 첫 차로 종묘역을 거쳐 서울역에 도착하니 하이맛 선배님(이규성 교수님)과 조부근님이 그리고 3층에서 시인선배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잠시 후 도착한 범솥말 선배님과 함께 대합실을 빠져 나가 부산행 6시 25분발 KTX 열차에 승차하여 이런저런 이야기 속에 열차는 대전역을 지나 동대구역에 도착한다(08:12).

 

동대구역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반가운 님들과 함께 짧은 인사를 나누면서 바로 기다리고 있는 버스로 이동, 버스에서 대기 중이던 다른 회원님들과 인사를 하고 바로 출발한다. 이십여 년 전 회사 업무차 출장을 다녔던 모습을 찾아보려 해도 너무 많이 변해버려 낯설기만 한 외곽도로를 달려 미녀봉이 또렷하게 조망되는 거창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식사가 끝나고 다시 출발한 버스는 88고속도로를 벗어나 구불구불한 시골 마을길을 지나 오늘 산행 기점인 심방마을에 도착한다(10:15).

 

단체사진을 촬영함으로써 산행이 시작되고(10:23), 팔각정 뒷편의 무덤을 지나 초반부터 가파르게 오르는 산길을 일찌감치 앞서간 선두팀을 따르는 후미의 대열에서 쉬엄쉬엄 흰대미산으로 오른다. 능선의 우측이 트이면서 보이는 뾰쪽한 봉우리가 흰대미산이라고 생각하며 디카의 셔터을 눌렀는데 산행지도에 표기한 능선길이 맞다면 흰대미산이 아니라 양각산이어야 하지만 아직은 반신반의 중이다.

 

그렇게 올라선 능선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보이는 구릉으로 올라선 일행을 따라 올라서니(10:59) 좁고 다소 길쭉한 정상부의 능선에는 '흰덤이산/白石山/1,018m'라고 음각된 화강암석의 정상석이 있으며 멀리 내년 쯤에나 지날 것 같은 백두대간의 덕유산 권역의 산줄기가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지난 가을에 올랐던 영취산으로 불리는 1075.6봉인 금남호남정맥 분기점을 찾아보지만 찾지를 못하고 우측으로 보이는 삼도봉에서 분기된 수도지맥이 우두령을 넘어 올라서는 산줄기를 따라 수도산을 조망한 후 양각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다시금 왔던 길을 내려간다(11:17).

 

분기점을 지나 걸어가는 산길은 며칠 전의 겨울에서 갑자기 완연한 봄날로 바뀌었는지 땀이 송글송글 배어나오고 대구팀의 임상택 대장과 시인마뇽 선배님, 범솥말 선배님으로 이루어진 후미 대열은 헬기장을 만나(11:34) 소의 뿔처럼 솟아오른 양각산을 잠시 조망한다. 완만하던 산길이 다소 가파른 오름길로 바뀌면서 소나무가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암릉길로 이어지는데 후미를 기다리고 있던 권재형님으로부터 주변 산세를 설명들으면서 오르다 보니 너덜같은 돌길을 지나 양각산 좌봉이 나온다(12:08~12:10). 잠시 평탄해진 산길은 돌과 흙이 만들어 낸 그리 넓지 않은 면적을 가진 양각산을 만나는데 정상석과 유래비 그리고 이정표[←거창딸기 하산 2.0km  ↓거창사과 심방마을 2.1km  ↑거창복수박 수도산 2.5km]가 있다(12:27). 앞쪽으로 수도산 정상이 성큼 다가서고 우측으로 보이는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만나자고 하는 듯한데 이번 산행은 수도암으로 하산하기로 되어 있어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마음 속으로 기약해 본다.

 

양각산(兩角山 : 1,150m)

양각산은 거창군 웅양면 산포리에 위치하고 있는 명산으로서 화강암 지반을 갖고 높이솟은 두(二)봉우리가 소뿔(牛角)과 같다고하여 이름지어졌다.

소(牛)와 인연한 이름으로 양각산 아래에  소(牛)의 「머리」와 같다는 우두령(牛頭嶺)이란 고개가 있으며  소(牛)의 「물을 먹는 그릇」과 같다는 구수(口水)마을  소(牛)의 「불알」과 같다는 우랑(牛郞)이라는 지명의 마을이 있으며

양각산의 옛이름은 금광산(金光山)이라고 하였다. 양각산을 정점으로 아래로 2km에 흰대미산(白石山 : 1,018m)이 있으며 위쪽으로 4km에 수도산(修道山 : 1,317m)과 연결되고 서쪽으로 거말흘산(巨末屹山 : 902m) 사이 우두령이 있으며 역사적으로는 이곳이 가야국에 속한 곳이다.

- 정상석 우측편의 유래비 全文

 

모두들 수도산으로 떠난 자리에서 정상석을 촬영한 후 뚝 떨어지는 산길을 따라 내려가(12:32) 조금씩 멀어지는 양각산과 흰대미산을 뒤돌아보면서 가다 보니 아직도 겨울옷을 벗지 못한 잡목 능선 상의 안부에 마지막으로 도착한다(12:41). 먼저 도착한 선두팀이 펴 놓은 돗자리에는 각자 준비해 온 점심 먹거리로 이미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고 빈자리에 자리잡으니 임상택님으로부터 오는 한 잔의 반주를 마시면서 점심을 해결한다.

 

따뜻한 햇볕에 식후 포만감을 느끼면서 여유를 부리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여 무거워진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13:12) 부드러운 흙길을 걷는가 싶었는데 바로 이정표[←금광마을 2.4km  ↓양각산 0.5km  ↑수도산 2.0km]를 지난다. 양각산에서 보았던 수도산 가는 길 중간의 암릉 구릉에 오르니(13:39) 역시나 조망이 시원스럽다. 능선따라 이어진 암릉길을 내려서면 다시금 잡목으로 가려진 산길로 바뀌어 완만히 오르다가 철제가 아닌 목제 이정표[←우두령 4.1m  ↓양각산 1.7km  ↑수도산 1.7km]가 있는 시코봉(1,237m)이 나오는데(13:51) 백두대간의 삼도봉에서 분기된 수도지맥이 우두령으로 내려왔다가 올라온 구릉이다.

 

이제부터는 수도지맥의 마룻금을 따라가는 산길로 드문드문 보이는 표지기들은 아마도 수도지맥을 따르는 듯하며 내려가는 듯하던 산길이 잠시 올라가는데 그 정점은 심방마을로 분기되는 1142봉으로 시코봉에 있는 것과 똑같은 목제 이정표[↑수도산 1.4km  ↓양각산 2.0km  →심방 3.8km]가 세워져 있다(13:58~14:01). 이정표가 가리키는 좌측 수도산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키작은 산죽과 아직 꽃망울조차 맺지 못한 진달래 관목이 반겨주고 잠시 시야가 트이는데 오늘의 정점인 수도산이 손에 잡힐 듯 다가선다.

 

숨바꼭질하는 수도산으로 가는 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심방마을 분기점에서 보았던 구릉으로 오르는데 짙푸른 초록의 소나무가 비탈진 암릉에 뿌리를 내리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고만고만한 돌덩이들의 바윗길을 올라서니(14:12) 앞쪽으로 수도산이 지척이고 우측으로는 가야산이 고혹(蠱惑)적인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아름다운 가야산의 모습이 망막에서 떠나지 못하고 아른거리는 사이 또 다른 암릉에 올라서는 임상택님을 따라 커다란 바위 구릉에 오른다(14:21). 하늘마저 청명한 날씨와 달리 대기는 옅은 연무로 인하여 원경이 선명하지 못하지만 시각으로 느끼기에는 충분하여 사방을 둘러본 후 약 이십여 분 정도 앞선 듯한 선두팀을 따라 다시금 내려간다.

 

암릉과 전형적인 육산의 능선으로 이어진 산길은 이제 수도산을 향한 마지막 오름을 시작하고 수도산이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 있는 암릉을 넘어 완만해진 능선을 따르니 수도산 신선봉 갈림길이 나오는데 임상택님과 시인마뇽 선배님은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수도산을 향해 진행한다. 홀로 좌측의 신선봉을 향해 빠른 걸음걸이로 돌길을 올라 신선봉에 오르니(14:44) 부산의 '같이하는 산악회'에서 세운 철제 이정표[수도산 신선봉 1313m / 황강기맥/감천지맥 / 수도산/황강기맥]가 있다.

 

잡목으로 가려진 조망권을 포기하고 바로 수도산을 향해 올라왔던 길을 따라 신선봉 분기점에 내려선 후 이정표[↑수도산 0.2km  ↓양각산 3.2km]를 지나니 산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던 범솥말 선배님과 후미를 기다리고 있던 권재형님, 시인 선배님 그리고 임상택님과 어울려 선두팀이 기다리고 있는 수도산에 도착한다(14:49).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수도산 정상에는 네 명의 부부 산행객과 우리 팀만이 자리잡고 있으며 삼각점(무풍 11 / 1988 재설)과 정상석을 대신하는 석판(수도지맥 수도산 1317m), 그리고 누가 쌓았는지 정성이 대단한 돌탑이 이곳을 찾은 산객들을 환영해 주고 있다. 단체사진을 세 대의 디카에 담은 후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수도암으로 내려가는 일행을 보낸 후 뒤돌아서서 오늘 산행을 시작한 심방마을부터 흰대미산으로 오르는 능선 그리고 양각산을 거쳐 이곳까지 이어지는 능선을 다시 한번 눈길로 그려 보고 나서 일행을 뒤쫓아 내려간다(15:02).

 

내려가자마자 만나는 갈림길의 이정표[↓수도산 70m  →단지봉 4.5km]는 수도지맥의 단지봉을 가르키지만 우리는 수도암으로 가기 위해 직진하는 능선길을 따라 내려간다. 짧은 너덜길을 지나 다소 가파른 내림길이 끝나는 것인지 우측으로 가야봉이 조망되는 헬기장이 나오고(15:30) 거창군에서 김천시로 행정구역이 바뀌었는지 '↓정상 1,000m 김천시'라고 쓰인 안내판을 지난다.

 

조금 더 내려가 만나는 안부에서(15:36) 완만히 올라간 후 수도암으로 향하는 능선을 따라 우향으로 돌아가는 산길은 '수도암 6번 지점←119 구조 요청 지점' 안내판과 이정표[↓수도산 1790m  ↑청암사 4350m  ↗수도암 700m]가 있는 갈림길을 만나며(15:40) 우측의 수도암 방향으로 내려가면 이정표[↓수도산 2240m  ←청암사 4400m  ↗수도암 250m]가 나온다(15:50).

 

철망으로 막힌 직진하는 능선 우측 아래로 보이는 수도암을 향해 산죽이 무성한 길을 내려가면 잠시 후 수도산 정상까지 1,827m 남았다는 김천시의 안내판을 지나 한산교(寒山橋)를 지나 수도암에 이르고 약광전(藥光殿)과 삼층석탑 그리고 대적광전(大寂光殿)을 본 후 선두팀이 기다리고 있을 버스에 도착하니(15:57) 모두들 오늘 산행의 뒷풀이 장소인 음식점으로 미리 출발하였다고 한다.

 

수도암(修道庵)

 

종        파 : 대한불교조계종

창건 시기 : 859년(헌안왕 3년)

창  건  자 : 도선

소  재  지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512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인 청암사의 부속 암자로 수도산 (일명 불령산) 정상 부근에 있다. 859년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수도 도량으로 이 절을 창건하고 너무 기쁜 나머지 7일 동안 춤을 추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1649년(인조 27)에 벽암각성(碧巖覺性)이 중창했으며, 동학농민운동 당시 암자의 일부가 소실된 것을 1649년(광무 3) 포응이 다시 이룩했다. 6·25전쟁 때 빨치산 소탕 작전으로 일부 건물을 제외하고 불타버렸다. 1960년에는 대적광전·약사전·정각암(正覺庵)·요사채 등 4동의 건물에서 3, 4명의 승려가 수도하고 있었는데, 1969년 지금의 해인사 방장인 법전(法傳)이 와서 크게 중수하여 20여 동이 넘는 큰 가람으로 변모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적광전·약광전·수도선원·관음전·나한전·노전·정각·서전(西殿)·낙가전(洛伽殿) 등이 있다. 유물로는 약광전의 석불좌상(보물 296), 삼층석탑(보물 297) 2기,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307) 등과 함께 창건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기단과 초석이 있다.

 

이 가운데 석불좌상은 도선이 조성한 것으로 전하며, 금오산 약사사(藥師寺), 직지사 삼성암(三聖庵)에 있는 약사여래좌상과 함께 방광했다고 하여 삼형제 불상으로 부른다. 머리 부분에 보관(寶冠)을 장식했던 흔적이 있는데 이는 약왕보살의 머리에 금속관을 설치했던 것으로서 흔치 않은 예이다.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경주시의 석굴암 불상보다 80cm 작으며 9세기에 거창군 가북면 북석리에서 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이 불상의 운반에 고심하고 있을 때 한 노승이 나타나 불상을 등에 업고 이 절까지 운반했는데, 절에 다 와서 칡덩굴에 걸려 넘어지자 산신령을 불러 크게 꾸짖고 칡덩굴을 모두 없애게 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이 절 근처에는 칡덩굴이 없다는 설화가 전한다.

 

또 삼층석탑은 이 절터가 마치 옥녀(玉女)가 베를 짜는 모습의 명당터라 하여 베틀의 기둥을 상징하는 뜻으로 두 탑을 세웠다고 한다.

 

-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인용

 

수도암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도착한 시인 선배님을 마지막으로 모두 승차하니 버스는 구불구불한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 지척에 있는 대창민박고로쇠식당에 주차를 한다. 걸어서 이동한 선두팀과 합류하여 봄맞이 대구팀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수도산 산행을 마무리하면서 고로쇠물과 함께 푸짐하게 차려진 닭도리탕을 안주 삼아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운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권재형님을 만나고 일주일 후 조부근님을 동일한 장소에서 만난 지가 6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바쁜 와중에도 잠시 짬을 내어 들러주신 임채미님(권재형님의 배우자)을 보낸 후 계속 이어진 뒷풀이를 정리하고 버스 안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는 끊임이 없고 동대구역 기차시간에 맞추어 정확히 도착을 한다. 대구팀의 여성회원님들이 직접 캔 쑥으로 만든 쑥떡과 고로쇠물을 선물받으면서 정이란 이런 것이구나 또 한번 느끼고 울산으로 직접 가신다는 하이맛 선배님과 헤어져 서울팀 4명은 20시 55분 동대구역을 출발하는 KTX 열차에 승차, 산행의 달콤한 기억을 더듬으면서 깊은 단잠에 취한다.

 

2004년 10월 한북정맥의 로얄골프장 내려가는 길목을 못 찾아 헤메다가 어렵게 찾은 입구에서 우연히 만난 권재형님, 그리고 일주일 후 똑같은 장소에서 우연히 만난 조부근님이 인연이 되어 꾸려진 자칭 대간 독립군 팀…  그 인연의 끈이 이어져 정기적인 산행으로 연결되어 오늘 대구팀의 초청으로 수도산을 산행하였으며, 이제 가을의 단풍 산행을 생각하면서 대구팀을 만날 날을 기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