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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의 이야기

[월간山] 최선웅의 지도이야기_지도가 수학을 만나면 정확해진다

월간山 홈페이지에 연재된 기사입니다.

원문 주소 : http://san.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4/21/2010042101628.html

 

 

[최선웅의 지도이야기] 지도가 수학을 만나면 정확해진다

지도 만드는 도법이 그토록 많이 연구된 연유


1980년대의 지도 제작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스크라이빙(scribing) 제도법에 의해 일일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국내의 지도제작업계는 일본의 지도 제작까지 수주하게 되어 제법 호황을 누렸다. 필자가 다녔던 회사도 일본의 지도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로 70~80명의 기능자들이 북적거렸다. 간부회의를 통해 때때로 “지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지도제작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어느 날 일이 바쁜데도 꼬박꼬박 정시에 퇴근하는 한 간부가 있어 무슨 사정인가 알아봤더니 지도 공부를 위해 수학 학원에 다닌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고는 아연했다. 당시 사내 서가에는 일본에서 출간된 지도 관련 이론서들이 꽤 있었다. 그 친구는 지도 공부를 한다고 일본의 지도학자 노무라 쇼시치(野村正七)의 <지도투영법(地圖投影法)>이란 책을 본 것이다. 이 책의 서문에 '본서는 고등학교에서 대수, 기하, 기초해석, 미적분을 이수한 독자를 상정하여 그것을 능가하는 구면삼각법, 복수관수, 미분기하학 등에 대해서는 지도학의 기초가 되는 수식(1), 지도학의 기초가 되는 수식(2)에서 해설했다'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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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톨레마이오스가 제작한 지도 원본은 남아 있지 않지만 후세에 그의 세계상을 근거로 갖가지로 지도가 모사되었다. 이 지도는 1482년에 그려진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다.

 

수학은 어떠한 물건을 세거나 재는 것에서 시작되는 수(數), 양(量), 도형(圖形) 등의 학문으로 인간은 항상 수학과 어떠한 관련을 가지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수학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교역이나 분배, 과세 등 사회생활에 필요한 모든 계산은 물론 농경생활에 필요한 천문학과 달력의 제정, 토지 측량 등도 수학에 의해 이루어졌다. 오늘날에도 수학은 자연과학, 공학, 의학뿐만 아니라 경제학 등의 사회과학에서도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발달한 지도 제작은 수학·지리학·미학의 세 가지 조건이 근간이며, 직간접으로 천문학·측지학·지구물리학·정밀기계공학·사진공학·인쇄공학 등 여러 과학기술 분야와도 관련되어 있다. 미국의 저명한 지도학자 로빈슨(A.H.Robinson)은 “지도는 복잡한 모양을 가진 지구를 평면상에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필히 기하학적 관계를 계통에 따라 다른 형태로 변환하여야 하고, 변환을 계통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지구를 단순한 형태의 것으로 가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구 표면의 측량은 많은 복잡한 과정을 필요로 하지만 지구 표면의 가상적인 지구로부터 평면으로의 변환은 순수학적으로 가능하다”고도 말했다.

 


수학의 왕 가우스에 의해 지도제작법 크게 정밀해져

 

세계에서 처음으로 수학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세계지도를 고안해낸 사람은 BC 2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C.Ptolemaeos, 영어로는 프톨레미라고 함)다. 그의 저서 <지리학>에 따르면 그는 지구의 둘레를 360°로 등분한 경위선망을 설정하고 구에 외접하는 원추(圓錐)를 생각하여 구면상의 점과 원추 표면상의 점을 1대1로 대응하는 원리로 세계지도를 제작하였다.

 

그의 지도에서는 일정한 위도의 구간은 비교적 정확한 지도가 그려지지만 그 구간을 벗어나는 부분은 왜곡이 커지게 되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그의 세계지도는 당시 권위 있는 지도로서 오랫동안 명성이 유지되었고, 1492년 독일의 지리학자 베하임(M.Behaim)이 만든 지구의도 프톨레마이오스의 전통을 이은 것임을 알 수 있다.

 

BC 3세기 중국에서도 수학적 방법에 의해 지도가 제작되었는데 그것은 위나라·서진 지도제작술의 선구자인 배수(裵秀)가 제작한 우공지역도(禹貢地域圖)다. 이 지도 머리말에 지도 제작의 준칙이 되는 제도6체(制圖六體)가 적혀 있다. 눈금이 그려진 축척을 이르는 분솔(分率), 가로·세로 격자망을 이르는 준망(準望), 거리 측정을 이르는 도리(道里), 땅의 고저를 측정하는 고하(高下), 직각과 예각을 측정하는 방사(方邪), 곡선과 직선을 측정하는 우직(迂直)이 그것이다. 이 준칙은 유럽의 지도 제작기술이 들어올 때까지 중국 지도 제작의 기본 원칙이 되었으며, 당시 우리나라나 일본의 지도 제작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세계가 지리상의 발견시대를 맞아 항해가들이 지구를 누비고 다니면서 지도 제작이 활성화되었는데 이때 등장한 지도가 메르카토르(G.Mercator)에 의해 제작된 세계지도다. 1569년에 발표된 이 지도의 도법은 기하학적인 투영방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수학적으로 경위선에 의한 격자체계를 고안한 것으로 경선은 등간격의 평행한 선으로 표시하고, 위선은 평행하게 경선과 직교한다. 이 도법은 1772년 람베르트(J.H.Lambert)에 의해 변형되어 횡축메르카토르도법으로 개발되었고, 1825년 가우스(C.F.Gauss)가 정밀화했다. 그 뒤 1912년 크뤼거(L.Kr쮒ger)가 실용계산식과 수표를 완성하여 측량좌표계에 널리 사용했고, 20세기 이후 세계 각국 지형도 제작의 표준이 되었다. 가우스·크뤼거도법이라고도 하는 이 도법은 우리나라 국가기본도에도 적용되었다.

 

18세기 초 프랑스의 루이14세는 카시니(Cassini) 일가로 하여금 국가지형도를 제작토록 했는데 카시니3세가 세계 최초로 삼각측량법에 의해 통일 규격의 지형도를 제작하였다. 이 지도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카시니4세에 의해 완성되었는데 이때가 나폴레옹이 정권을 장악한 시기다. 전 유럽을 대상으로 벌인 '나폴레옹전쟁'으로 측지학이 갑자기 발전했는데 이는 군대 이동을 위해 정밀한 지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지형도는 군대의 눈이다”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지도 제작을 다그쳤으며, 수학을 존중했던 그는 독일을 침공할 때도 가우스가 사는 마을은 공격하지 않았다고 한다.

 

측지학은 정밀성을 추구할수록 지구 표면의 조건인 곡면의 성질이 문제였다. 이때부터 곡면과 공간, 곡선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기하학이 중요한 연구 분야로 떠올랐는데 이 연구를 완성한 사람이 바로 독일의 수학자인 가우스(C.F.Gauss)다. '수학의 왕'이라 칭송받는 그는 1821년부터 하노버 정부와 덴마크 정부 측지사업의 학술고문을 맡으면서 1828년 곡률 개념에 대한 중요한 성질을 제시하고 소위 '가우스의 놀라운 정리'라는 원리를 이끌어냈다.

 

이 원리에 의하면 가우스 곡률은 그 곡면의 거리와 각도를 재는 것으로 알 수 있으나 구면의 가우스 곡률은 언제나 양수이고 평면의 가우스 곡률은 언제나 0이기 때문에 구면의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거리와 각도가 모두 보존되는 평면지도를 그릴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따라서 지구 구체를 평면상의 지도로 제작하려면 원하는 성질을 얻는 대신 다른 요소를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도를 만드는 도법이 그토록 많이 연구된 것도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 글 최선웅 한국산악회 부회장·매핑코리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