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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산행

[2023-06-24] 지리산 서북능선 - 에돌아가야 하는 바래봉

지리산 서북능선 - 에돌아가야 하는 바래봉

 

[산행 일시]  2023.06.24(토)  03:00~18:02(15시간 2분 // 산행시간 : 10시간 39분 / 휴식시간 : 4시간 23분)

[날       씨]  흐림

[산행 인원]  조한근, 성봉현

[접       근]  동서울 → 노고단(성삼재) : 심야 우등 시외버스

[복       귀]  구인월 경로당 → 인월지리산공용터미널 : 도보 / 인월(지리산둘레길) → 동서울 : 일반 시외버스

[산행 시간]  성삼재(03:00) → 작은고리봉(03:47~03:57) → 묘봉치(04:40) → 만복대 안전쉼터(05:00~05:15)

                  → 만복대(05:53~06:00) → 정령치(06:53~08:18) → 고리봉(08:52) → 1266.5봉(09:48) → 1212.1봉(10:34)

                  → 세걸산(11:03~11:18) → 세동치(11:29~11:31) → 1,110능선(12:06~13:03) → 부운치(13:19)

                  → '산덕임도' 갈림길(13:41) → 팔랑치(14:10) → 바래봉(14:56~15:03) → 덕두산(15:45~15:57) → 829.1봉(16:47)

                  → 안부 쉼터(17:08~17:15) → 구인월 경로당(17:42~17:52) → 인월지리산공용터미널(18:02)

[산행 지도]  1:50,000 운봉(국토지리정보원 1:25,000 2013년 온맵 편집)

 

[구글 어스]

2023-06-24_지리산 서북능선_성삼재-바래봉-구인월 경로당.gpx
1.01MB

 

[산행 기록]

   동서울터미널에서 금요일 밤 11시에 출발한 함양지리산고속 시외버스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잠깐 정차한 후 바로 성삼재로 향한다. 날짜가 바뀐 토요일 새벽 2시 45분에 성삼재 주차장에 도착하니 우리보다 동서울에서 5분 빨리 출발한 시외버스를 비롯하여 각지에서 온 산악회 버스가 여러 대 주차해 있다. 이른 새벽 아니 심야임에도 불구하고 지리산을 찾은 산객들 모두 노고단으로 걸음을 바쁘게 움직인다. 노고단으로 빨려 들어가는 산꾼들을 보면서 산행 준비를 마친 우리는 주차장에서 빠져 나와 백두대간 산길을 쫓아 반선 방향으로 향하는 도로를 따른다(03:00).

 

   2012년 6월에 백두대간 2구간 샨행을 하면서 걸었다고 고리봉으로 향하는 들머리를 잊지는 않았다. 어둠 속에서도 국립공원 초소의 열려진 차단봉이 보이는 들머리를 통과하면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오늘은 음력으로 5월 7일이므로 보름달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늘에 달이 걸려 있다면 어슴프레하게나마 길이 보일 법한데 구름에 가려진 것인지 숲길은 어둡기만 하다. 결국 랜턴에 의지하다 보니 시야는 좁아지고 울퉁불퉁한 산길을 조심스레 걷는다.

 

   어두운 산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지형도 상에 고리봉으로 표기된 1248봉에 올라선다(03:47). 이곳 고리봉은 정령치를 지나 만나는 또 다른 고리봉(△1305.4m)과 구분하기 위해 편의상 작은고리봉이라 부르고 있다. 아무 것도 보이질 않는 찰흙같은 어둠이지만 잠시 숨을 고르느라 십 분을 쉬었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03:57). 요즘은 백두대간 산길을 찾는 산꾼들의 발걸음마져 뜸해졌는지 다 큰 성인 둘이서 걷는 산길에는 간간이 적막감이 흐른다. 아무리 어두워 사물의 분간이 어렵다하지만 한번 경험한 것이 각인된 것인지 묘봉치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느낄 때쯤 작은 공터의 묘봉치를 지난다(04:40).

 

   새벽 안개인지 습도가 높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하는 더위는 어둠 속이라고 다르지 않다. 오르막길을 올라가면서 소모되는 에너지가 땀이 되어 열기를 발산하는 와중에 폐 헬기장을 지나(04:50~04:52) '만복대 안전 쉼터'라 표기된 기둥을 만난다(05:00).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밝아지는 여명으로 사방을 희미하게나마 분간할 수 있게 되었다. 쉼터에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니 새벽 안개 구름인 듯한 구름 바다가 지리산 주능선과 이곳 서북능선 사이에 갇혀 있다. 성삼재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갇힌 구름 속에서 솟아난 반야봉의 마고 할미는 지금쯤 잠에서 깨었으려나. 마고 할미에게 우리가 왔다고 눈인사 하고 구례읍을 덮고 있는 안개 구름을 본 후 만복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05:15).

 

   오늘 안개 구름이 이렇게 짙은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한낮의 무더위는 폭염이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하지만 그런 걱정도 잠시뿐 오랜만에 찾은 지리산이라고 전 같았으면 금방 올라갔을 만복대가 아직 멀기만 한 것 같다. 답답하던 시야가 트이면서 위로 올려다보이는 만복대, 가는 길목에 피어난 야생화들이 늦은 발걸음을 더 늦게 한다. 나이가 들수록 꽃에 시선을 판다고 하더니 나 역시 그러나 보다. 꿀풀이라 부르는 하고초와 기린초 그리고 은대난초를 닮은 야생화들을 보면서 올랐어도 발걸음은 만복대(1433.4m)에 도착했다(05:53).

 

   우리보다 먼저 만복대를 지키고 있는 두 명의 산꾼들은 나주에서 출발하여 정령치에 주차를 한 후 올라왔다고 한다. 아마도 만복대에서의 일출을 기대하고 왔을 텐데 반야봉 왼쪽으로 떠오르는 해 대신 서복능선을 넘나드는 구름을 촬영한 휴대폰의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장소가 이곳 만복대가 아닌 노고단이었다면 지리산 10경 중 제3경인 노고단의 운해(老姑雲海)를 보았을 텐데 아쉬웠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쉽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이지만 오늘 우리가 누려야 할 복은 이만큼이려니 생각하면서 정령치로 먼저 내려가는 그들과 달리 만복대에서 이제 잠에서 깨고 있는 지리산의 모습을 즐기기 위해 조금 더 머물다 떠난다(06:00).

 

   지리산 10경에 대해 검색하면 지리산 등산 지도를 처음으로 제작하여 배포했던 지리산 산악회가 지난 1972년 가장 대표적인 자연경관 10곳을 들어 '지리산 10경'이라고 발표하였다고 한다.

1경 천왕봉 일출(天王日出),  2경 피아골 단풍(직전단풍, 稷田丹楓),  3경 노고단 운해(老姑雲海),  4경 반야봉 낙조(般若落照),  5경 벽소령 명월(碧宵明月),  6경 세석평전 철쭉(細石),  7경 불일폭포(佛日顯瀑),  8경 연하선경(연하선경),  9경 칠선계곡(七仙溪谷),  10경 섬진청류(蟾津淸流)

 

   헤드 랜턴이 필요없을 정도로 밝아진 산길을 가는데 전에는 못 보았던 쇠파이프가 안내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나타나는 내리막길의 나무 데크 계단길 역시 낯설은 것이 지리산과 너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나 보다. 1351.5봉을 넘자마자 바로 만나는 '만복대 안전 쉼터'는 그냥 통과하고 정령치를 향해 계속해서 고도를 낮춘다. 만복대나 정령치 모두 1.0km라고 표기된 이정표에는 '현 위치번호 : 지리(전북) 20-02 해발고도 1295m'라고 되어 있다(06:28). 산죽 사이로 만들어진 나무 데크 계단길이 끝나면서 시야가 트이는 정령치에 내려서니 앞쪽으로 고리봉이 뾰족하게 보인다(06:53).

 

   정령치에서 오른쪽 아래에 있는 주차장으로 내려가 아침을 먹기로 한다. 주차장에는 전알 차박을 한 차량 서너 대가 있고 만복대에서 만난 두 명의 산꾼들이 타고 온 차량도 보인다. 주차장 한편에 자리를 잡고 한근이 준비해 온 북어로 국을 끓여 아침을 먹는데 당일 산행에서 이처럼 국을 끓여 먹을 줄 몰랐다. 아침을 먹고 자리를 정리하는데 남원역에서 아침 7시 20분에 출발한 정령치 순환버스가 주차장에 도착하는 것이 보인다. 문이 굳게 닫힌 매점이 폐쇄된 것으로 알았지만 직원이 출근 전이었던 것 같다. 올 때나 갈 때나 한산한 정령치 주차장에서 이제 고리봉을 향해 내려온 길을 따라 다시 올라간다(08:18).

(남원역에서 출발하는 정령치 순환버스는 1코스, 2코스로 나뉘고 코스별로 각 3회 운행한다(괄호 안은 정령치 출발 시간).

  [1코스]  07:20(08:30),  11:05(12:15),  14:50(16:00)   [2코스]  08:30(10:10),  12:30(14:20),  16:30(18:15))

 

   아직도 천왕봉은 흐릿한 구름 속으로 숨어 버린 채 나올 생각이 없나 보다. 주능선에 눈길 한번 주고 다시 산길로 접어드니 이내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갈림길이 나오지만 고리봉을 향해 그냥 직진한다. 나무 데크 계단을 올라섰나 싶으면 돌계단 길이 나오고 다시금 나무 데크 계단길로 올라선다. 계단길이 끝나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어 만복대와 머리카락 빠진 정수리 마냥 휑한 정령치를 뒤돌아본다. 만복대에서 흘러내리는 산줄기를 보느라 잠시 멈춘 발걸음 다시 옮기면 '정령치 차단성' 안내판이 나온다.

 

정령치 차단성(鄭嶺峙遮斷城)

• 위치 : 정령치 ~ 큰 고리봉

• 잔존부분 : 약20m ※ 정령치 차단성으로 확인되어 보존된 가장 긴 부분

• 축조시기 : 삼국시대 추정

   정령치 차단성능 남원시 산내면 덕동리와 주천면 고기기의 경계를 이루는 지역으로 정령치와 큰 고리봉 사이 능선을 따라 '一(일)자'형으로 적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이다. 성벽은 대부분 무너졌고 큰 고리봉으로 가는 탐방로를 따라 현재 높이 2m, 길이 20m가 원형으로 남아있고 곳곳에 축성 흔적이 있다.

   승려 청허당(서산대사)이 쓴「황령암기」에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난리를 피해서 이곳에 도성을 쌓았는데, 그때 황 장군과 정 장군에게 그 일을 감독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 안내판 전문

 

   여전히 올라가는 산길이지만 막힘이 없으니 또 한번 뒤돌아서서 지나온 길을 본다. 옅은 구름이 정령치를 넘지 못하고 고기리로 이어지는 도로에 걸렸는데 남원역에서 출발한 버스는 저 도로를 따라 올라왔을 것이다. 다시 올라가는 산길을 따라 오 분여 걸어서 올라선 등로 한가운데 튀어나온 삼각점[운봉 25]이 고리봉(△1305.4m)임을 말하고 있다(08:52). 암석의 정상부에 세워진 이정표는 백두대간 산길의 분기점임을 암시하는데 이곳까지는 예전에 걸었던 길이지만 이정표를 지나서 바래봉으로 가는 길은 초행길이다.

 

   여전히 구름에 가려진 천왕봉 방향을 살펴보고 8.6km 남은 바래봉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초행길에 만나는 노란 큰뱀무 꽃이 반갑다고 반겨주니 발걸음이 가볍지만 그래도 바래봉은 아직 요원하니 능선 상에서 잠시 쉬어간다(09:03~09:07). 너덜같은 산길을 내려섰다가 올라선 1279.3봉(09:19), 내려가는 길목에 걸려 있는 반달가슴곰과 마주쳤을 때 대처 방법을 알려주는 현수막을 보니 지리산에 자연 방사한 반달곰이 등산객과 마주치기는 하나 보다.

 

   다시 내려가면 암릉 우측편에 만들어진 나무 데크 계단길이 나오고 조금만 올라가면 이내 흙길로 바뀐다. 산길 한편에 서 있는 현 위치 표지목의 번호는 세동치 방향으로 하나씩 증가하고 산죽이 수시로 나타난다. 1279.3봉에서 십여 분 내려서서 만나는 갈림길, 오른쪽은 일반 산길로 이어지는 반면 왼쪽 산길은 중간중간 바위를 넘어가라 한다. 바윗길 저 위가 1266.5봉이겠거니 하고 올라서면 앞쪽으로 보이는 또 다른 암봉이 나오고 그 암봉을 넘어서야 1266.5봉이다(09:48). 1266.5봉에서 지나온 길을 바라보는데 정령치는 고리봉에 가려졌고 만복대가 그 너머로 보일 뿐이다. 옅은 구름이 하늘을 가렸다 하지만 햇볕을 피해 1266.5봉에서 그늘이 진 능선으로 이동하여 잠시 쉬어간다(09:52~10:02).

 

   새벽녘 산자락을 휘감았던 안개가 걷히면서 습도만 올라간 것인지 체감 온도는 실제 온도보다 더 높게 느껴진다.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1252.7봉을 지나고 약간 경사진 내리막길을 내려가 숲길로 걷다 보니 '현 위치번호 : 지리(전북) 19-07, 해발 1178m' 위치 표지목이 서 있는 1212.1봉에 도착한다(10:34). 잠시 후 나뭇가지 너머 희미하게 보이는 구릉이 세걸산인 듯한데 지형도에서 보는 거리보다 더 멀게 느껴진다. 세걸산으로 가는 산길은 나무 계단길로 내려가서 만나는 목책 너머로 바위가 나오는데 조망이 좋은 곳이다(10:53~10:55). 오른쪽 반야봉에서 흘러내리는 산줄기 아래 무언가 보이는데 덕동마을인 듯하다. 다시 목책을 넘어 완만한 오르막길로 올라서니 전망 데크가 설치된 세걸산(1220.0m)이 반겨준다(11:03).

 

   데크에 세워진 '세걸산에서 바라본 지리산' 안내판에는 주능선의 모습이 선명하지만 지금은 흐릿한 선을 그리고 있다. 천왕봉을 못 보는 아쉬움은 안내판에 부착된 사진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자리를 옮겨 그늘진 곳에서 더위를 식힌다. 이제 구인월 경로당까지 남은 거리를 휴대폰의 오룩스 맵으로 확인하니 오후 5시 쯤이면 도착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마냥 쉴 수가 없기에 후덥지근하지만 멈춘 발걸음을 세동치를 향해 다시 옮긴다(11:18).

 

   십여 분 내려간 곳에 폐 헬기장인 듯한 공터가 나오는데 뒤돌아보면 조금 전에 휴식을 취했던 세걸산이 지척이다. 그리고 몇 걸음만 더 걸어가면 안부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세동치가 나오는데 가야 할 바래봉까지는 5.1km 남았다고 이정표가 알려준다(11:29~11:31). 왼쪽 전북학생수련원으로 내려가는 산길이 있는 세동치의 이정표를 뒤로하고 나무 뿌리가 드러난 산길을 걷는다. 시야를 가리던 나무들 사이를 삐집고 1159.8봉이 바로 앞에 나타나고 그 왼쪽편에 뾰족하게 솟은 바래봉이 빨리 오라고 한다. 하여 쉼없이 걸으니 숲길이 끝나면서 햇살이 따가운 공터로 나서는데 지형도 상 1159.8봉으로 봉우리 같은 느낌이 없다(11:45).

 

   앞쪽으로 선명하게 모습을 보여주는 바래봉을 향한 밋밋한 능선길은 다시금 숲길로 바뀌고 1142.6봉을 지난다(11:58). 이어 지형도 상 부운치에 이르는데 아무런 표식이 없고 점심 때가 되어 둘이서 쉬었다 가기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 걷다 보니 1110m 능선 상의 작은 공터가 나온다(12:06). 자리를 펴고 오늘 점심은 한근이 준비해 온 오이채와 보온병의 시원한 육수를 곁들인 오이 냉채에 햇반으로 허기를 달랜다. 역시 땀을 흠뻑 흘리고 난 후에 먹는 시원한 오이 냉채를 점심에 먹기를 잘했다고 자화자찬하면서 머물렀던 자리를 정리한다(13:03).

 

   서서히 낮아지는 산길은 이정표가 세워진 부운치로 내려서는데 오른쪽으로 부운마을이 있다고 한다(13:19). 산죽밭 사이로 올라가면 산길에 삼각점[운봉 307]이 매설된 잡초가 무성한 공터인데 이곳이 △1121.9봉이다(13:28~13:31). 삼각점을 확인한 후 부드러운 풀밭길을 걸어서 산덕임도 갈림길을 지나자마자 또 다른 삼거리를 만난다(13:42). 지형의 생김이 오른쪽 오르막길로 가야 할 것 같아 오른쪽 길로 진행하니 길은 이내 철쭉나무에 가로막혀 갈 수가 없다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와 아랫편 임도같은 길을 따르는데 바래봉의 철쭉나무 숲터널이 시작된다.

 

   철쭉나무 사이로 뻗어 있는 산길은 봄날 철쭉이 피는 시기라면 아마도 밀려가지 않을까 생각되는 철쭉터널을 지난다. 철쭉꽃이 진 지금은 철쭉나무들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야생화들에게 눈맞춤 하면서 가는데 터널이 끝나면서 앞쪽으로 바래봉이 가까이 보인다. 하지만 보기와는 달리 바래봉은 멀다는 것을 아직은 모르고 걸어가다 보니 탁 트인 개활지가 나온다(13:56). 풀밭 사이로 이어지는 산길 왼쪽으로 굵은 줄이 출입을 하지 말라는 곳에 이르니 '지리산 바래봉 훼손지 복원'이라 적힌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에는 지리산 바래봉 일원은 1971년 우리나라 최대의 면양 목장이었는데 1993년 목장이 문을 닫을 때까지 방목을 위한 왜래 목초지로 이용되어 생태계가 훼손된 지역이라고 한다. 2020년부터 생물 다양성 회복을 위한 훼손지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므로 출입을 금하여 달라고 적혀 있다.

 

   조금만 올라가면 훼손지의 정점에 이르고 뒤돌아보면 지나온 산줄기가 우향의 원을 그리면서 뻗은 모습이 아름답다. 쭉 뻗어온 산줄기는 바래봉으로 달려가기에 우리도 그 산줄기를 따라 나무 데크 계단길을 내려간다. 살짝 내려간 테크 탐방로에서 우측으로 길을 바꾸는 곳이 있어 올라가 보니 전망대가 나온다(14:06). 다시 데크 탐방로로 내려와 평지같은 길을 걸어가면 우향으로 휘어지는데 그 끝지점의 이정표에는 '팔랑치'라고 적혀 있다(14:10). 산길 오른쪽으로 산내면의 팔랑마을이 있어 고갯마루 이름을 팔랑치라고 부르는 듯하다.

 

   그늘이 없는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보도블록 같은 것으로 정비된 구간을 지나 바래봉 삼거리에 도착한다(14:37). 바래봉 삼거리는 왼쪽의 용산리와 바래봉을 넘어 인월의 월평마을로 갈라지는 삼거리다. 이정표에는 바래봉까지 0.6km 남았다고 하는데 산등성이로 직접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아래편의 임도를 따라 에돌아가야 한다. 한낮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탓에 배낭 안의 수통에는 수량이 줄어든다(바래봉 가는 길에 샘이 있다고 하는데 못 보았다). 짧은 거리이지만 멀게 느껴지는 넓은 임도같은 길은 바래봉을 향해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라는 이정표를 만난다(14:46).

 

   이제 0.3km 남은 바래봉으로 가려면 계단길로 올라가라 한다. 0.3km라 하지만 더위에 지처 버린 산꾼에게는 아직도 먼 거리처럼 느껴진다. 계단길을 올라가고 또 올라가면서 잠시 멈춘 발걸음, 뒤돌아보니 반야봉과 그 너머의 노고단에서 흘러내리는 산줄기 아래에 성삼재가 있으련만 만복대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그 만복대를 넘어 고리봉에서 세걸산을 지나 이곳 바래봉까지 역 S자 형태의 그림을 그리는 산줄기를 잠시 바라본다. 그리고 시선을 왼쪽의 지리산 주능선을 따라 천천히 옮겨가다 보면 천왕봉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구름 속에 가려져 있다. 아쉬움을 버리고 남은 계단을 올라 원형의 데크로 정비된 바래봉(1186.2m) 정상에 도착한다(14:56).

 

   바래봉의 작은 정상석에는 1165m라고 음각되어 있는데 국토지리정보원(https://www.ngii.go.kr)에서 발행된 지형도에는 1186.2m로 되어 있다. 땡볕을 피할 만한 곳이 없지만 바래봉 정상에서 막힘없이 트이는 조망을 즐기느라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잠시 잊어버린다. 그러다가 가야 할 길이 아니 인월에서의 서울행 막차 버스 시간이 생각나 휴식을 접고 하산하기로 한다. 이정표는 용산주차장 4.8km, 월평마을 5.0km라고 한다. 처음 산행 계획 시부터 생각했던 하산 경로는 구인월 경로당이 있는 월평마을이라 당연하다는 듯이 월평마을 방향으로 직진하는 산길을 따라 하산을 시작한다(15:03).

 

   나무들이 가려주는 숲길의 산길을 따라 그냥 밋밋한 능선인 1146.8봉을 거쳐(15:28) '현 위치번호 : 지리(전북) 37-05, 해발 1103m' 위치 표지목을 지나면 삼 분 후 덕두산(△1150.5m)에 도착한다(15:45). 정상에 서 있는 이정표에는 '덕두봉 해발 1150m'라고 되어 있으며 기초대가 훼손되어 번호 판독이 불가한 삼각점이 묻혀 있다. 이곳에서는 인월 방향 및 동쪽으로 시원스런 조망을 보여주는데 여태까지 꼭꼭 숨어 있던 천왕봉이 잠시나마 구름을 벗었다. 더위를 먹은 것인지 사진을 촬영하고 싶지만 앉아버린 엉덩이가 무거워 일어나 출발할 때 촬영해야지 하였다가 잊어버렸다. 더 쉬고 싶지만 남은 거리와 예상 소요 시간을 계산해 보니 마냥 쉴 수 만은 없기에 다시 출발한다(15:57).

 

   덕두산에서 하산하는 산길의 고저 차를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의 오룩스맵을 확인하니 인월마을의 해발 고도가 약 450m로 표고 차 700m를 짧은 거리로 낮추어야 하는 급경사 길인 듯하다. 하산해야 하는 길은 멀기만 하고 경사는 급한데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한근에게 내색할 수 없으니 마음만 조급해진다. 잠시 후 '흥부골자연휴양림 2.7km, 구인월 3.3km, 덕두봉 0.1km'라 표기된 이정표를 만나지만 구인월로 하산을 계속한다(16:03).

 

   지금까지 완만한 산길이었지만 이제부터는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경사진 하산길에 내딛는 발걸음은 등산화의 앞꿈치로 발이 밀리니 불편하기만 하다. 그렇게 내려가고 또 내려가면서 만나는 '현 위치' 표지목의 번호가 37-03으로 줄었는데(16:24) 경험 상 국립공원의 위치 표지목의 설치 간격이 약 500m이므로 1km의 거리를 27분 정도 걸은 것이다. 그렇다면 월평마을까지 내려가려면 얼마나 더 소요될까 계산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오룩스맵의 오프라인 지도를 이용하여 현 위치를 수시로 확인하면서 내려간다. 산죽 지대의 산길을 얼마나 내려갔을까, 구릉 같지 않은 지형도 상 829.1봉을 지나(16:47) 조금 더 내려가니 '현 위치 37-01' 위치 표지목이 나온다(16:54). 그렇다면 월평마을까지 이제 0.5km 정도만 더 내려가면 된다는 생각에 다소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는 실수를 하였다. 하지만 이 분 후 만난 이정표는 바래봉에서 3.4km를 내려왔고 월평마을까지는 1.6km 남았다고 하니 국립공원 구역의 시작을 월평마을로 착각한 것이다.

 

   마음은 급하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는 하산길이 멀게만 느껴질 즈음 월평마을까지 1.2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에 내려선다(17:08). 이제 아무리 빨리 걷는다 해도 인월에서 동서울까지 운행하는 막차가 17시 50분이므로 지금 속도로는 도저히 탈 수가 없다. 하지만 약간의 여유를 가지고 휴대폰의 '버스타고' 앱으로 막차 시간을 확인했어야 했다. 산행 전 인터넷으로 인월에서 동서울행 막차가 18시 30분이라는 것을 확인해 놓고서도 무슨 이유인지 17시 50분으로 본 것 같은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했던 것이다.

 

   바래봉에서 덕두산으로 가는 도중에 부정맥으로 주저앉은 한근의 몸 상태를 알았기에 시간에 관계없이 쉬었다가 가기로 한다. 불규칙해진 심박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것을 확인했는지 다시 걷는 한근을 뒤에 두고 내가 먼저 내려간다(17:15). 구인월 경로당에서 인월터미널까지 삼십여 분이 소요된다는 산행기를 떠 올리며 먼저 내려가 인월 택시를 호출하기 위해서다. 고도를 한껏 낮춘 산길은 월평마을이 지척이라고 이제 계곡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데 거친 뒷동산 같은 느낌이 든다. 나무도 점점 없어지면서 앞쪽으로 도로가 보이는 개활지로 나서는가 싶으면 잠시 후 물길 공사가 진행 중인 곳으로 나선다. 사방댐 공사인 듯 흙이 파헤쳐진 곳을 지나 만나는 도로에서 오른쪽 두 시 방향으로 내려가면 민가들이 나오고 인기척이 전혀 없는 골목을 따라 내려가니 멀게만 느껴졌던 구인월 경로당을 만난다(17:42).

 

   계획하였던 산행 종료 지점이지만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주민을 만날 수 있는 곳을 찾아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내려가는데 마침 밭에서 감자를 캐고 있는 주민들이 보인다. 하여 인월터미널 가는 길을 물어보니 앞쪽의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오 분 정도만 걸어가면 터미널이 있다고 한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어느 산행기에서 삼십 분 정도 걸었다고 했는데 오 분 정도 걸린다고 하니 혼란스러워진다. 시간을 보니 아직은 17시 50분 막차를 탈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걸음이 늦어진 한근을 위해 인월 택시를 호출해야겠다. 삼거리에서 인월 개인택시 호출 번호를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니 엉뚱한 분실 신고 접수 등의 안내가 나온다. 아무래도 오늘 산행은 이래저래 꼬이기만 하나 보다.

 

   그런 와중에 도착한 한근과 만나 별수 없이 도로를 따라 걸어가면서 여차하면 진주까지 택시로 이동하려고 한다. 람천(濫川)을 보면서 걷는 발걸음이지만 마음이 급하니 시선은 오로지 터미널 방향만 바라보고 있다. 또 다시 한근에게 천천히 따라 오라고 한 후 먼저 빠른 걸음으로 터미널을 향해 걷는다. 구인월교를 건너 도로를 조금 더 걸어가니 인월지리산공용터미널이 나오고 동서울행 막차 시간을 확인하는데 18시 30분이다. 그렇다면 내가 알고 있던 17시 50분이라는 시간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하지만 일단 막차가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한근과 만난다.

 

   바래봉에서 하산하는 지점을 처음에는 용산주차장으로 두 번째는 흥부골자연휴양림으로 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산하는 길이 급경사 길이라 이런저런 갈등이 있었지만 결과는 월평마을로 하산한 것이 잘했다고 판단된다. 용산주차장으로 하산하면 남원으로 가야 하는데 교통편이 여의치 않고 흥부골자연휴양림으로 하산하는 길 역시 지형도 만으로 파악한 바에 의하면 월평마을 방향이나 경사가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다만 0.6km 정도 거리가 짧은 반면 인월까지 2.5km 정도 걷거나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산행이 끝나고 산행 기록을 작성하면서 그때의 상황을 떨올리며 다시 결정해야 한다면 역시나 월평마을로 하산할 것 같다.

 

   오늘 산행은 트랭글에 의하면 성삼재에서 구인월 경로당까지 도상 거리 23km이고 14시간 44분 걸었다고 한다. 도상 거리 23km에 실제 산행 시간이 10시간 30분이므로 평균 시속 2.2km정도로 걸은 것이다. 예전같았으면 휴식 시간 포함해도 10시간미면 충분했을 산행인데 나도 흐르는 세월을 인정해야 하나 보다. 마음과 달리 현실은 그러하질 못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 산행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지리산의 산줄기를 걸었다는 것은 나에게 행복이었다. 동서울이 종점인 함양지리산고속의 시외버스 안에서 다음에는 지리산의 어느 산줄기를 걸을까 하는 고민을 한다.

 

 

[교통 정보]  ※ 대중교통별 운행시간이 수시로 변경될 수 있으므로 해당 교통편 홈페이지 또는 전화로 재확인을 요함

서울(동서울) → 노고단(성삼재) 시외버스 운행시간(동서울종합터미널 ARS ☎ 1688-5979)

      [4시간 소요 예상]  22:50,  22:55,  23:00

      시외버스 통합예매시스템  홈페이지(https://txbus.t-money.co.kr) 참조

      버스타고  홈페이지(https://www.bustago.or.k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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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월(지리산둘레길) → 서울(동서울, 함양 경유) 시외버스 운행시간(인월지리산공용터미널 ☎ 063-636-2000)

      [4시간 6분 소요 예상]  07:50,  09:20,  12:00,  14:00,  15:20,  16:30,  17:30,  17:50,  18:30

      시외버스 통합예매시스템  홈페이지(https://txbus.t-money.co.kr) 참조

      버스타고  홈페이지(https://www.bustago.or.kr)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