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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정맥 산행 기록/낙동정맥_백두대간의 동쪽 울타리

[스크랩] 빨간풍선님의 낙동정맥 제 2차구간(느릅령→석개재) 산행기

아래 산행기는 빨간풍선님(http://blog.daum.net/seetop)의 낙동정맥 제2차구간 산행기입니다.

 

산행기를 보면 통리재(통리삼거리)에는 1:50,000 지형도에 표기된 물길이 있었지만

지금은 복개되어 일반 시멘트 도로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백병산(1260m)에서 통리역으로 이어지는 마룻금은 태현사 방향이 아니라

통리삼거리 앞에 있는 경찰장비함 방향(지형도의 황색실선)의 산줄기로 이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참고자료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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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주소] http://blog.daum.net/seetop/9323564

 

낙동정맥 제 2차구간 (느릅령통리백병산토산령구랄산면산석개재)

 

산행일자 : 2004.08.14(토)

씨 : 안개와 비 반복

산행거리 : 약 19.5km(정맥구간 18.8km)

산행시간 : 15시간30분(정맥구간 순보행 시간 : 11시간57분)

산 행 자 : 조용기(기록), 김현우

 

구간별 거리 및 소요시간

0.6km 1.1km 4.4km 5.2km 1.2km 2.1km 4.2km 18.8km/25.3km

느릅령 ⇒ 우보산 ⇒ 통 리 ⇒ 백병산 ⇒ 토산령 ⇒ 구랄산 ⇒ 면 산 ⇒ 석개재

----      A     ▲    A   〓〓 A   ▲*   A ……… A        A     A   ──

임도           38번국도                                           군도2번

 

2004.08.13(금)

 

18:30

잡지를 한 권 사서 읽으며 버스오기를 기다리는데 한참이나 지나서 부산 노포동 가는 시외버스가 온다.

18:30, 이 시간에 남목을 지나가는 모양이다. 다음 번에 부산 갈 일이 있으면 택시타고 터미널까지 가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 같다. 이 시간을 기억해두기로 한다.

버스에는 사람들이 없다. 방어진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퇴근시간이 가까웠는데도 한산하다. 현대자동차의 (구)정문 앞 등산용품 가게에서 한 사람이 나와 버스에 오른다. 그가 요금을 받는다. 4,500원.

구름은 서쪽 하늘부터 잔뜩 몰려와 해를 가린다. 명촌교를 지나는 버스 안에서 보이는 붉은 해는 구름 속에서 애써 벗어나오려는 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랐다.

버스는 시내에 들어오고, 버스 아래에는 많은 차들이 제 각각의 무늬와 색깔로 버스 옆을 스치듯 지난다. 읽던 잡지를 내려놓고 잠시 잠을 청한다. 그런데, 에어컨에서 나오는 바람이 너무 차다. 지난번 1차 산행 때 기차의 에어컨이 너무 차가웠던 기억에 잠바를 가져갈까 어쩔까 고민했었는데, 가져오길 잘했다. 잠바를 입고 선잠에 든다. 그래도 에어컨 바람이 너무 차다.

버스 머리받이가 너무 불편하여 목이 아프다. 입고있던 잠바를 벗어 둘둘 말아서 목뒤에 고이니 좀 살 것 같다. 여전히 춥다. 에어컨 바람을 조절 해야겠다는 생각을 왜 진작 하지 못했을까? 그래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구멍을 닫아본다. 그러나 바람은 다른데서 나오고 있었다. 독서등이 있는 자리에 전구가 빠져서 그 곳으로 찬 바람이 나오고 있다.

 

20:08

어느덧 버스는 부산에 도착했다. 노포동에 차가 정차하였으나, 선잠이 덜 깬 상태로 멍하니 있던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다 내린 후에야 정신을 차려 허겁지겁 버스에서 내린다. 버스에서 내리니 공기는 다시 후덥지근하다. 그래도 입추가 지난지 몇일 되어서 그런지 숨이 막힐 정도는 아닌 것 같다.

터미널 안으로 들어오니 시장기가 느껴진다. 간이 분식점에서 어묵을 하나 해치우고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오른다. 2층은 다시 1층으로 되어있다. 시외버스 탑승구는 다시 한 층을 올라 가야 하지만, 나는 지하철을 타야 하기에 지하철 탑승구로 발길을 옮긴다. 지하철 승차권을 사기 위해서 승차권발매기의 2구간을 누르고 나서야 지폐투입구가 없음을 안다. 하는 수없이 사방을 둘러보니 옆의 발매기에는 지폐가 들어가는 투입구가 있어서 발매기 앞에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 뒤로 줄을 선다.

 

20:18

승차권을 받아들고서 어디로 들어갈까 고민하는데, 사람들이 뛰어서 내 옆을 스쳐간다. 지하철이 대기 중 일거라고 짐작을 하고 나도 그들을 따라 뛰어 내려간다. 지하철 종착역인 노포동역 승강장에는 이미 지하철이 문을 활짝 열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객차는 맨 뒤에서 두 번째 칸이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현우에게 전화를 한다. 현우는 맨 뒤 칸에 타고 중앙동까지 오라고 한다. 맨 앞칸이 아닌게 다행이다.

 

21:00

중앙동 역에서 내려 나오니 현우가 배낭을 메고 보따리 하나를 들고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저녁을 먹고 부산역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저녁은 현우가 사기로 이미 약속되어 있었다.

 

21:45

부산역 방향에 위치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근처의 편의점에서 필름과 몇 가지 물품을 구입하고 나서 걷는다.

 

22:00

부산역사는 고속철도가 연결되면서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는지 밖에서는 으리으리하게 보인다. 저렇게 돈으로 도배를 했으니 적자소리가 나오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없던 에스컬레이터를 몇 군데나 깔고, 개찰구도 지하철처럼 되어있고, 승차권도 마그네틱 테이프로 되어있고… 지난번에 기차표를 살 때 마그네틱 테이프가 왜 승차권 뒤에 붙어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 알았다. 개찰구를 지날 때 승차권을 집어 넣으면 현재 개찰 중인 승차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게 되어 있어서 무임 승차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이렇게 투자를 많이 하니 적자소리가 나오지…

 

22:15

기차는 출발한다. 안내방송이 한번에 4가지 언어로 나온다. 내게는 소음이다. 외국 관광객을 위해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그 소음을 인내 해야 한다. 그래야 외국 관광객이 많이 이용할 테니까.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따져보고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본다.

동대구에서 그리고 대구에서 많은 사람들이 탄다. 그들은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대구 사람들은 목청이 커서 많이 시끄럽다. 잠을 좀 자야하는데 그들의 소음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한다.

 

2004.08.14(토)

잠결에 철암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린다. 창 밖은 암흑이다. 가까이 사일로를 얹은 화물열차가 선로사이에 서있는 모습이 지나가고, 그렇게 어둠 속을 기차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04:40

통리에는 안개비가 내리고 있다. 시계는 약 10m정도만 확보되는 느낌이다.

잠시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에 현우가 서두른다. 택시를 잡아놨다고, 가방은 역 구내에 두고 가자고…. 황망히 랜턴과 지갑만 챙긴다. 현우는 랜턴과 물 500cc 1병을 챙기고 배낭과 보따리를 역무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역구내 한쪽 구석에 옮겨둔다.

 

04:50

택시를 타고 어랑골로 출발한다. 안개가 너무 짙어서 주변을 볼 수 없다. 안개비도 오고…산행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05:00

흐릿한 안개사이로 외랑골 버스 정류소를 지난다. 어랑골인지, 외랑골인지 지명이 헷갈린다. 차를 돌려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와서 내린다. 요금을 얼마를 드려야 되냐고 물으니 기사가 4,000원을 달라고 한다. 원래는 택시를 타고 느릅령까지 올라 가려 했으나, 기사가 싫어할 것 같아 그냥 내린다.

안개 속이지만 지난번의 기억을 되살려 느릅령으로 올라가는 임도를 찾아내어 산행을 시작한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임도는 여전히 공사 중이지만, 군데 군데 흙이 쓸려 내려간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사이 비가 몇 번 왔음을 짐작케 한다.

 

05:10

유령산당에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안개사이로 산당 앞에 어른 거리는 황금 빛은 마치 사람 같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다. 산당에 누군가 있는 것은 틀림없다. 산당 안에 켜진 불빛이 새나와 멀리서 보면 마치 사람이 황금색 옷을 입고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보인다. 산당 안에 있는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승용차가 1대 서있다.

여기가 지난번에 지나간 산당이 있는 【느릅령】이다.

산당에는 "유령산영당楡嶺山靈堂"이라고 현판이 걸려있고 그 왼쪽에는 "유령재유래문"이 있다.

 

유령제유래문(楡嶺祭遺來文)

이곳 느릅령은 신라때 임금이 태백산 천제를 올리기 위해 소를 몰고 넘던 고개이며 조선시대에는 태백산을 향해 망제를 올리던 곳으로 우보산(牛甫山)이라고도 했다. 먼 옛날 차도와 철도가 나기 전 이 고개길은 영동과 영서를 잇는 교통 요충지로 험하고 높기에 맹호의 피해가 심하여 고개 밑에서 10명씩 모여서 넘곤 했다. 그 후 주민들이 산당을 짓고 영로(嶺路)의 무사 안행과 주민의 평안과 풍년농사를 기원하게 된 것이 천년이 넘는다. 중간에는 관청에서 보조봉제하다가 임진왜란등 난세에는 중단하므로 산당이 무너지는 등 피해가 극심하던 때 황지에 살고 있던 효자가 소달장(所達場)에 부친제사 장보러 갔다가 그날따라 늦어서 모군(募群)에 합류하지 못하고 혼자 산을 넘다가 호랑이인 산령에게 홀려서 죽게 될 지경에 이르자 아버지 제사봉행으로 살려달라고 애원하니 산령왈 효성이 지극하니 나의 청을 들어주면 살려주겠노라고 하여 청왈 황소를 잡아 여기에 제사를 올려주면 무사하리라 하기에 약속하고 귀가하여 부친 제사 후 황우를 제물로 음 4월 16일에 제사를 올리게 된 후부터는 태백과 삼척 주민들이 산당을 복원하고 매년 이날 황우를 제물로 무사태평과 소망을 기원 봉제사하게 된 것도 우금(于今) 수백년이다. = 단기 4330. 음 4.16 유령제 봉사회 근수(謹竪) =

 

산당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은 안개 속에서 묘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누군가 산당 안에서 제를 올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산당을 등지고 우보산을 향해서 걸음을 옮긴다. 부서져 골조만 남은 비닐하우스 사이로 붉은 빛이 보인다. 우리는 그게 등산객이 매어놓은 리본인 줄 알고 걸음을 옮겼다가 그게 리본이 아니라 꽃임을 알게 된다. 두리번 두리번 하다 풀섶 사이로 희미한 산행길을 발견한다. 몇걸음 옮기니 리본을 여러 개 매단 나무가 나온다.

 

05:20

우보산으로 오르는 길은 무척 가파르다. 아직 산은 안개에 싸여있어 열걸음 전을 보지 못하고, 조금만 앞서가도

뒤따르는 현우가 보이지 않는다.

 

05:26

밋밋한 정상에 도착한다. 【우보산】은 아무런 표식도 없고 그저 밋밋하기만 하다. 여기가 정상임을, 우보산임을 알려주는 것은 낙동정맥을 종주하는 많은 사람들이 매어놓은 리본이 전부다.

빗방울이 돋는다. 서둘러 이동한다.

 

05:33

작은 언덕을 몇 개 지나 갈림길에 도착 한다. 선행자에 따르면 오른쪽은 갈미봉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이 통리로 내려가는 길이라고 했다. 여기가 거기인듯 하다.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제법 경사가 급하다. 오른쪽으로 계곡을 끼고 내려간다. 왼쪽으로는 안개속에서 기차가 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선행자들은 10정도만 가면 통리역에 도달한다고 했는데, 15분이 지나도 통리 역은 보이지 않는다. 안개 때문인지, 우리의 걸음이 늦은 것인지 알 수 없다. 빗방울이 줄기가 되어 후두둑 쏟아진다.

 

05:54

안개사이로 옥수수가 보이더니 산길은 밭으로 접어든다. 아 다 왔다. 안개너머로 통리역사 불빛이 희미하게 보인다. 지난번에 확인하기 위하여 통리역 방향에서 올려다본 그 밭에 우리가 와있다. 길을 헤메지 않았구나….

 

05:57

밭고랑 사이로 내려와 통리역에 들어선다. 배낭을 찾고, 세수부터 한다. 온몸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풀들이 더덕더덕 붙어있다.

 

통리

연화산, 백병산 자락에 포근히 쌓인 통리는 해발 680m 정도의 고산지대에 자리하고 있으며 사방의 산이 높고 그 가운데로 길게 골짜기가 형성되어 마치 구유처럼 생겼다 하여 통리(桶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어떻게 한다?

원래 계획 대로라면 당장 아침식사를 해먹고 산행을 계속해야 한다. 비가 오는데 어디서 밥을 해먹나?

 

비가오는데 산행을 할 수 있을까? 내리는 빗줄기를 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역 구내에서 시간표를 보니 동대구로 가는 기차가 07:57에 있다. 아직 두시간이 남아있다. 그동안에 산행을 계속 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역구내에서는 등산객으로 보이는 두명의 중년남자가 김밥을 먹고있다.

 

비는 잦아들고, 역전에 있는 가게들이 하나 둘 문을 연다.

비가 잦아들고는 있지만 비를 피할 길이 없으니 버너를 지피기가 난감하다. 지난번에 점심을 먹었던 식당이 문을 열었다. 어차피 아침은 해결해야 하니 산을 가든 말든 아침부터 해결하자는데 의견 일치를 보아 식당에서 아침을 사먹기로 한다.

 

06:45

식당에서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아까 역 구내에서 김밥을 먹던 두명의 중년남자가 관광안내판 앞에 서 있다. 나가서 산행하려고 하느냐고 하니 그렇다고 한다. 비가 온다던데 그래도 갈꺼냐고 하니 그들도 고민중이라며 일단 가보고 비가오면 도중에 내려올거라 하고는 자리를 뜬다.

식당에서 일기예보써비스에 전화를 한다. "……태풍의 영향으로……강원도 남부지역은 흐리고 가끔 비가 오겠으며

비가 올 확률은 오전에 60%, 오후에 70%, 강수량은 10mm에서 40mm정도……"

 

07:27

식사를 마치고 나니 비가 멎었다. 일단 역 구내에서 짐을 다시 싸기로 한다. 산행을 계속하든 돌아가든 배낭에 넣지 못한 보따리를 처리해야했다. 짐을 다 꺼내어 놓고 다시 차곡차곡 배낭에 집어 넣으니 알맞게 다 들어간다. 배낭외의 보따리가 없어서 다행이다.

짐을 다 챙기고 나서 다시 고민 한다. 가느냐 마느냐…… 지난번에도 목표거리를 완주하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시작도 못하고 포기해야 하는 건지……여기까지 온 차비와 시간, 그리고 준비한 것들이 너무 아깝게 여겨졌다. 그런데 비는 오고, 안개는 자욱하고….

 

07:36

결국 백병산까지만 가보기로 한다. 백병산에 도달하기전에 비가 온다면 되돌아 오자는데까지만 합의를 하고 배낭을 메고 나선다. 어느덧 비는 그치고 언뜻 언뜻 하늘의 파란색도 비치는 것 같다.

 

07:39

건널목. 차단기가 소리를 내며 내려온다.

기차는 길게 화물을 싣고 지나가고 나서야 차단기가 올라 간다.

 

07:44

건널목을 건너 도로에 올라서니 해발 720m를 알리는 표지가 나온다.

태현사로 오르는 길을 알리는 표지판은 보이지 않고, 『가곡산자연휴양림』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720m를 알리는 표지판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경진슈퍼 오른쪽으로 난 복개천을 따라 오른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게 세멘트 포장 도로처럼 보였다. 조금 올라가니 길이 끊어져 다시 내려온다.

 

08:02

마침 경진슈퍼에 불이 들어왔기에 들어가 태현사 가는 길이 더디냐 물으니 슈퍼 아주머니 하시는 말씀이 이쪽으로 가도 되고, 저쪽으로 가도 된다는 애매한 말을 하신다.

아까 그길을 다시 오르니 길이 끝나는 곳에 있는 집에서 아저씨가 한분 나오신다.

그분에게 태현사가 어디쯤 있느냐고 물으니 그분은 "이길로는 이슬이 많아서 못가는데…"라고 말씀하시면서 계속 가면 된다고 애매한 말씀을 하신다. 그래서 계속 올라 갔다. 밭을 지나 언덕에 오르니 태현사가 보인다.

그런데,,,태현사까지는 키만큼 자란 잡풀들이 비를 잔뜩 머금고 길을 막고 있다. 언덕을 다시 내려갈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풀섶을 헤치며 나아가는데, 옷이 다 젖는다

 

【태현사】가는 길은 『가곡산자연휴양림』을 알리는 간판을 따라 휴양림길을 따라 조금 가다보면 오른쪽에 태현사로 가는 시멘트 포장길이 나온다. 즉, 경진슈퍼를 지나 오른쪽 아스팔트 포장길로 올라서야 태현사로 가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경진슈퍼를 지나지 않고 그 앞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길이 아닌 곳으로 올라와버린 것이다.

 

08:11

태현사는 흔히 생각하는 기와를 얹은 목조건물이 아닌것 같다. 평범한 양옥으로 되어있어 여기가 태현사임을 알리는 입석이 없더라면 절인지 민가인지 구분하지 못할 것 같다. 산을 향하는 길은 오른쪽으로는 밭이 있고, 왼쪽으로는 솔숲이 있다.

 

08:14

솔숲 입구에는 리본이 많이 달려있다. 리본이 없으면 보이지도 않을지 모를 소로를 따라 솔숲으로 들어선다.

안개는 많이 걷혔다.

 

08:19

가뿐 숨을 허덕이며 철탑에 다다른다. 철탑의 표식을 확인하고자 하였으나, 안개가 높이 있어 확인 할 수 없다.

철탑 밑에는 풀이 없다. 비가 온 흔적도 없다. 숲이 우거져서 땅에는 아직 빗방울이 도달하지 않은 것 같다.

철탑을 지나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고

 

08:43

평탄한 길에 들어선다. 길 옆으로는 버섯들이 다양한 모습과 다양한 색깔로 우리를 맞이했다가 배웅한다.

평탄한 길이 끝나고 다시 오르막이 시작 된다. 나뭇가지에서 빗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비가 내린다. 그러나 빗물이 직접적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나뭇잎에 앉아있다가 우리가 지나가면서 가지를 흔들면 빗방울은 그 때 떨어진다. 옷이 말랐다 젖었다 한다.

 

09:22

작은 봉우리에 도착한다. 야영한 흔적이 있고, 나뭇가지에 리본이 많이 달렸다.

잠시 휴식한다.

비가 와서 지도를 꺼내보지 못한 채 여기가 어딘지 가늠할 수 없다. 나중에 보니 여기가 아마 【1090m봉】인듯 하다.

 

09:43

봉우리를 뒤로하고 출발한다. 이어지는 오르막과 내리막.

 

09:54

안부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 한명이 우리를 추월한다. 혼자 가고 있다고 한다. 어디가지 가느냐고 묻길래 석개재까지 간다고 했더니 그 사람 하늘 한번 보고는 달려가듯이 멀어져 간다.

 

10:00

왼편으로 반공호로 보이는 웅덩이를 지나친다.

 

10:06

평탄한 길 끝에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길은 산죽으로 덮여있다. 【흑찌이밭재】로 짐작한다.

여기서 시작되는 산죽은 덧정없이 석개재까지 이어진다. 산죽을 지날 때 산죽 잎에 앉은 빗물은 고스란히 내 온몸을 적신다. 이후 계속되는 산행에 땀으로 옷을 말리면 어김없이 산죽이 나타나 다시 온 몸을 적시기를 반복한다. 비에 젖은 산죽은 생각만해도 징그럽다.

 

10:11

산죽이 끝나는 곳에 초지가 형성되어있다. 헬기장으로서는 좁은데 왜 여기 초지가 있을까? 나중에 확인하니 여기가 【면안등재】인 듯 하다. 비가 내려서 정작 필요할 때 지도를 꺼내보지 못하는 것이 이번 산행을 힘들게 한 또 다른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즉, 우리의 현재 위치를 짐작할 수 없다는 것은 남은 산행거리를 가늠할 수 없기에 더욱 더 지치게 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다시 오르막을 지나 능선으로 길은 이어진다. 길 옆에는 반공호로 보이는 웅덩이가 좌 우로 몇 개가 보이고, 왼쪽으로는 나뭇단 위에 이상한 돌이 보인다. 분명 발파장에서나 발견될 듯한 돌 조각이었다. 다이나마이트를 바위에 심기 전에 바위에 구멍을 뚫게 되는데, 그 때 뚫어진 구멍에서 나온 돌인 듯 원기둥 모양을 하고 있다.

 

10:34

다시 짧은 내리막과 오르막을 이어간다.

 

10:44

다시 초지가 보인다. 【헬기장】이 있는 【고비덕재】에 들어선다.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하늘은 개이고 있고 햇빛도 다시 나오고 있다. 날씨가 이대로만 계속 된다면 끝까지 가지 못할 것도 없다.

 

고비가 많이 자생한다는 곳으로 능선상의 평탄한 지역을 이르는 "덕"과 합쳐져 고비덕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 고비덕재는 옛 고갯길로 소금을 비롯한 동해의 수산물이 황지로 들어서는

길목이다. 지금은 가곡~통리를 연결하는 신리재를 이용하지만 그 이전에는 왼쪽아래 백산골을

타고 이 고비덕재를 넘었다고 한다. 해서 오른쪽 아래 원통골이란 이름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10:55

헬기장을 가로질러 숲으로 들어서니 『백병산 0.9km』를 알리는 표지판이 왼쪽에 나지막하게 자리하고 있다.

조금 올라가니 로프가 연결되어있고, 길은 나무를 이용하여 계단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길은 백병산 갈림길까지 이어진다.

 

11:11

로프가 끝난다.

 

11:17

로프가 끝나는 지점에서 조금 더 가니 【백병산 갈림길】이 나온다. 천막을 쳐도 될 정도로 넓은 공터다. 숲속에 이렇게 넓은 공터가 있다는 게 의아하다. 백병산을 오르는 걸 포기한다.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되지 않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멀고, 이미 여러 번 쉬면서 시간을 많이 지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후회 된다. 언제 또 백병산에 올 것인지….

 

11:32

점심을 먹고 갈까 하다가 빵과 연양갱, 오이를 먹고 출발한다. 조금 가니 다시 산죽이 이어진다. 키도 훨씬 크다. 산죽은 계속 나타난다. 산죽아래의 땅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산죽이 갈라진 틈이 길이겠거니 하면서 걷는다.

산죽아래 길에는 많은 복병이 숨어있다. 주로 넘어진 나무들이 산죽에 가려 보이지 않는데, 가끔씩 발에 걸려 넘어질뻔하기도 한다. 그래서 속도를 내지 못하게 된다. 더군다나 빗물을 쏟아내는 산죽은 체온을 떨어드리고 있다.

 

12:16

안개가 다시 몰려오면서 비를 뿌린다. 이제까지는 비가 잠시 오더라도 나뭇잎에 걸려 비를 직접적으로 맞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이제는 나무도 힘든 모양인지 비를 그냥 흘려보내고 있다. 쫄딱 비를 맞으면서 전진한다.

 

12:42

오른편으로 【송전철탑 No86】을 지난다.

송전탑을 지나 임도를 따른다. 임도라기 보다는 방화선 같기도 하다. 아니면 송전탑을 세우기 위해 일부러 길을 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마침 비가 오지 않기에 점심을 해결하고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니 아직 배고 고프지 않다며 토산령까지 가서 해결 하자고 한다. 약 한시간 정도 더 가면 된다고..

다시 비가 온다. 이후부터는 시간을 기록하는 게 힘들다. 계속 비가 오는데다가 수첩이 젖어서 펼쳐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의 시간은 석포에서 쉬면서 기억을 되살려 적는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 리본을 발견하고 다시 산죽 속으로 들어간다. 산죽은 끝이 없을 것처럼 길게 이어진다. 이제는 키만큼 산죽이 높이 자라있다. 앞을 보는 것도 힘들 정도다. 그저 발길질을 해서 흙이 밟히면 길이려니 하며 산죽 속을 헤멘다.

오르락 내리락 하며 정신없이 걷는다. 토산령만 기억하면서…

몇 개의 봉우리와 언덕을 지나 안부에 다다른다. 왼편으로 구멍 뚫린 바위가 지나간다. 스쳐본 구멍 속은 아찔한 벼랑이다. 여기가 토산령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비가 계속해서 오는 관계로 무시하고 지나간다.

다시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난 안부에 약간 넓은 공터가 있다. 왼쪽으로는 희미한 등산로가 안개속으로 이어져있다. 여기가 【토산령】이다. 생각했던 것 보다 공간이 좁다. 아마 느릅령이나 애매랑재 정도의 규모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토산령인지 어떤지 확인을 하지 못하고 지나친다. 벌서 두시간을 걸었는데…

약간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1평 정도의 공터에 도달한다.

 

15:20

삼각점이 있는 이곳이 틀림없는 【구랄산】이리라. 리본이 많이 걸려있다.

배낭을 내리고 현우를 기다린다. 현우가 도착한 시간을 보니 나보다 약 20분 정도 벌어졌다.

마침 비가 멎어서 지도를 꺼내 여기가 구랄산 임을 확인하고, 점심을 먹기로 한다.

준비한 버너에 불을 지피고, 코펠에 물을 담고 끓기를 기다렸다가 레토르 식품을 넣어 시간이 되기를 기다린다.

음식이 익기를 기다리는데 체온이 식어서 추워진다. 비옷을 꺼내 입고 버너불에 손을 쪼이니 곧 따뜻해진다.

딱히 앉을 데가 없어서 쪼그리고 허겁지겁 식사를 한다.

 

16:15

커피도 한잔 마시고, 다시 짐을 싸서 출발한다.

면산까지 1시간30분, 면산에서 석개까지 2시간20분. 앞으로 4시간 정도를 걸어야 한다. 석포에서 20:30발 동대구행

기차를 타기위해서는 시간이 촉박하다.

구랄산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산이 면산임을 짐작하고는 서둘러 길을 재촉한다.

내리막을 내려가 안부를 건너 작은 봉우리에 오르니 면산은 아직 저만치 있다.

다시 내리막과 오르막을 반복한다.

 

17:55

봉우리를 세 개나 지나서 네 번째 오른 언덕에 평지 같은 산죽사이에 작은 공터가 나온다. 【면산】임을 알리는

표지가 있다. 많은 리본들이 바람에 날린다. 석개재까지 2시간13분으로 표기되어있다.

 

18:05

사진을 찍고 서둘러 출발한다. 2시간 13분이면 좀 빠른 걸음으로 가면 2시간 안에 도착 하리라. 20:00까지 석개재에 도착하면 석포에서

 

20:30발 기차를 탈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한다.

내려오면서 핸드폰을 다시 켜서 가족에게 전화를 한다. 거의 다 내려왔다고 …

완만한 내리막일 거라고 짐작을 하고 현우는 뛰어가자고 한다. 그러나 우린 지금 지쳐있기 때문에 뛰어가는 것은 위험하고, 특히 무릎에 부상을 입을 염려가 있으므로 그냥 걸어가자고 한다.

이제 다 온 것 같아 걸음이 빨라진다.

그런데 다시 산죽이 나타나고 오르막이 나타난다. 이러면 곤란한데…

 

19:30

잡목으로 우거진 작은 봉우리에 들어서면서 랜턴을 꺼낸다. 사방이 곧 어두워질 기세다. 벌써 멀리서 불빛이 깜박인다.

랜턴을 켜고 무념의 상태로 산행을 계속한다. 길이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땅만 보며 걷는다. 가금씩 리본이 있는지도 확인을 하며 걷는데 다시 산죽이 이어진다. 더 이상 랜턴으로 땅을 비출 수가 없다.

최악의 상황인 것 같다. 아까 오면서 더워서 비옷도 벗었는데… 어쩔 도리가 없이 산죽 속으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긴다. 다행히도 다른 구간보다 리본이 자주 달려있어서 안심이 된다.

산죽이 끝나 나서 잠시 후 다시 약간의 오르막이 시작되고 멀리서 불빛이 왔다 갔다 한다. 마치 석개재가 공중에 있는 듯하다.

급경사 내리막. 이제 산당만 찾으면 석개재다. 그런데, 산당이 보이지 않는다. 시멘트 블록도 보이지 않는다. 급경사만 있을 뿐이다.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오른쪽으로 불빛에 반사된 어떤 게 보인다. 마치 자동차극장의 은막 같아 보인다. 이 산속에 웬 광고판넬을 이용한 차량이 있을까?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니 그건 은막도 광고판도 아닌 녹색의 도로표지판이었다. 랜턴 불빛에 반사되어 이상하게 보였다. 이제 다 왔다.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살펴보니 철망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여기가 【석개재】다.

2차 구간의 마지막 지점이다. 여기서 산행은 끝난다.

 

20:30

조심스럽게 내려가 철망 왼쪽으로 돌아 나오니 포장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도로가 나오고, 랜턴으로 사방을

비추니 곰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며 길 양편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다.

차들이 가끔씩 지나가는 이곳은 어둠의 천지라고 할 만하다. 멀리 가곡자연휴양림으로 짐작되는 곳에서 불빛이

흔들린다.

택시를 보내줄 수 있냐고 전화를 하니 1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이학형 011-538-6272)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어둠 속에서 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나서 다시 비옷을 꺼내 입는다. 바람이 아주 세게

부는데다가 옷이 젖어 추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20:45

택시가 도착한다.

석포의 식사 가능한 곳으로 요청하고는 영주까지 갈 수 있겠는지 물어보니 21:00에 삼척행으로 예약이 되어 있다고 한다. 더 늦게 내려왔으면 밤새 석개재에서 떨며 지냈어야 할 지 모르는 상황이 될 뻔했다. 태백에 있는 후배더러

갈 수 있는지 알아봐도 되겠느냐고 한다. 알아봐 주면 우리는 고맙다고 한다.

 

21:00

석포 시내의 한 식당에 도착 한다. 우리가 짐을 내리는 동안 기사분은 전화를 하신다.

약속을 했다면서 기사분은 우리에게 잘 가라고 한다. 원래 석개에서 석포까지 13,000원을 받는데,

식당에다가 택시 예약까지 해주셔서 담뱃값을 더 드렸다. 기사분은 나이가 참 많아 보였다.

 

21:35

식당에서는 밥이 없다고 한다. 이런 황당할 데가…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싸온 레토르 식품이 있으니 그걸

데워 달라고 하며 삼겹살을 구워서 저녁을 먹는다. 저녁식사를 마칠 즈음 택시가 도착한다.

영주까지는 1시간30분 정도 소요 된다고 한다. 그런데 택시 운전이 보통이 아니다. 조금 전에 먹은 식사가 체할 것 같다.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 현우는 벌써 잠든 것 같다.

 

23:10

느낌이 이상해서 눈을 뜨니 벌써 영주 시내다.

영주 역전에 내린다. 현우는 물먹은 등산화를 더 이상 신지 못하겠다며 슬리퍼를 사러 다녀오겠다고 한다.

배낭을 다시 정리한다. 코펠과 버너를 내 배낭에 옮겨 담고…옷을 갈아입고, 부전행 00:56기차 승차권을

사서 대합실에 앉아 열차를 기다린다.

 

2004.08.15(일)

00:56

열차가 도착하고, 승차한다. 앞자리의 의자를 돌려 두 다리를 쭉 뻗어 잠을 청한다.

힘든 하루였다.

 

금회 총 산행시간 = 12:07(식사+휴식 포함시 14:40)

정맥구간 = 11:57(식사+휴식 포함시 14:30)

금회 총 산행 거리 = 약 19.5km

정맥구간거리 = 18.8km/25.3km/410.5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