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1구간(지리산 천왕봉 → 성삼재) : 아련히 떠오르는 기억 속의 푸근했던 산길
[산행 일시] 2012.05.03(목) 03:57~17:24(13시간 27분)
(산행시간 : 9시간 10분 / 휴식시간 : 1시간 39분 / 헛걸음시간 : 0시간 0분 // 대간 접근시간 : 2시간 38분)
[날 씨] 맑음
[산행 인원] 성봉현, 새마포산악회 25명
[대간 접근] 잠실역 → 중산리 : 새마포산악회 버스
[대간 이탈] 성삼재 → 한남역 : 새마포산악회 버스
[산행 시간] 중산리탐방지원센터(03:57) → 법계사(05:24) → 지리산 천왕봉(06:33~06:35) → 장터목대피소(07:12~07:32)
→ 세석갈림길(세석대피소, 08:47) → 선비샘(10:15) → 벽소령대피소(10:57~11:40) → 연하천대피소(12:52~13:00)
→ 화개재(14:34) → 임걸령샘(15:43~15:47) → 노고단대피소(16:58) → 성삼재(17:24)
[산행 지도] 1:50,000 산청, 운봉(국토지리정보원 1:25,000 온맵 편집)
월간 '사람과 山' 1대간 9정맥 종주지도(2009년 20주년 특별부록) 1구간(중산리~여원재)
[산행 기록]
지난 3월 18일 낙동정맥 18구간 산행을 마지막으로 9정맥이 끝났습니다. 남들은 백두대간을 시작한 후 대간이 끝나면 정맥 산행을 한다고 하는데 저는 거꾸로 하는 것 같습니다. 순서가 어이되었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이제 큰 산줄기인 백두대간을 찾아 나서려 합니다.
산행 전 지도는 그리고 산행 방식, 진행 방향 등등 머릿속으로만 그려보던 것들을 하나둘씩 정리합니다. 지도는 정맥 산행 때처럼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한 1:50000 지형도를 사용하려 했지만 구입비와 더불어 지형도를 스캔하고 짜집기를 한 다음 마룻금을 그리는 작업이 만만치 않아 시판 중인 지도를 구입할까 생각하였습니다. 정맥길이 차도와 비유하여 일반 국도라면 대간은 고속 도로라는 우스개 소리처럼 많은 산꾼들이 걸어가고 있기에 내린 결정을 따라 영진문화사에서 출판된 '영진5만지도(2011년 인쇄판)'를 구입하였는데 다행히 백두대간이 표시되어 있어 하나의 일거리가 줄어든 것입니다.
이제 지도도 준비가 끝났으니 남은 것은 배낭을 꾸리고 중산리로 향하는 길인데 이것이 발목을 잡습니다. 근 한 달여를 인터넷으로 찾아보다 오케이마운틴에 올라온 산행 일정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서울의 새마포산악회에서 평일인 목요일 산행을 한다고 하는데 구간도 생각했던 것과 같아 서슴없이 예약하고 입금을 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정리되고 나니 아직 길을 나서지도 않았지만 마음은 지리산을 걷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76년 여름 방학 때 친구와 둘이서 약 일주일간 지리산 주능선을 걸었던 것을 시작으로 그후 지리산 사랑은 시작되었고 군대 제대 후 10년 연속 지리산 종주를 계획하였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9년 차에서 끝나버려 아쉬웠던 지리산입니다. 물론 그 이후에 다시 지리산을 찾아 걷기는 했었지요. 어느 산인들 안 좋을 수가 없겠지만 남들이 설악산과 지리산 중 어느 산을 좋아하냐고 물어본다면 서슴없이 지리산이라고 대답하던 시절, 한없이 포근한 엄마의 숨결같은 지리산의 능선은 그렇게 저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지리산을 백두대간이라는 새로운 명제로 다가서려 합니다. 지난 산행에서처럼 화엄사에서 천왕봉으로 진행하던 일상적인 방향이 아니라 천왕봉에서 성삼재로 향하는 역주행이라는 것이 다르지만요.
5월 2일, 저녁 11시가 조금 안된 시각에 도착한 잠실역 너구리상 앞에는 몇 분의 산꾼들이 보이는데 아마도 같은 동행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11시 20분 경에 도착한 서울 새마포산악회의 버스에 승차하니 이제 시작되었다는 생각에 잠은 쉬이 오지를 않고 그렇게 멀뚱멀뚱하게 차창 밖을 보다가 잠시 졸았는지 눈을 떠보니 한 시간 정도 잠을 잤나봅니다. 이후 순간순간 잠깐씩 졸다깨다를 반복하다가 어느새 중산리에 도착하였는데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전 3시 42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처음이라 아는 사람도 없는 산악회를 따라 나섰으니 아직은 모든 것이 서먹서먹합니다.
버스에서 내려 무리를 지어 진행하는 회원님들의 뒤꽁무니를 쫓아가지만 홀로 산행하다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산행하려니 아직 적응이 안되네요. 간단히 산행 준비를 마치고 어디가 어디인지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무리를 따르다 본의 아니게 잠시 짧은 헛걸음을 하였답니다. 하여튼 원점으로 돌아와 중산리탐방지원센터 앞의 탐방객 계수기가 설치된 출입구를 지남으로써 백두대간의 첫걸음을 시작합니다(03:57).
아직 비구름이 남아 있는지 습도가 높은 중산리의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법계교를 지나자마자 만나는 이정표, 그 이정표에는 '해발 637m, 중산리야영장, 천왕봉 5.4km'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좌측길로 올라가는 대열을 따라 1915m 높이의 천왕봉을 향해 올라가는데 어둠 속에서 돌계단을 오르다가 뒷편을 보니 여러 개의 랜턴 불빛이 보여 중간 그룹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산행합니다(하지만 이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벽소령대피소에서 알게 됩니다).
앞에서 산행하는 분의 등산용 스틱을 피해 추월할 생각없이 천천히 뒤따르다 보니 어느새 망바위를 지나고(04:57) 서서히 시민박명이 시작되고 있지만 하늘은 아직도 어두운 구름을 걷어주질 않고 있습니다. 능선을 따라 걸으면서 좌측을 바라보니 주천면 거림마을 방향의 능선을 감싸고 있는 구름이 솜사탕처럼 부드럽게 보여 발길을 잠시 멈춘 채 똑딱이 디카에 담아 봅니다.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을 디카의 조그만 반도체 소자에 담기에는 아직 저의 내공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다시금 길을 이어갑니다.
능선 상의 헬기장을 지나면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법계사의 아침 불빛이 보이고 이제 주위는 랜턴의 도움이 없어도 될 만큼 밝아졌지만 하늘은 제대로 된 일출을 기대하지 마라 합니다. 로타리대피소를 지나 법계사 입구에 도착하니 전에 보지 못했던 아니 기억이 지워진 것인지 낯설은 '智異山法界寺' 일주문이 산객을 맞이하여 줍니다(05:24).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법계사, 이곳 이정표(로타리대피소)에는 해발 1,335m 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갈 길이 멀기에 물 한 모금 축이고 다시 앞서간 일행들을 따라 거친 오름길을 걸어갑니다. 뒷편으로 무언가 느껴지는 기운에 뒤돌아보니 진작 일출이 구름 속에서 시작되었는지 옅은 구름 사이로 노랑색 태양이 보입니다. 백두대간의 첫 시작을 천왕봉의 일출과 함께 하기에는 출발 시간이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에 아쉬움이 자리합니다. 개선문을 지나 도착한 천왕샘에는 '남감발원지(천왕샘)'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아마도 중산리로 내려온 것이 한참 되었나봅니다(06:33).
남강 발원지(천왕샘)
이곳 천왕샘은 서부 경남 지역의 식수원인 남강댐의 발원지입니다. 이곳에서 솟구친 물은 덕천강을 따라 흘러, 남덕유산 참샘을 발원으로 하는 경로강과 남강댐에서 합류라여 남강을 이루어 낙동강으로 흐르게 됩니다. 생명의 원천인 물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되새기며 이 맑고 깨끗한 물이 길이길이 더럽혀지지 않도로 다함께 지켜갑시다.
2005. 10 / 한국수자원공사 남강댐관리단,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사무소
가파른 치받이의 돌길은 백두산에서 흘러내린 산줄기가 끝나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마침내 끝이 나는데 드디어 그곳에 섰습니다(06:35). 밝은 햇빛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구름만 조금 있을 것이라는 바램과 달리 천왕봉을 감싸고 있는 짙은 구름은 거센 바람과 어깨동무하고 있습니다. '智異山 天王峰 /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라고 음각된 듬직한 정상석을 제대로 보고 싶었지만 이게 다 내 복(福)이려니 생각하고 맨 처음 지리산을 찾았을 때 보았던 먼 지평선의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던 또렷한 일출의 광경을 머릿속으로 그려봅니다. 진부령을 향한 시작부터 이러한 날씨가 대간길의 액땜일련지 아니면 힘든 여정의 전주곡일련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실질적인 백두대간의 첫 걸음, 이제 그 발길을 장터목대피소로 향합니다.
지리산 천왕봉에는 국가기준점성과발급시스템 홈페이지(http://nbns.ngii.go.kr)에서 기준점을 검색하면 '운봉 11' 삼각점이 있다고 합니다. '실천면의 중산리에서 북방향으로 8.0km 지점의 법계사란 절이 있고 이 절에서 1.5km 지점 북방향으로 최고봉 헬기장 중앙에 매설'이라고 서술하고 있는데 실천면은 시천면의 오기인 듯하고 약도를 보면 최고봉은 지리산 천왕봉을 지칭하는 것으로 저는 확인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여 다른 분의 사진을 검색해 보니 바위들 사이에 표주석만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언제부터인지 지리산에도 등산로 정비 바람이 불어 자연스럽던 등산로가 인위적으로 조성되더만 이제는 발품을 팔 일이 없어진 듯합니다.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천왕봉을 내려가면 커다란 바위와 바위 사이에 돌덩어리가 끼인 듯한 통천문을 만나고 조금 더 내려가면 자유당 시절 개인의 비리를 숨기기 위한 산불로 인하여 죽은 나무들이 있는 해발 1808m의 제석봉을 지납니다. 기억 속에는 이곳 제석봉의 고사목이 제법 많았던 것 같은데 오늘 보는 썰렁한 느낌은 낯선 이국땅에 온 듯합니다.
나일론 줄로 탐방로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 길을 따라 고도를 조금씩 떨어뜨리다 보니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 장터목대피소가 지척입니다. 계단을 내려가 도착한 장터목대피소에는 이미 많은 인파로 북적이고 있습니다(07:12). 새벽부터 비알의 오름길을 올라 허기진 속을 달래기 위해 취사장으로 들어가 준비해 간 김밥으로 요기를 하고서 세석으로 가기 위해 나섭니다(07:32). 주위를 감싸던 운무는 바람에 실려갔는지 어느새 밝은 햇빛이 장터목대피소를 밝히고 있습니다. 좌측 중산리 방향을 내려다보니 칼바위골로 이어지는 계곡 능선을 감싸고 있는 하얀 구름이 한 폭의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연하봉 우측으로 지리산 주능선이 흘러가면서 만드는 대간길, 시야에 보이는 정점에는 제2봉인 반야봉이 옅은 구름에 가려 있습니다. 수줍게 고개 숙인 얼레지와 안개 물방울을 매달고 있는 현호색의 아름다움에 가던 길을 잠시 쉬면서 사진을 찍어봅니다. 나무 계단으로 다듬어진 오름길은 바위 봉우리인 연하봉을 만나는데(07:49) 홀연히 어디선가 나타난 운무에 잠깐이나마 모습이 사라집니다. 연하봉을 넘어서니 봄이 오는 색깔이 아니라 가을인 듯한 갈색 능선 상의 안부에 있는 헬기장을 지나는 산객이 보이고, 앞서간 그 산객의 발자취를 따라 1697봉을 넘어서서 도착한 촛대봉의 이정표 앞에서 좌측의 촛대봉으로 올라봅니다(08:36).
혹시나 천왕봉이 보일까 뒤돌아서서 살펴보지만 역시나 천왕봉은 아직도 구름 이불을 덮어쓴 채 잠자고 있네요. 백두대간 산행을 신고하였던 천왕봉을 멀리서라도 보고 싶은 산꾼의 바램과 달리 지리산 산신령님은 잠만 자고 있나봅니다. 아쉬움을 접고 가야 할 방향의 세석평전에 자리잡은 세석대피소를 향해 내리막길을 내려갑니다. 작게만 보이던 세석대피소가 크게 다가설 즈음 '세석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를 만나지만 그냥 대간길을 따라 직진합니다(08:47).
세석대피소에서 영신봉으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에 세워진 '세석자연관찰로' 표시목을 지나 아직도 꽃망울이 보이질 않는 철쭉나무 군락지 사이로 이어지는 오름길의 끝에 있는 영신봉에 도착합니다(08:58). 2010년 12월 19일, 김해 매리2교에서 출발하였던 낙남정맥의 끝지점이자 시발점인 영신봉에 다시 오른 것입니다. 이제는 정맥길이 아닌 대간길의 여정으로 만난 영신봉, 낙남정맥을 마무리하면서 잠시 내려놓았던 제 자신과의 약속을 이제 주워 담아 진부령으로 향합니다.
지난 날 걸었을 때에는 푸근하고 부드러웠었다는 기억이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변했다고 느껴집니다. 아니 무언가 어색하면서도 낯이 익은 산길은 잠시나마 지난 기억 속으로 안내하지만 이내 현실로 돌아옵니다. 계단길과 죽어버린 고목들을 이용하여 샛길을 막아놓은 등산로, 아울러 곳곳에 잘 설치된 이정표는 남은 거리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산죽 사이로 내려가는 산길은 돌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고, 지리산 제일봉 '천왕봉'을 찾아보라는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뒤돌아보지만 아직도 천왕봉은 구름 속으로 숨어 얼굴을 보여주질 않습니다(09:48). 홀로 가는 산길에 앞서가는 산객이 보이는데 커다란 배낭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잠시 말을 붙여보니 35살처럼 보이지 않는 동안의 총각인데 무지원 단독 연속 종주로 백두대간을 걷고 있는 중이라고 소개합니다. 부러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짧은 거리나마 같이 걷다가 갈 길이 멀기에 무사히 완주하기를 기원하면서 헤어집니다.
한때 식사 등을 하던 사람들로 분주하였던 선비샘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10:15) 덕평봉을 올라 좌향으로 내려갑니다. 내리막길이 끝나면서 1950년대의 빨치산 토벌을 위한 군 작전도로를 만나지만 우측의 음정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폐쇄된 듯합니다(10:40). 위태롭게 보이는 우측의 절개지 바위 사면을 보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벽소령대피소가 나옵니다(10:57).
새벽부터 된비알의 오름길을 걸어서인지 장터목대피소에서 껄끄러웠던 아침 때문에 일찍 허기가 져 이른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합니다. 대피소에서 70m 떨어져 있다고 하지만 실거리는 족히 이백여 미터는 됨직한 샘에서 물을 받아와 라면을 먹기 위해 물을 끓입니다. 기압이 낮아 쉽게 끓지않는 물을 보고 있는데 새마포산악회의 사무국장(?)님 일행이 도착하네요. 몇 마디 말을 주고받다 보니 제가 대열의 중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후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곧 따라갈 테니 먼저 가시라 하였지만 마음이 편치 못해 점심도 대충 먹고 잔반을 정리한 후 후미팀을 쫓아갑니다(11:40).
얼마나 갔을까, 형제봉 오름길에 세워진 이정표[↑12.6km 노고단 ↓벽소령 1.5km/…/…]가 있는 곳에서 후미팀을 만나(12:05) 잠시 숨도 고를 겸 뒤돌아보니 그토록 보고 싶던 천왕봉이 방긋 웃음을 보이고 있어 디카에 담아 봅니다. 이제 혼자가 아닌 후미팀 그룹과 합류하여 걷는 산길은 1484봉인 삼각고지 전 능선에서 5분여 휴식을 취한 후 정상부를 넘어 음정마을 갈림길을 지나면서 완만한 계단길을 올라가니 연하천대피소가 나옵니다(12:52). 이른 무더위에 바닥을 보이는 수통에 시원한 물로 다시 채운 후 잠시 쉬었다가 노고단을 향해 걸어갑니다(13:00).
노고단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에는 노고단까지 10.5km라고 합니다. 산죽과 돌들이 만드는 등산로를 따라 명선봉을 오르고 이어 고만고만한 구릉을 더 넘어가는데 지난날 걸었던 기억의 흙길이 아닌 돌밭으로 바뀐 지리산 주능선 등산로는 이제 낯설은 타인처럼 느껴집니다. 날도 무덥고 지쳐가는 것인지 다들 별말이 없는 후미팀의 끄트머리에서 저 역시 묵묵히 앞사람의 뒤꿈치만 보면서 걸어가고 있답니다.
지형도 상 운봉무덤이 어디인지 모르고 지나치다가 토끼봉에 오르기 전 오 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힘을 내어 토끼봉에 올라섭니다(14:09). 역시나 변한 것이 없는 토끼봉의 헬기장에는 뜨거운 햇볕만 가득합니다. 천왕봉에서부터 걸은 거리가 18km이고 노고단까지 7.5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보면서 성삼재 도착 시간을 속으로 계산해 봅니다. 지금 속도라면 성삼재에는 예정 시간보다 조금 늦을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지겹던 돌길이 끝나고 나무 데크로 만든 등산로는 화개재로 이어지는데(14:34) 처음 지리산을 찾았을 때 텐트를 치고 야영했던 기억이 새삼 생각납니다. 우측 뱀사골계곡으로 이어지는 능선 상에 자리잡고 있었던 뱀사골산장은 이제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듯 합니다.
이제 앞에 보이는 저 날등을 넘어서면 마의 나무계단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야트막한 구릉을 넘어 만나는 나무 계단길(14:40), 첫 계단의 우측편에는 누군가 '548'이라고 표기하였는데 아마도 계단 수를 말하는 듯합니다. 앞서 오르는 일행들을 따라 말없이 속으로 계단 갯수만을 헤아리면서 올라갑니다. 하나, 둘, 셋, …, 백, 백하나, …, 오백육십, 오백육십일, 오백육십이, 드디어 마지막 계단까지 올라섰습니다(14:52). 중간에 수를 헤아리다 보니 헛갈린 적이 있지만 일단 저는 562개의 발판을 밟고 올라섰다고 그냥 생각합니다, 물론 틀릴 수도 있지만요.
그렇게 하나 둘씩 세면서 올라오니 힘들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답니다. 그 여세를 몰아 조금 더 올라서니 넓은 바위 위에 삼각뿔의 황동 조형물이 있는 삼도봉입니다(14:59). 경상남도와 전라남∙북도가 어께를 맞대고 있는 삼도의 경계점 봉우리로 주변 조망이 시원스런 곳입니다. 앞쪽으로 보이는 반야봉을 향해 내려가는 길은 능선의 좌사면으로 우회하여 노루목삼거리로 올라서게 되고(15:16) 백두대간을 8회차 종주하고 계시는 '보물섬(남해) 정병훈∙하문자 부부' 선배님을 비롯한 새마포산악회 회원님들과 단체 사진을 찍습니다. 예전 같으면 반야봉을 다녀오겠지만 오늘은 시간에 쫒기는 관계로 그냥 노고단을 향해 연속되는 돌길을 내려가다가 이정표를 지나고 더 걸어가니 임걸령샘이 나옵니다(15:43).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수통을 새로 채운 후 10분을 더 걸어 만나는 '피아골삼거리'도 지나니 돼지령이 반겨줍니다(16:06). 뒤돌아보면 반야봉이 즐겁게 가라고 배웅해주고 앞에서는 노고단이 어서 오라 하여서인지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노고단 2.0∙km' 이정표를 지나면 500m 간격으로 이정표가 반복되고 화사한 분홍색의 진달래가 눈요기를 해 주는 등 노고단을 향한 마지막 오름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돌길의 오름이 끝나면서 등산객을 통제하기 위한 철문이 있는 노고단고개에 이릅니다(16:49). 마룻금이 지나가는 좌측의 노고단 돌탑을 눈으로 바라보고 나서 뒤돌아 지나온 능선을 다시 한 번 살펴봅니다. 다음에는 백두대간이 아니라 부담없이 즐기기 위한 산행으로 다시 올 것을 마음 속으로 다져봅니다. 노고단대피소를 향한 내리막길을 앞서 후다닥 내려간 일행을 따라가지만 돌길의 내리막길이 부담스런 발걸음은 조금씩 멀어집니다. 하지만 그닥 먼거리가 아니기에 이내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하여 잠시 숨을 고릅니다(16:58).
지금부터는 도로를 따라 성삼재까지 걸어서 내려가는 마지막 소구간의 시작입니다. 돌계단길로 내려가 도로에 다시 내려선 후 다리를 건너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그저 아무 생각없이 걸어갑니다. 마룻금은 화엄사에서 올라오다 만나는 코재를 거쳐 종석대로 이어지는 산줄기로 가야 하지만 그 곳은 출입 금지 구역으로 통제된 곳입니다. 하여 하염없이 지겨운 도로를 따라 걷고 또 걸어 내려갑니다. 하지만 모든 길에는 목적지의 끝이 있듯이 성삼재탐방지원센터가 나오고 탐방객 계수기를 지나 도착한 성삼재주차장, 드디어 백두대간의 첫 구간이 끝나는 순간입니다(17:24). 9정맥에 이어 새로 시작한 백두대간, 이제 그 첫걸음을 마무리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멋모르고 찾았다가 그 매력에 흠뻑 빠져 한동안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지리산, 화창한 날씨도 있었지만 주능선을 걸으면서 3개의 태풍을 만나기도 하는 등 추억 속의 지리산 산길은 푸근하였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오늘은 돌길로 바뀌었다고 느껴지는 데다가 주로 신던 중등산화를 수선보내어 일반 등산화로 산행하다 보니 힘들었던 산행이었습니다. 그래도 마음만큼은 지리산을 산행하였다는 생각에 한없이 푸근했던 하루였답니다. 시암재로 내려가 구례를 거쳐 서울로 달려가는 버스 안에서 다음 2구간을 구상합니다.
[교통 정보] ※ 대중교통별 운행 시간이 수시로 변경될 수 있으므로 해당 교통편 홈페이지 또는 전화로 재확인을 요함
서울(남부터미널) → 진주 시외버스 운행 시간(서울남부터미널 고객센터 ☎ 02-521-8550)
[3시간 40분 소요] 06:00 06:30 07:00~20:00 20:30 21:00 [심야우등 22:10 22:40(주말) 23:00 23:10(주말) 24:00]
서울남부터미널 홈페이지(https://www.nambuterminal.co.kr) 참조
서울(경부선) → 진주 고속버스 운행 시간(전국고속버스운송조합 ARS ☎ 1588-6900)
[3시간 50분 소요] 06:00 06:20 06:40~20:00 20:30 21:00 [심야우등 22:10 23:10 24:10]
전국고속버스운송조합 홈페이지(http://www.kobus.co.kr) 참조
진주 → 중산리 시외버스 운행 시간(진주시외버스터미널 ☎ 055-741-6039 / 부산교통 진주영업소 ☎ 055-741-3637)
[1시간 15분 소요] 06:10 07:05 08:00 09:05 10:00 11:00 12:05 13:00 14:00 15:00 16:05 17:05 18:00 19:05 20:00 21:10
진주시청 홈페이지(http://www.jinju.go.kr) '여행정보 → 교통정보 → 시외버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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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재(노고단) → 구례 군내버스 운행 시간(구례공영터미널 ☎ 061-781-2730, 2733)
04:00 06:30 09:20 11:20 12:40 14:40 16:40 18:20 (동절기인 11월~익년 4월 중순까지는 운행 중지)
[구례 → 노고단 군내버스 운행 시간 : 03:30 06:00 08:20 10:20 11:40 13:40 15:40 17:40]
구례군청 홈페이지(http://www.gurye.go.kr) '분야별정보 → 교통 → 공영버스터미널 → 농어촌 및 시외버스 시간표' 참조
구례 → 서울(남부터미널) 시외버스 운행 시간
[3시간 10분 소요] 06:40 08:15 09:45 11:15 12:45 14:15 15:45 17:45 19:45
[산행 사진]
▼ 중산리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들머리
▼ 천왕봉의 정상석
▼ 장터목대피소
▼ 연하봉
▼ 촛대봉에서 보는 세석대피소와 영신봉 그리고 멀리 보이는 반야봉
▼ 영신봉에서 보는 낙남정맥(우측 중앙에서 좌측 삼신봉으로 흐르는 능선)
▼ 영신봉
▼ 영신봉에서 본 지리산 천왕봉
▼ 영신봉에서 본 반야봉
▼ 벽소령대피소
▼ 연하천대피소
▼ 삼도봉 방향에서 보는 화개재와 토끼봉
▼ 삼도봉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의 시작
▼ 삼도봉에서 보는 반야봉
▼ 돼지령에서 보는 노고단과 우측 야트막한 안부의 노고단고개
▼ 노고단고개에서 본 노고단
▼ 노고단대피소와 멀리 보이는 종석대
▼ 성삼재주차장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종석대
▼ 성삼재탐방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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