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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0 월간山] 등산표지리본 - 과유불급, 천덕꾸러기 신세 된 등산리본

월간 산 홈페이지(http://san.chosun.com)에 2015년 6월 10일자로 연재된 기사이다.

산길을 가면서 만나는 많은 표지기들에 대한 생각을 한번쯤 해보아야 할 듯 싶다.

마지막 기사에 나오지만 특히나 안내산악회의 후미를 위한 땅바닥에 표시한 종이 표지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원문 출처]  http://san.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6/02/2015060202125.html

 

 

 

 

[초점ㅣ등산표지리본] '과유불급', 천덕꾸러기 신세 된 등산리본

  • 글·손수원 기자
  • 사진·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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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잘 나고 이정표 잘 되어 있는 곳에도 등산리본 천지
    대부분은 산악회 홍보, 자기과시 목적의 불필요한 것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취미이자 레포츠는 단연 '등산'이다. 둘레길, 마실길, 자락길 등 갖가지 이름으로 만들어진 걷기 길도 즐비하다. 안내산악회를 비롯해 등산동호회, 걷기동호회 등도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이렇게 수많은 이들이 산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그에 따른 부작용도 늘어난다. 쓰레기 투기는 물론이요, 불법 취사행위, 흡연, 식물 채취 등 그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좋은 뜻으로 시작했으나 그것이 너무 과해 천덕꾸러기가 된 사례도 있다.

    산악회나 개인이 설치하는 리본표식은 등산로임을 알려 주고 나아갈 방향을 알려줘 산행길잡이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항상 과한 것이 문제다. 요즘 사람들이 자주 찾는 산에 가보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큰길에도 리본표식이 달려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쓸데없이' 많이 말이다.

    ▲ 어불성설(語不成說). '아니온 듯 다녀가소서'라면서 필요치 않은 등산 표지리본을 달아 놓은 것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사랑해요! 자연을'이란 문구도 눈에 띈다.

     

     

    등산리본은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산행문화

    등산리본은 다른 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산행 문화다. 우리나라에서 등산리본이 등장한 것은 1970년대부터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자연보호와 같은 캠페인을 홍보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또한 등산로 안내시설이 들어서지 않은 곳에 설치함으로써 등산객에게 길을 알려 주는 역할을 했다. 산악회 중심의 단체 등산을 하다 보니 뒤에 오는 이들을 위해 리본을 묶은 것이 관례처럼 굳어진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뒷사람을 위한 선행자들의 배려였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현재 유명 산을 가보면 사람들이 모이는 곳엔 어김없이 성황당 주변의 당산나무처럼 리본표식이 달려 있어 흉물스럽게까지 느껴진다. 길을 잃을 염려도 없고 표식을 달 이유도 없는 지점에 이런 리본들이 달려 있는 것이다.

    리본표식의 내용도 별것이 없다. 그저 '××산악회', '김아무개' 등의 이름만 덩그러니 쓰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백두대간 종주, 지맥 종주' 등 자신들의 목표를 적어놓은 것도 있다. 이같은 똑같은 표식을 여러 개 묶어놓는 경우도 흔하다. 이쯤 되면 선전을 위해 뿌리는 전단지와 다를 바가 없다. 더구나 썩지 않는 나일론 소재 등으로 만든 리본을 달거나 리본을 너무 세게 묶어 나뭇가지에 홈이 파이고 심지어는 아예 못을 박거나 철사 등으로 리본을 단단하게 고정해 나무의 생장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등산리본에 대해 사람들의 의견은 양쪽으로 갈린다. 우선 등산리본 달기에 찬성하는 쪽은 홀로 산행을 하거나, 길이 희미해진 곳, 이정표가 없는 구간에서는 리본표식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초보 등산객의 경우, 기본적인 지도조차 휴대하지 않고 스마트폰만 믿고 산행에 나섰다가 인터넷이 불통되면 지도를 볼 수 없게 되므로 최후의 수단은 앞선 사람들이 달아둔 리본을 따르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겨울철 눈이 갑자기 내려 등산로가 없어지고 방향을 알 수 없게 되었을 때, 이 리본을 보고 길을 찾아 하산할 수 있었다는 등의 사례가 많다.

    리본 달기에 반대하는 경우는 역시 자연훼손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요즘 리본표식들이 나일론이나 타프론, 종이에 비닐 코팅한 것 등 썩지 않는 소개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헝겊이나 종이 등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표식을 더 많이 사용하지만 썩지 않는 소재의 리본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등산로 안내가 잘 되어 있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산악회 홍보나 개인적인 흔적을 남기기 위해 리본 표식을 다는 것은 '공해'라는 의견이다.

    이들은 무분별한 표식 달기에 대해 1980년대 미국에서 시작한 '흔적 남기지 않기 운동(LNT, Leave No Trace)'을 언급한다. 흔적 남기지 않기 운동 중 첫 번째 지침인 '미리 충분히 준비하고 계획해야 한다'는 내용 중에는 '케언(cairn) 같은 길 표시(道標) 쌓기나 나일론 소재의 표식기 설치, 칼로 나무에 표시를 새기거나 페인트 등으로 쓰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산행에 나서기 전 충분히 코스를 숙지하고 표식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는 뜻이다. 만약 리본표식을 단다고 하더라도 나일론 등의 썩지 않는 소재는 사용하지 말라는 뜻이다.

    양쪽의 의견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적재적소에 올바른 방법으로 설치한 산행 리본표식은 유용하며 반드시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소재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나일론이나 비닐코팅 등의 소재로 리본표식을 만들 경우, 대략 3만 원 선이면 100장 정도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자연 분해되는 친환경 소재로 제작할 경우에는 원가가 높아져 가격이 비싸질뿐더러 제조업체 쪽에서도 잘 팔리지 않아 굳이 만들지 않는 실정이다.

    등산리본을 매다는 행위를 법적으로 단속할 만한 법적 근거는 있다. 국립공원지역에서는 '자연공원법 제27조의 금지행위 규정'에 따라 등산리본 등을 단속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법적인 근거일 뿐 실제로는 단속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처벌규정도 없다.

     

    ▲ 평소 종이지도를 들고 산행하면서 길 찾는 훈련을 해야 등산리본에 의지하지 않는다.

     

     

    "산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말라"

    한 원로 산악인은 "산은 아니 왔다 간 것처럼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인데, 요즘 등산객들은 서로 나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그것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마치 어린애들 같다"고 말했다.

    어린이산악회를 운영하는 김종오 대장 또한 "요즘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산엔 길이 잘 나있고 이정표도 잘 되어 있어 등산리본을 달 이유가 없다"며 "어떤 홍보의 목적을 가지고 등산리본을 달고자 한다면 나무 대신 각자의 배낭에 매다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한 등산학교 강사는 "산에 좀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지도를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기본적으로 개념도 읽는 법을 익히고 종이지도를 꼭 챙기는 등 등산리본에 의지하지 않고 산에 다니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혹 잘못 매달린 등산리본 때문에 오히려 조난을 당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리본에 의지해 길을 찾는 행위는 금물이라는 것이다.

    요즘은 스마트폰 등산 어플리케이션이 잘 나와 있다. 산에서도 산행지도를 볼 수 있고 자신의 위치도 표시된다. 길을 잃을까 걱정하기보다는, 또 자신을 드러내고 홍보하려는 목적보다는 산을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진정한 '산 멋쟁이'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어떤 행사를 위해 꼭 방향을 알려야 한다면 사전에 코스를 충분히 설명한 후, 종이 이정표를 땅에 놓고 돌을 고여 사용하되 대열 마지막에 오는 사람을 지정해 사용한 종이표지를 주워 오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