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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山] 국토지리정보원 문제 많다 - "나라의 지도를 함부로 만들지 마라"

월간山 홈페이지(http://san.chosun.com)  '화재&인물' 코너에 실린 게시글입니다(기사 입력일 2013.04.02).

[원문 출처]  http://san.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3/29/2013032901358.html

 

 

[초점 | 국토지리정보원 문제 많다] "나라의 지도를 함부로 만들지 마라"
글·사진 신준범 기자

 

산이름 고시 과정 없이 기재해, 도자각 18년째 재측정 안 해

 

산 좀 다닌 사람이라면 '국토지리정보원'이란 이름이 익숙하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한 지형도로 산에 다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토지리정보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등산마니아들이 늘고 있다.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에는 모두 도북, 진북, 자북을 표시하고 있다. 독도에 참고하도록 도자각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도자각을 7°30´이라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도자각은 8°가 맞다. 코오롱등산학교와 한국등산학교에서 독도법을 20년 이상 강의한 박승기 강사와 GPS 강사인 남정권씨는 공통적으로 국토지리정보원이 1996년 도자각 자료를 2013년인 지금까지 쓰고 있다고 말한다. 도자각은 고정된 값이 아니라 계속 변하는 값이기에 몇 년에 한 번씩은 재측정하여 수정해야 하지만 18년이 지나도록 수정이 안 되고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은 지자기측정장비 같은 장비가 있음에도 측정을 하지 않고 있다. 일종의 업무태만인 셈이다.

 

▲ (왼쪽부터)1872년 지방도 전라도 영양군 (현 월출산 천황봉) / 광여도 전라도 구례현(1800년 이전 추정) (현 구례·순천 경계의 천황봉)

    / 1872년 지방도 전라도 용담현 (주줄산은 현 운장산. 숭암사는 현 천황사) / 1872년 지방도 전라도 장수현 (장수읍 노곡리 뒷산)

 

남정권 강사는 "도자각이 아니라 자편각이 정확한 개념"이라고 말한다. 지도는 지구의 입체적인 땅 모양을 평면으로 나타낸 것이다. 투영 작업을 거쳐 평면화된 것이다. 투영법은 몇 가지가 있는데 어떤 투영법을 썼느냐에 따라 같은 위치라 해도 도북이 다르다.

 

법 안 지키는 국토지리정보원

 

<신산경표>의 저자인 박성태 선생은 국토지리정보원의 산이름 문제를 지적한다.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국가지도에 자연지명을 추가하거나 바꿀 경우 아무나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지리산을 갑자기 다른 이름으로 바꿀 수 없고 무명봉에 개인이 이름을 부여할 수 없는 것이다. 산이름의 제정이나 변경은 시·군·구지명위원회가 심의·의결하여 시·도지명위원회에 보고하고 시·도지명위원회는 이를 심의·의결하여 국가지명위원회에 보고한다. 국가지명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하여 결정되면 국토지리정보원장은 이를 고시하고 국가기본도인 지형도에 표기한다.

 

가령 지리산 천왕봉의 이름을 바꾸자고 할 경우 최초로 함양군지명위원회와 산청군지명위원회의 심의·의결이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자연지명의 제정이나 변경은 법으로 정해져 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현재 고시된 산이름은 총 9,000여 개이지만 둘 이상의 면 경계에 있어 중복 고시된 것을 거르면 5,500여 개다. 그러나 국토지리정보원의 최근 산높이 자료에 의하면 지형도의 산이름은 7,391개에 달한다. 고시되지 않고 표기된 산이름이 1,900(2,000)여 개에 달하는 것이다. 가령 예전 지도를 보면 대구 팔공산의 경우 팔공산만 있었는데 지금은 동봉, 서봉 등 여러 봉우리 이름이 올라 있다. 이들은 각급 지명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고시하는 절차를 밟지 않고 임의로 표기된 것이다.

 

▲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에 표시된 도북, 진북, 자북. 도자각은 8°가 되어야 맞다.

 

즉 국토지리원장의 권한으로 자연지명의 이름을 마음대로 붙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성지문화사나 동아지도, 영진지도 같은 일반 지도회사라면 더 많은 정보를 넣기 위해 자유롭게 지명을 붙일 수 있겠지만 국가기본도는 이와 다르다. 정해진 법을 무시하고 국토지리정보원장 임의로 지명을 올릴 수 없다. 그것이 아무리 자료 조사과정을 거친 필요한 지명이라 해도 각급지명위원회의 심의·의결과 고시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산이름이나 지명에 관한 내부 전문가가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자연지명에 관한 전문가나 검증시스템이 취약하다. 심지어 인쇄과정에서 한자의 획이 하나 빠져 잘못 등록되거나 실수로 잘못 표기한 경우에도 내부적으로 수정이 더디다. 박성태 선생은 국토지리정보원의 늘 같은 답변에 답답함을 토로한다.

 

"금남정맥의 성정산을 성항산으로 잘못 표기한 거예요. 인쇄 과정에서 실수한 거죠. 제가 지적해서 수정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대조 작업만 꼼꼼히 했으면 그런 실수가 없었을 텐데."

 

잘못된 산이름 제대로 표기 안 해

 

백두대간의 고루포기산은 박성태 선생의 지적으로 골폭산으로 바꾸어 표기하겠다고 하고도  바꾸지 않은 경우다. 골폭산과 고루포기산으로 각각 고시하고 지형도에는 고루포기산으로 표기를 하고 있다. 고루포기산은 골폭산의 일본식 발음이니 골폭산으로 산이름을 바꿔 달라는 박성태 선생의 민원으로 골폭산으로 수정한다고 답변을 하고도 막상 지형도에는 그대로 고루포기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인터넷 지도검색서비스에서도 여전히 고루포기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2010년에 바꾸어 표기한다고 해놓고 현재까지도 그대로다. 이쯤 되면 산이름이나 자연지명은 담당직원이 없는 건가 싶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울진의 안일왕산도 비슷하다. 대동여지도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명백히 이름을 올린 산 이름이기에 박 선생의 1년에 걸친 노력으로 지난해 10월 고시가 되었다. 그러나 지형도에는 아직 표기가 안 되었다. 인터넷 지도검색서비스에 안일왕산은 나오지만 지형도에서는 엉뚱한 곳을 가리키고 안일왕산 글자는 안 보인다. 자료를 조사해 민원을 제기해 복잡한 법적 절차를 거쳐 고시해 놓고도 반영이 안 된 것이다. 긴 시간을 발로 뛰며 노력한 박성태 선생 입장에서는 울화통이 터질 입장이다.

 

▲ 가평군에서 이름을 새로 지은 '연인산'. 그러나 지도상에는 여전히 무명봉으로 남아 있다. 법적 절차를 밟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명에 관해선 국토지리정보원은 관심이 없다고 봐야죠. 지명은 그렇다쳐도 위치라도 정확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잘못된 게 많아요. 북한산 우이령은 일제가 만든 지도는 우이령(소귀령)의 정확한 위치를 표시하고 높이까지 적었어요. 그런데 우리 지도는 엉뚱한 곳에 소귀고개를 표기하고 정확한 위치 표기도 없어요. 일제 때 지도가 훨씬 정확하죠. 그런데도 걸핏하면 일제 왜곡 탓하며 잘못된 보도자료나 내고 말이죠."

 

2005년 2월 28일 녹색연합에서 속리산 천황봉이 일제가 조작한 지명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대부분의 방송사와 신문사들은 장단을 맞추며 일제가 일왕을 뜻하는 천황봉(天皇峰)으로 바꾸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천황봉이란 이름은 조선조 윤휴의 <백호전서>라는 고전에도 '문장 천황'이라며 나오는 이름이고 천신이 하강했다는 민간신앙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것이 설득력 있다. 일제가 고의로 천황봉이라 표기했다면 지도에 함께 표기된 전국 9개의 천황봉과 산은 무엇인가. 대부분 과거 사료에서 찾을 수 있는 이름이며 명산이라 부르기 힘든 낮은 산에도 천황봉이라 붙어 있는데 일왕을 뜻하기 위해 붙였다면 이런 산에는 천황봉이란 이름을 뗐을 것이다.

 

속리산이 충청도와 경상도의 경계인 특성상 양쪽 지명위원회를 통과해야 했다. 보은군은 지명위원회에서 '일제가 조작한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밝히고 있으면서도 '산이름은 바꾼다'고 결론 내렸다. 결론 자체가 논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박성태 선생의 자료제출로 일제의 조작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여론에 밀려 바꾸는 꼴이 된 것이다. 박성태 선생은 <월간산> 2005년 12월호에 산이름과 관련된 사실을 명백히 밝혔다.

 

'일제는 1914년부터 1918년 사이에 우리나라 1:50,000 지형도를 발행했다. 최초의 입체화된 현대지도로 귀중한 자료다. 그러나 이 지도는 우리나라의 자원을 수탈하고 효율적으로 식민지화할 목적으로 만든 정보자료였다. 정확한 지도를 만들려고 정확하게 만드는 데 집중했던 것이지 입맛에 맞게 조작한 지도가 아니다. 자연지명은 사실을 사실대로 기재했다.

 

산이름을 한자로 바꾼 것은 일제가 아니다. 일제강점기 이전 조선시대의 산에 관한 기록은 모두 한자를 사용하고 있다. 서민들 사이에 전해 오는 산이름을 지도나 문서에 기록으로 올리려면 이름을 한자로 바꿔야 했다. 이 과정에서 음에 맞는 한자를 골라 쓰거나 뜻에 맞는 한자를 쓰기도 했다. 산이름 중 일제가 조작하여 임의로 바꾼 것은 없다. 우리의 국수주의적 해석이거나 실수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조작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백두산 최고봉을 일본왕(대정천황)을 지칭하는 '대정봉'이라고 했다.

 

일제는 지형도를 제작함에 있어 서민들이 두루 사용하는 지명을 표기했다. 숭례문은 나라에서 그리 지었지만 서민들은 성곽 남쪽에 있다 하여 대부분 남대문이라 불렀으므로 지도에 남대문이라 표기했다. 북한산도 대중들이 부르던 이름이며 삼각산은 일부 지식인층에서 불리던 이름이었다. 유식한 사람들은 삼각산이라 부르며 많은 글을 남겼으며 대동여지도와 산경표에도 그리 남아 있다. 그러나 몽매한 일반 백성들은 북한산으로 불렀고 일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이름인 북한산으로 기재했다.'

 

                                                                                                                                ▲ <신산경표>를 펴낸 우리 산 박사 박성태 선생.

 

-2005년 12월호 박성태 특별기고 '우리의 국수적 해석이나 실수가 더 많다' 중에서 국토지리정보원에 청한다

 

산이름을 바꾸려면 지자체가 움직여야 하지만 지자체 역시 산이름에 관한한 큰 관심이 없다. 가평 연인산은 가평군에서 산이름을 바꾼 사례다. 바뀐 이름 덕분에 등산객이 늘어 나름 도움이 되었지만 정작 지명위원회를 통해 고시는 하지 않았다. 가평군지명위원회에서 심의·의결어도 경기도지명위원회와 국가지명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고시했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가평군 내에서 그렇게 합의하고 결론 내어 표지석을 세웠지만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에 연인산은 없다.

 

 

▲ 예전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팔공산을 제외한 봉우리에는 이름이 없다. 현재의 지형도에는 동봉, 서봉, 염불봉 등이 고시과정 없이 기재되어 있다.

 

일림산과 삼비산은 지자체의 주장이 부딪힌 경우다. 같은 산을 두고 다른 이름을 주장하여 지명위원회에서 몇 년을 끌어 일림산으로 결정 났다. 하지만 장흥군은 승복하지 않고 여전히 삼비산으로 쓰고 있다. 강제성이 없어 지자체에서 따르지 않으면 지형도에만 남는 이름이 된다.

 

박성태 선생은 국토지리정보원의 단골 민원인이다. 우리 산 박사나 다름없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국토지리정보원 입장에선 아픈 곳을 긁어 대는 존재로 비쳤을 것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은 지난해 지명법을 입법 예고했다. 그 내용 중에는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이나 그 지역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사람만 해당지역 지명의 제정·변경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박성태 선생 같은 등산 전문가나 외부인들이 나타나서 귀찮게 구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이 될 만하다.

 

지역 지명위원회의 활동 역시 의문이다. 위원회에 이름을 올린 이들 중 산이름에 관심을 가지고 회의에 참석하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지명회의를 진행하기는 할까. 수당 받고 도장만 찍는 일은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마련이다.

 

"아무도 산이름에 관심 없어요. 그까짓 산이름이 뭐가 중요하냐. 갑이면 어떻고 을이면 어떠냐. 하지만 산의 이름이기에 중요해요. 나라의 지도에 산이름을 붙이는 건데 법에 따라 진행되고 운영돼야지 담당공무원들조차 법령을 몰라서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누구에게나 이름이 있고 사물에도 이름이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산이름이 있거나 말거나 상관 없다 해도 산꾼들에게는 산이름이 중요하다. 이유는 산이기 때문이다. 그 험한 산줄기에 몸을 던져 헉헉 거려 보지 않았다면 땀 흘려보지 않았다면 산이 주는 자연의 감동을 느껴보지 않았다면 산 이름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겐 산이름이 중요하다. 나라의 지도에 산이름 새기는 작업을 소중히 해달라고 간곡히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