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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팀 합동 산행

[2012-11-25] 대구팀 합동산행-12_서울 한양도성 - 시공(時空)을 초월한 조상의 유산

[대구팀 합동산행-12] 서울 한양도성 - 시공(時空)을 초월한 조상의 유산

[탐방일시] 2016.10.23(일) 2012.11.25(일) 09:48~16:36(6시간 48분)

[날       씨] 맑음/옅은 연무

[탐방인원] 13명(대구팀 9명, 서울팀 4명 / 존칭 생략)

                   (대구팀) 참사랑산악회 회원 9명

                   (서울팀) 시인마뇽, 하이맛, 범솥말, 성봉현

[탐방시간] 장충체육관(09:48) → 남산(10:50) → 숭례문(남대문. 11:32) → 정동공원(11:56~12:16) → 인왕산(13:47)

                   → 창의문(북소문, 14:36~14:45) → 북악산(15:10~15:15) → 숙정문(북대문, 15:41) → 혜화문(16:36)

[안내지도]  서울 한양도성 지도_종로구청.png

 

[구글지도]

 

[탐방기록]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6번 출입구로 나오니 싸늘한 바람이 얼굴을 할퀴는데 장충파출소 앞에 있는 정자에서 먼저 도착하신 범솥말 선배님이 반갑게 맞이하여 주신다. 그리고 조금 후 하이맛 선배님에 이어 시인마뇽 선배님이 도착하시면서 서울팀은 모두 모였다.

 

오늘은 서울의 독립군(홀로 대간∙정맥을 걷는 산꾼)과 대구의 참사랑산악회 회원들이 함께하는 산행일로 이번은 산행이 아닌 서울성곽(한양도성)을 따라 역사탐방을 하기로 하여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서울지리에 밝지 못한 대구팀이 '장충체육관' 사거리를 지나쳐 유턴하여 돌아온 차량을 동대입구역 2번 출입구 앞에서 만난다. 지난 4월에 대구에서 보았으니 어느새 7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로 초겨울로 접어든 길목에서 만나는 셈이다. 반가운 얼굴들을 보면서 인사와 악수를 나누고 복장을 추스린 후 차량은 국립극장 방향으로 올려보내고 대구팀 9명과 서울팀 4명이 한 무리가 되어 시간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공사 중인 장충체육관을 지나 고갯마루에 도착한다. 서울을 감싸던 성곽이 개발이라는 행위로 끊어진 곳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첫 걸음을 시작한다(09:46).

 

성곽 앞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서울성곽길(Fortress Trail)

서울의 내사산(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을 잇는 서울성곽길은 서울의 4대문(숙정문, 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터)과 4소문(창의문, 혜화문, 광희문, 소의문터) 및 성곽길 18.2km를 따라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체험하는 탐방로입니다.

 

서울성곽과 나란히 진행하는 나무데크의 탐방로는 신당2동과 장충동의 동계를 그리면서 도로를 따라 이어진다. 초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붉은 단풍으로 치장한 단풍나무를 지나니 이정표가 나오면서 성곽이 끝난다(10:09). 아니 끝난 것이 아니라 소실된 것으로 그 구간을 반얀트리호텔이 차지하고 있으며, 국립극장 앞에서 다시금 이어진다. 반얀트리클럽의 골프 연습장 펜스를 따라 걷다가 호텔 내부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국립극장으로 가는 횡단보도를 만난다(10:18).

 

차량 흐름을 기다리다가 보행자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 남산순환도로를 따라 길을 이어간다. 국립극장을 지나면서 다소 비탈진 오름길은 끊어진 성곽을 다시 만나 바깥쪽으로 탐방로가 연결되는데(10:23) 남산을 향해 급격하게 고도를 올려간다(구글어스로 확인하니 680m의 거리를 해발고도 98m에서 230m까지 끌어올린다). N서울타워까지 1km라는 이정표가 가리키는 성곽 바깥의 목제계단길은 이내 성곽 안으로 넘어간 후 잠시 내려가다가 시멘트 산책로로 바뀌어 서울타워 바로 전에서 다시 남산순환로와 합류하여 팔각정이 있는 전망데크를 만나면서 끝난다(10:50).

 

서울성곽 | Seoul Seonggwak (Fortress Wall)

 

지정번호 : 사적 제 10호 / 시대 : 1396(태조 5)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 일원

 

이 성곽은 1396년(태조 5)에 쌓아서 만든 것으로, 조선시대의 수도인 한양을 에워싼 도성(都城)이다. 1422년(세종 4)에 흙으로 쌓은 부분을 모두 돌로 바꾸고 여장(女墻)을 쌓아 성벽을 더 높게 만드는 보수 공사를 하였다. 1704년(숙종 30)에는 취약한 부분을 튼튼하게 고쳤고, 영조 때에는 동쪽 성곽에 적을 쉽게 방어하고 감시할 수 있는 치성(雉성)을 쌓았다. 성곽은 둘레 약 18km에 높이는 대략 12m 가량으로 한양을 둘러선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의 능선을 이었다. 불규칙한 지형 때문에 약간씩 틀어졌지만 사방에 대문을 내고, 그사이에 소문을 열었다. 4대문은 동쪽 흥인지문, 서쪽 돈의문, 남쪽 숭례문, 북쪽 숙청문 (뒤에 숙정문으로 개칭)이고, 4소문은 동북 흥화문(뒤에 혜화문으로 개칭), 동남 광희문, 서북 창의문, 서남 소덕문(뒤에 소의문으로 개칭)인데, 흥인지문 앞에만 옹성을 두었다. 태조, 세종, 숙종 때 쌓은 성벽은 그것을 만든 방법과 돌 모양도 각각 달라 시대 변화에 따른 기술의 변화를 살필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근대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성벽과 성문은 훼손되고 겨우 일부만 남았었으나 해방 이후 현재까지 제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중부푸른도시사업소

 

하늘을 향해 높게 솟아오른 N서울타워, 한때 업무차 드나들었던 타워 앞의 전망대로 간 대구팀원들을 기다리면서 팔방위를 표시한 방위각 표석 앞에서 잠시 복잡한 서울시내와 멀리서 다가서는 북한산 관람을 망중한 즐긴다. '목멱산 봉수대 터'를 지나 숭례문을 향한 계단길의 내리막길을 따라 탐방을 이어간다(10:54).

 

올라오는 관광객들과 교행하면서 내려가다보니 발걸음은 어린이회관으로 건설되었다가 국립중앙도서관을 거쳐 '서울특별시 교육연구정보원'으로 바뀐 건물을 만나는데 1970년대 보았던 건물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11:10). 안중근의사의 친필로 새겨진 거대한 표석들 사이로 지나면 이내 넓은 광장에 우뚝 서있는 백범동상이 나오는데 앞서가던 일행들이 갑자기 멈추어 서더니만 한 사람의 구령에 따라 '충성' 거수경례를 한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진정으로 걱정하였던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백범 김구선생(1876.08.29~1949.06.26), 하지만 그 시절과 대비되는 오늘날의 정치가 떠오르면서 씁쓸해지는 기분을 떨치려 발걸음을 부산히 숭례문으로 옮긴다(11:21).

 

새로운 화강암석으로 복원된 성곽은 지난 2008년 2월 10일에서 11일에 걸친 화재로 소실되었던 숭례문으로 내달린다. 좌측으로 서울역사를 언듯 보면서 차도와 나란히 가다보니 한창 복원공사 중인 숭례문을 만나고(11:32) 서울역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만나는 횡단보도를 이용하여 넓은 차도를 건너 대한상공회의소 앞까지 이동한다(11:38). 서울시내를 에워싼 성곽은 이곳에서 다시 한 번 더 끊어지는데 옛 성곽을 재현하고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복원정비한 성곽을 따라 중앙일보 사옥을 지나고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을 거쳐 연인들의 거리인 덕수궁 돌담길로 발걸음이 이어진다(11:47).

 

도심개발로 사라진 한양도성인 서울성곽은 머릿속으로만 그려보면서 우회길을 열심히 걸어간다. 덕수궁 별채로 1901년 황실도서관으로 지어진 중명전(重明殿), 후에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던 비운의 장소를 지난 발걸음은 한국가톨릭수도원의 첫자리였던 정동공원에서 멈추는데 햇볕이 따뜻한 백색의 정자에서 점심을 해결한다(11:56~12:16).

 

정동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 좌측편으로 보이는 강북삼성병원 앞의 차도를 따라 오르면 병원 본관 사무실로 사용되었던 경교장이 나오고 우측편에는 성곽의 흔적이 어렵게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12:26). 약간의 오르막길을 오르면 서울시교육청을 지나 월암근린공원에 있는 홍난파가옥이 나온다(12:33). 하이맛 선배님이 이곳에서 점심 먹은 정동공원에 스틱을 놓고 왔다고 하여 일행을 보낸 후 되돌아가서 스틱을 찾아오느라 20여 분 이상의 시간을 보낸 후 다시금 홍난파가옥을 지나 사직터널에 도착한다(12:57).

 

사직터널에서 시인마뇽 선배님 그리고 하이맛 선배님을 다시 만나 성곽길 탐방을 계속 이어간다. 넘어야 할 북악산 아랫편에 자리잡은 청와대의 지붕이 보이는 경관조망장소를 지나면 인왕산 정상까지 0.99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 나올 때 계속 성곽을 따라 다시 한 번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른다(13:10). 바위로 이루어진 인왕산을 넘어가는 성곽은 '종로구 경계점' 표시판이 매설된 인왕산 정상부까지 숨가쁘게 따라오고(13:47) 다시금 내리막길로 바뀌어 청운공원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하였던 일행들이 우리를 반겨준다(14:20).

 

짧은 휴식을 끝내고 윤동주시인의 언덕을 오른다(14:30). 이제 탐방로는 산책로로 바뀌어 창의문으로 내려서고 '청계천 발원지' 표석을 지나 창의문 안내소에 이른다(14:36). 북악산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이곳 창의문 안내소에서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은 서류를 제출한 후 출입증을 교부받아야 한다. 하지만 시인마뇽 선배님은 신분증(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또는 여권)을 지참하지 않은 관계로 출입 불가란다. 결국 혜화동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북악산을 향해 오른다(14:40).

 

북악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길 중간중간에 만나는 의무경찰(?)들이 사진 촬영 방향을 통제한다. 하지만 위성을 통해 손바닥의 손금을 보듯이 지형지물을 파악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시대착오적 발상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돌고래바위를 지나 성곽 밖으로 보이는 북한산을 보면서 오르다보니 어느새 '白岳山 海拔 342m'라고 음각된 북악산이다(15:10). 한때 방공포가 자리잡고 있었던 북악산 정상부가 우리의 곁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 2000년 9월이라고 한다. 개인사진과 단체사진을 촬영한 후 다시금 성곽을 따라 길을 걷는다(15:15).

 

3분 여 후 1968년 1월 21일의 치열했던 상황을 말없이 몸으로 보여주는 1.21사태 소나무를 만나고 조금 더 걸어가면 나오는 해발 293m의 청운대를 지난다. 탐방로는 성곽을 건너 바깥으로 진행하는데 그 옛날 이렇게 커다란 돌덩어리를 어떻게 운반하였고 또한 어떻게 쌓아올렸을까 생각하다보니 그저 힘없는 민초들의 애환이 배어있는 서울성곽은 어느새 숙정문에 이른다(15:41).

 

홍예문 형태의 숙정문을 나가 밖에서 바라본 후 앞서간 일행들을 쫓아 발걸음을 바삐 움직인다. 말바위 안내소에서 출입증을 반납하고 조금만 더 가다가 방공포대로 인해 성곽 바깥으로 나간다(15:52). 과거부터 지키고 있던 돌과 새로 복원된 돌이 함께 어우러진 성곽의 경계를 보면서 와룡공원에 도착한다(16:03). 호젓하던 성곽길이 다시금 도심으로 향하는지 그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내리막길은 서울과학고를 지나 차도로 내려선다(16:20). 이제부터는 다시금 차도와 주택가 골목을 따라 요리조리 이동해야 한다. 선두로 가고 있는 범솥말 선배님의 안내에 따라 골목길을 통과하여 오늘 탐방의 마지막 성문인 혜화문(동소문)에 도착하고(16:36) 단체사진을 촬영함으로써 서울성곽 탐방을 종료하고 창의문 안내소에서 헤어졌던 시인마뇽 선배님을 찾아 혜화역으로 이동한다.

 

민초의 애달픔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한양도성, 일제시대에 허물어지고 해방된 후에는 개발이라는 잣대로 뭉개어졌지만 다시금 복원되어 우리의 곁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이조시대에서 현재까지 시공을 초월하여 만날 수 있는 조상의 유산을 따라 걸었던 하루를 조용히 생각하면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