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구팀 합동 산행

[2013-10-27] 대구팀 합동산행-14_강화도 마니산 - 단군의 얼이 서린 참성단

[대구팀 합동산행-14] 강화도 마니산 - 단군의 얼이 서린 참성단

[산행일시] 2013. 10. 27(일) 11:05~15:37(4시간 32분 // 산행시간 : 3시간 20분 / 휴식시간 : 1시간 12분)

[날       씨] 맑음

[산행인원] 17명(대구팀 11명, 서울팀 6명 / 존칭 생략)

                   (대구팀) 기경환, 박상훈∙최미애, 박영홍∙천정미, 임상택, 권재형 외 4명

                   (서울팀) 시인마뇽, 하이맛, 범솥말, 북한산, 터푸, 성봉현

[접       근] 송정역(지하철 5호선) → 김포시 고촌 : 시내버스 / 김포시 고촌 → 하늘재 : 대구팀 전세버스

[이       탈] 함허동천 주차장 → 김포시 고촌 : 대구팀 전세버스

[산행시간] 하늘재(11:05) → 280능선(△, 11:47~11:50) → 단군로 합류점(12:07) → 능선(점심, 12:13~12:47)

                   → 참성단(13:27~13:32) → 마니산(13:35~13:40) → 469봉(△, 14:12~14:14) → 너럭바위(14:52~13:02)

                   → 함허동천(15:11~15:15) → 매표소(15:37)

[산행지도] 영진5만지도(영진출판사  2011년 1월 인쇄본)

 

[구글어스]  2013-10-27_마니산.gpx

 

[산행기록]

매년 봄, 가을로 합동산행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이번 산행지는 지난 봄에 대구팀의 주관으로 산행하였던 거창의 현성산~금원산 연계산행 뒤풀이 자리에서 이야기 되었듯이 강화도의 마니산으로 산행경로는 서울 독립군 선배님인 범솥말 선배님이 이야기한 선수능선 상의 어느 고갯마루이다.

 

강화도 마니산은 외길로 이어지므로 산행경로를 사전답사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줄어들어 나름 수월한 준비를 한다. 이제 산행일이 다가왔고 늘 그러하듯이 사전에 전화 통화로 만나는 장소와 시간이 대충 결정되었으니 산행 당일 약속된 김포시 고촌버스정류장에서 만나기만 하는 되는 것이다.

 

지하철 5호선 송정역에서 서울팀을 만나 김포시 고촌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하여 대구팀을 기다리는 도중 이번 산행에 처음 동행하시는 부천의 북한산 선배님과 터푸 선배님이 합류하는데 차량은 고촌읍 천등고개의 구도로에 주차한다. 대구팀을 만나 그 버스에 모두 승차하여 김포와 강화도를 연결하는 초지대교를 건너 마니산국민관광지 주차장을 지난 후 인근의 산행 들머리가 될 고갯마루를 못 찾아 조금 헤메였지만 공인중개사의 도움으로 무사히 하늘재에 도착한다.

* 선수능선 상의 하늘재 주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 산55

 

산행이 끝나고 산행기를 작성하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다 보니 우리가 산행한 능선은 선수능선으로 동쪽의 동오리분대에서 서쪽의 선수돈대까지 이어지는 능선 상의 하늘재에서 정수사 분기점까지만 산행한 것으로 차후에 여건이 된다면 분오리돈대에서 선수돈대까지 전 구간을 산행하고 싶어지는 곳이다.

 

우여곡절을 격으면서 도착한 하늘재 바로 전의 공터에서 하차한 후 차량은 방향을 돌려 하산지점인 함허동천에서 만나기로 한다. 산행준비를 끝낸 우리는 이 분여 거리의 하늘재에서 단체사진 촬영과 함께 서울-대구팀의 열 네 번째 합동산행을 시작한다(11:05).

 

계단길의 등산로 옆 바윗면에 누군가 '하늘재'라고 쓴 글씨를 보면서 마니산으로 향하는 오름길을 오른다. 항상 그러했듯이 오늘도 시인마뇽 선배님과 함께 마지막 후미로 산행을 하는데 초반부터 그리 급하지는 않지만 무시할 정도가 아닌 은근한 오름짓을 해야 하는 산길은 호젓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하다. 한가로운 산길에 찾는 이가 없는 것인지 앞서 간 우리 팀의 발자국만 따르다 보니 저만치 앞에서 쉬고 있는 중간 그룹이 보인다. 비교적 넓은 공터 한 켠에 세워진 표지판을 보니 '현위치 마-2 인천강화소방서 / 정상까지 1.7km'라고 쓰여 있다(11:21).

 

후미인 우리를 기다렷던 대구팀의 임상택 대장을 비롯한 중간그룹은 다시 출발하고 우리 역시 쉼 없이 진행한다. 조금 더 경사진 오름길은 바위 봉우리로 올라서는데 사방으로 조망이 막힘없이 트이는 구릉으로 280능선인 듯 하다(11:27). 마니산 참성단이 있는 구릉에서 선수포구를 향해 흘러 내리는 능선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면서 시선을 사로 잡는다. 잠시 시선을 거두어 북쪽의 후포항 방향으로 바라보니 황금빛 벌판이 넓게 펼쳐저 있는데 아마도 논인 듯하다. 대구팀이 건네준 얼린 홍시를 먹으면서 쉬었던 짧은 휴식을 끝내고 다시금 출발이다(11:34).

 

그리 험하지 않은 바윗길을 내려가니 '←선수(4.3km)  ↑상방리(3.6km)  →참성단(1.5km)'라고 표기된 타원형의 이정표가 보인다. 초입부의 오름길과는 다르게 완만해진 능선으로 이어지는 선수능선, 커다란 바위들 사이에 매설된 삼각점[강화 423]을 만난다(11:47, 국토지리정보원의 국가기준점발급시스템 홈페이지(http://nbns.ngii.go.kr)에서 검색하면 사용불가 삼각점이라 한다). 삼각점에 표기된 내용을 간단히 설명한 후 멈추었던 발걸음을 이어간다(11:50).

 

잠시 내려서다가 다시금 완만한 오름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바쁠 것이 없는 산객들에게는 여유로운 길이다. 고만고만한 능선 구릉 두어 개를 넘어 올라서는데 나일론 줄이 길을 막고 있으며 마니산관광지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과 조우한다. 줄에는 '마니산관광지 등산로 종점 (우측 매표소 방면으로 내려오세요) 강화군시설관리공단'이라 적힌 안내판이 매달려 있다(12:07). 무엇 때문에 선수포구로 향하는 선수능선을 막았는지 모르겠지만 출입금지 구역을 산행한 것 아니냐 하는 듯한 눈초리가 따갑다. 몇 걸음 걷기도 전에 '현위치 마-4 정상까지 1.3km' 표지판과 함께 '←매표소 1.9km  ↑참성단 1.3km'로 표기된 이정표가 나온다. 단군로 합류점으로 휴일을 맞아 마니산을 찾은 많은 등산객들을 보니 마니산까지 길의 상태를 미리 보는 듯 하다.

 

점심 먹을 시간이 되었지만 장소가 마땅치 않아 선두가 계속 진행하고 있는지 궁금하던 차에 등산로에서 비켜난 곳에 자리를 펼치고 있는 선두팀을 만나 배낭을 내려 놓는다(12:13).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대구팀이 준비한 점심 먹거리는 항상 푸짐하기만 하다. 먹는 즐거움과 함께 먹는 만큼 걷는다는 것이 평소의 지론인 바 점심식사를 즐겁게 마무리하고 자리를 정리한다(12:47).

 

이제부터는 단군로를 따라 올라온 많은 산객들과 뒤섞이어 그저 앞사람의 발 뒤꿈치만 보면서 걸어야 한다. 잠시 후 만나는 너럭바위의 조망지에는 앞쪽으로 웅진군 신도, 시도, 모도가 있다고 설치된 조망안내도가 알려 주지만 흐릿한 연무로 시야가 막혀서인가 그닥 시원스럽지 못하다. 앞사람이 빨리 가면 같이 걸음이 빨라지고 속도가 줄어들면 따라서 느려지는 걸음걸이, 기도원 코스 분기점을 만난다(12:57).

 

이곳에서도 또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올라오니 등산로는 그야말로 만원을 이루고 있다. 마니산을 찾은 것이 언제인지 생각조차 나지 않지만 산길의 모습은 기억 속에서 자리잡고 있으니 희미하게라도 떠 오른다. 일반 등로였던 곳을 나무계단으로 만들어놓은 곳을 만나는데 계단이 시작되는 곳에 '삼칠이계단'이라 표기해 놓았다(13:04). 조금은 가파은 오름길의 산길을 계단으로 만든 것인데 그 수가 372개이나 보다. 계단 수를 확인하기 위해 속으로 헤아리면서 가다가 대구팀과의 대화로 계수하던 것을 중도에서 접는다.

 

계단이 끝나면서 멀게만 보이던 참성단이 울퉁불퉁한 바위 능선 위편으로 보이는 것이 손에 잡힐 듯한 거리이다. 또 한 번 짧은 나무계단을 올라서니 드디어 참성단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한 시설물인 회색빛 보호철망이 나온다. 그 철망에 매달린 안내판에는 참성단 개방시간이 표시되어 있는데 '하절기 10:00~17:00, 동절기 10:00~16:00'란다. 바위구릉에 돌로 쌓아 올린 참성단, 그 참성단 앞의 좁은 공간을 가득 메운 등산객들로 그야말로 북새통이 따로 없다(13:27).

 

매년 개최되는 전국체육대회 때 7선녀에 의해 채화된 성화를 보관하기 위한 성화로, 그리고 문화재 지정(2009.09.16) 사례로는 최초인 '강화 참성단 소사나무' 사이에 제천단이 자리잡고 있다. 참성단을 만든 저 많은 돌들을 어떻게 구했을까 궁금하기만 하다.

 

참성단[塹星壇]

사적 제136호. 단군성조가 366가지에 이르는 나라 다스린 공을 세우면서 아울러 제천의 대례를 행하고 보본(報本:생겨나거나 자라난 근본을 잊지 아니하고 그 은혜를 갚음)의 뜻을 드높였던 곳이다. 그러한 뜻이 오늘날에도 전해지고 있어 전국체전 때에는 이 제천단에서 봉화를 채화하는 의식이 열리고, 특히 개천절에는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제천행사가 거행되고 있다.

 

민족 제1의 성적(聖蹟)으로, 마니산 제천단(摩尼山祭天壇)이라고도 한다. 참성단에 관한 기록은 고려 때의 문헌 여러 곳에서 이미 나타난다.

 

≪단군세기(檀君世紀)≫에는 “……이 분이 단군이다. ……제천단을 쌓고(강화도 마니산에 있음.) 삼랑성(三郎城)을 쌓으시다(성이 강화 전등산에 있고 세 아들을 보내어 쌓았기 때문에 삼랑이라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 ≪수산집 修山集≫의 <동사 東史>에는 “제천단은 강화도 마니산에 있으니, 단군이 혈구(穴口:강화의 옛이름)의 바다와 마니산 언덕에 성을 돌리어 쌓고 단을 만들어서 제천단이라 이름하였다.

 

단은 높이가 17척인데 돌로 쌓아 위는 네모나고 아래는 둥글다. 위의 네모는 각 변이 6자 6치요 아래는 둘레가 60자이다. 혹자에 의하면 마니는 강과 바다의 모퉁이라, 땅이 따로 동떨어지고 깨끗하며 고요하여 신명(神明)의 집이 된다. 그러므로 제터를 닦아 한얼님께 제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은 음(陰)을 좋아하고 땅은 양(陽)을 귀하게 여기므로 제단은 반드시 수중산(水中山)에 만드는 것이요, 위가 네모나고 아래가 둥근 것은 하늘과 땅의 뜻을 세운 것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이 제천단에 관한 본래의 연혁을 짐작하게 된다. 또한, ≪문헌비고≫에는 “고려 고종 46년에 교서랑(校書郎) 경유(景瑜)가 말하기를 ‘대궐을 마니산에 세우면 가히 나라의 복조(福祚)를 늘게 하리라.’ 함에 명령하여 이궁(離宮)을 그 산 남쪽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1639년(인조 17)에 개수축(改修築)하였으며, 1700년(숙종 26)에 또 개수축하여 비를 세웠는데, 그 비문에 “동녘땅 수천리 전체를 둘러서 강도(江都)가 보장지중지(保障之重地)가 되고, 강도 수백리 전체를 둘러서 마니가 으뜸가는 명산이라. 산 서쪽 제일 높은 곳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드니 이른바 참성단이라.

 

세상에서 전하되 단군께서 쌓아 제단으로 하여 한얼께 제사지낸 곳이라 하니, 돌이켜보건대 오랜 연대가 흘러 비바람에 깎이고 허물어져서 서북쪽 태반이 무너지고 동쪽 층계가 또한 많이 기울어져서 … 선두포별장(船頭浦別將) 김덕하(金德夏)와 전등사총섭(傳燈寺總攝) 승 신묵(愼默)이 주로 맡아 고쳐 쌓으니 20일 만에 일을 마쳤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참성단이라는 명칭이 붙은 내력과 여러 번 고쳐 쌓은 일을 알게 되며, 제천단에 대한 선인들의 뜻이 어떠하였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여러 번 고쳐 쌓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그 본래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참성단[塹星壇](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62581&cid=1625&categoryId=1625)

 

북적거리는 참성단의 인파에 밀려 건너편 마니산으로 발길을 옮긴다(13:32). 올라왔던 길을 내려가 철망문을 나갔지만 역시나 등산객으로 밀리는 것은 여전하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마니산 정상에는 원형의 정상목이 세워져 있는데 해발 472.1m라고 새겨져 있다(13:35). 대부분의 지도들은 마니산 정상을 이곳이 아니라 정수사 방향으로 가다가 만나는 삼각점[강화 422]이 있는 469봉으로 표기하고 있다. 하여 국토지리정보원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확인해 보니 이곳을 마니산으로 표기하고 있듯이 정상임에 틀림없다.
* 국토지리정보원 공간정보 홈페이지(http://sd.ngii.go.kr) → 지도서비스 참조

 

하기사 정상이 어디인가가 아니라 단군신화와 얼이 깃든 성역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리라. 정상목 인근에서 기다리고 있는 일행들이 모여 성원이 안되었지만 그래도 단체사진을 촬영한다. 헬기장을 겸한 좁은 정상부를 떠나 함허동천∙정수사 방향으로 진행한다(13:40).

 

마니산 등산로에 계단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니산 등산로 나무계단 설치공사'가 2010년 6월 11일에 완료되었다고 한다. 나무계단을 내려가니 자연석의 바윗면에 무언가 음각된 것이 보이는데 바로 옆 안내문이 '참성단중수비'라고 알려준다(13:41). 안내문에 적혀 있는 문구를 그대로 옮겨 본다.

 

                                                                               참성단중수비(塹城檀重修碑)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3호 /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흥왕리

 

이 비는 참성단을 개축한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암벽에 정남향으로 가로 50cm 세로 105cm의 음각 테두리를 마련하고 그 안에 글자를 새겨 넣었다. 명문은 1행부터 7행까지는 각 30자 8행은 28자, 9행은 12자로 모두 250자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강화유수 최석항(崔錫恒)은 조선 숙종 43년(1717년) 봄에 관내를 순시하면서 마니산에 올랐다가 참성단의 상당부분이 무너진 것을 보고 선두포 별장과 전등사 총섭승에게 중수를 명하여 공사를 마쳤다고 한다.

참성단의 보수와 개축은 여러 차례 이루어졌는데 조선 인조 17년(1639년)의 중수는 일반 년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나 조선 숙종 43년(1717년)의 중수는 참성단중수비를 통해서만이 확인된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또 하나의 안내문에는 바윗면에 음각된 비문을 그대로 적은 것과 함께 풀어 쓴 내용이 적혀 있다. 중수비를 보느라 잠시 멈추었던 발걸음을 계속 이어간다(13:32). 이제부터 아기자기한 암릉길로 바뀌는 등산로가 보는 이의 가슴을 콩닥거리게 한다. 안전줄로 시작되는 암릉길, 조금 전 참성단과는 달리 한적한 여유로움에 조망마저 시원스러우니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나. 살짝 내려서는 길에 뒤돌아 보는 풍경 또한 이렇게 좋을 수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가야 할 방향을 보고 또 본다. 야트막하게 내려선 후 다시금 469봉을 향해 오름을 시작한다. 하늘선을 그리는 바위 위로 걸어가는 대구팀 기경환님의 실루엣은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삼각점이 매설된 아니 바위 표면에 삼각점 표기를 한 469봉이다(14:12).

 

온통 바위라 그러했을까, 삼각점의 표주석 대신 너른 바윗면에 십자선 표시를 하고 그 앞쪽에 안내문을 세워 놓았다

* 삼각점(강화 422)의 위치 :  동경 126° 26' 11.45 GRS80 / 북위 37° 36' 45.84 GRS80 / 높이 468.87m  |  2002.10

 

그런데 국가기준점발급시스템 홈페이지에서 '강화 422'을 검색하면 이곳 역시 사용불가 삼각점이란다. 도대체 실물이 존재하는 삼각점과 안내판까지 세운 삼각점을 사용불가라 하면 어떤 것이 사용가능한지 의아해진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정수사와 함허동천으로 분기되는 곳을 만나는데 암릉길은 오른쪽 정수사 방향으로 이어진다(14:19).

 

우리의 하산지점은 함허동천이기에 아쉽지만 좌측방향으로 방향을 바꾸어 내려간다. 내리막길은 이내 급경사로 바뀌게 되는데 안전을 위하여 나무계단길로 되어 있으며 '114계단'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 연갈색의 참나무 잎사귀로 치장한 내리막길은 함허동천 계곡로 등산 안내도가 있는 쉼터 겸 전망대를 거쳐 계속 고도를 떨어뜨린다. '↓참성단 1km  ↑함허동천 1.8km  →정수사 0.7km'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고서야 가파르던 경사가 조금 수그러들고(14:25) 약간의 나무계단을 더 내려가 흙길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이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한다. 커다란 돌들이 많은 내리막길에서 돌과 돌 사이에 끼인 채 자란 참나무의 생명력이 잠시 시선을 붙잡는다.

 

확연히 표가 나게 경사가 수그러들은 산길에 만난 넓은 너럭바위에서 앞서 간 일행들이 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14:52). 다 왔다는 생각에 잠시 쉬어가는 휴식은 달콤하기만 하고 간식거리로 웃음을 자아내는 분위기에 젖어 십여 분을 쉬었다가 일어난다. 정수사로 분기되는 갈림길을 지나면 산길 우측편의 계곡이 보이고 그 비탈진 바윗면에 새겨진 네 자의 글자가 지명화 된 곳, 즉 함허동천에 이른다(15:11).

 

함허동천 유래판 옆의 나무다리는 조선 전기의 승려 기화가 썼다는 '涵虛洞天' 네 글자를 볼 수 있는 곳까지 연결되어 있다.

 

함허동천(涵虛洞天)의 유래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마니산 계곡에 있는 함허동천(涵虛洞天)은 조선 전기의 승려 기화(己和)가 마니산(摩尼山:해발 468m) 정수사(淨水寺)를 중수하고 이곳에서 수도했다고 해서 그의 당호(堂號)인 함허를 따서 '함허동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계곡의 너럭바위에도 기화가 썼다는 '涵虛洞天' 네 글자가 남아 있는데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함허동천은 산과 물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으로 함허대사가 이곳을 찾아 '사바세계의 때가 묻지 않아 수도자가 가리 삼매경에 들 수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한다.

인근에 회정선사가 창건하였다는 정수사가 있으며 마니산 정상에는 국조 단군께서 하늘에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쌓은 참성단(塹城壇)이 자리잡고 있다.

 

함허동천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촬영하는데 산행시점인 하늘재에서 그리고 우연히 마지막 끝점인 이곳에서도 단체사진 촬영이다. 이제 산행이 모두 끝났고 남은 것은 시멘트 도로를 따라 매표소까지 내려가는 것이다. 함허동천 야영장과 壇儉摩尼崇慕(단검마니숭모)비를 보면서 내려가다 보니 식수대를 지나 매표소에 이른다(15:37). 예상시간보다 조금은 지체되었지만 그래도 대구팀과 함께 한 산행이라 그런지 즐겁고 행복했던 산행이었다. 매표소를 지나 조금 더 내려가면 만나는 주차장에 도착하니 아침에 헤어진 대구팀의 전세버스가 보인다.

 

모두 하산한 것을 확인한 다음 강화도를 떠나는데 일요일답게 초지대교를 건너는 도로는 상습정체 구간임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어렵게 초지대교를 건넜나 싶었지만 양촌읍의 풍물장인지 도로를 점령한 차량들로 김포 장릉으로 향하는 길은 멀기만 하다. 함허동천주차장에서 김포시 장릉까지 삼십 여 킬로미터의 거리를 근 한 시간 반나 걸려서 도착했으니 참으로 멀기만 한 것 같다. 하지만 도로에서의 짜증도 잠시 뿐, 서울팀의 범솥말 선배님이 사전 예약한 장릉갈비식당에서 부딪치는 술잔으로 잊혀진다. 이렇게 깊어가는 시간만큼 쌓여지는 서울-대구팀의 끈끈한 우정과 함께 열네 번째 합동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