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팀 합동산행-13] 거창 현성산 → 금원산 - 덕유산 주능선을 한눈에 보는 조망지
[산행일시] 2013.04.28(일) 10:46~18:12(7시간 26분 // 산행시간 : 5시간 58분 / 휴식시간 : 1시간 28분)
[산행인원] 12명(서울팀 4명, 대구팀 8명 / 존칭 생략)
(서울팀) 시인마뇽, 하이맛, 범솥말, 성봉현
(대구팀) 권재형, 박영홍·천정미, 임상택, 차성섭·나경숙, 차수근·박금선
[접 근] 서울역 → 동대구역 : 열차(KTX) / 동대구역 → 현성산 미폭 : 대구팀 전세버스
[이 탈] 금원산 자연휴양림 매점 → 동대구역 : 대구팀 전세버스 / 동대구역 → 서울역 : 열차(KTX)
[산행시간] 미폭(10:46) → 무덤(11:13~11:20) → 현성산(12:28~12:40) → 서문가바위(연화봉, 13:10~13:37)
→ 976봉(수승대 갈림길, 14:00) → 갈림길(14:47~14:59) → 1144봉(15:34) → 금원산(16:19~16:29)
→ 임도(850능선, 17:21~17:24) → 유안청폭포(17:35~17:39) → 자운폭포(17:54~17:59) → 매점(16:12)
[산행지도] 국제신문사 '근교산&그너머' 현성산 등산지도(2010.08) 편집
(원본 출처)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200&key=20100813.22020220734
[구글 어스] 2013-04-28_거창_현성산~금원산.gpx
[산행기록]
올해도 어김없이 4월이 왔듯이 대구팀과의 합동산행일 역시 조용히 다가서고 있다. 2월에 산행지를 결정할 때만 해도 멀게만 느껴졌는데 열차표를 예약하기가 무섭게 약속된 산행일이 되었다. 새벽녘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면을 하고 등산복으로 입은 후 5시 15분 경 집을 나선다. 지하철로 동묘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여 서울역 KTX 대합실에 도착하니 울산대학교 건축학부장을 거쳐 지금은 평교수로 재직하시는 하이맛 선배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그리고 잠시 후 야간근무를 마치고 조금 일찍 교대를 하고서 달려온 범솥말 선배님도 도착하고…
부산이 종점인 경부선 KTX 열차는 정시에 서울역을 출발하여 광명역에 도착하는데 시인마뇽 선배님이 안보인다. 반면 4좌석을 연번으로 예약하였는데 낯선 승객이 시인마뇽 선배님의 좌석을 예약하였다고 한다. 광명역에서 승차한 시인선배님에게 전화로 승차여부를 확인해 보니 11호차 11D 좌석에 승차하셨다고 한다. 우리는 14호차인데 그만 좌석번호인 11번만 신경쓰다가 14호차가 아닌 11호차 11번 좌석을 예약한 것이다.
대전역을 거쳐 공사 중인 대구역을 서행하면서 지나 동대구역에 도착하니 시간이 5분여 지연되었다. 개찰구를 지나 승차장으로 연결되는 통로까지 들어온 임상택 대장과 권재형씨가 반갑게 맞이하여 준다. 개찰구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참사랑산악회 회원님들과 조우하여 늘 보았던 25인승 소형버스가 있는 곳으로 이동, 중요한 약속이 있는 기경환씨와는 저녁에 다시 보기로 하면서 거창을 향해 동대구역을 떠난다.
이동 중 공사가 중단된 88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잔치국수로 아침을 해결하고 거창으로 나간 후 대박님을 태운다. 고향이 거창인 대박 총무님은 토요일 초등학교 동창모임(?)으로 거창에서 합류한 것이다. 지난 3월에 백두대간 6,7구간 산행 시 이용하였던 서흥여객 농어촌버스 종점이 눈에 들어오고 빼재로 가던 길을 달려가다가 현성산 방향으로 틀어 가다보니 산행 들머리인 미폭을 만나 잠시 정차한다.
버스에서 모두들 내려 산행 준비를 하고 40m쯤 되는 바윗면의 미폭을 배경삼아 단체사진을 촬영한다. 말이 폭포이지 아직은 졸졸 실개천처럼 물이 흘러 내릴 뿐인 미폭(米瀑),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미폭(米瀑) "쌀이는 폭포", "동암폭포"라고도 부른다. 지재미 골짜기 어귀 산기슭에서 너럭바위 위를 비스듬히 흘러내리는 폭포다. 폭포수가 흐르는 모양이 쌀이 흘러 내리는 듯하여 쌀이는 폭포라고도 하고, 옛날 폭포 위쪽에 동암사(東庵寺)라는 사찰이 있어서 쌀씻는 뜨물이 항시 바위를 흐르고 흘러 "쌀이는 폭포" 또는 "동암폭포"라고 하였다. 사찰이 없어지고 나서 그 자리에 서당이 생겼으므로 "동암자 서당터"라고 하는데 지금은 주춧돌만이 남아 있다.
[미폭(米瀑) 안내판 전문]
휴대폰의 'Tranggle GPS' 앱을 실행하고 미폭 우측편에 자리잡은 의성김공지묘 옆의 철망을 넘어 출발한다(10:46). 산길은 바로 암릉길로 바뀌는데 어렵지 않은 쉬운 바윗길이 현성산까지 이어져 쏠쏠한 재미를 더해줄 것이다. 초반부터 거친 오름길로 시작하는 현성산 능선, 겨울과 여름을 오락가락하는 요즘 날씨에 적응하지 못한 것인지 산길을 조금 올랐을 뿐이데 초여름을 방불케 하는 날씨에 벌써 등은 후줄근이 땀으로 젖는다.
고도가 높아질 수록 시야가 트여 오늘 하산지점이 될 금원산이 보이고 멀리 기백산과도 눈맞춤을 한다. 현성산 오름길의 능선에 자리잡은 경주정공지묘 앞에서 쉬고 있는 선두와 합류하여 땀을 잠시 말린다(11:13). 단체산행에서는 항상 후미를 지키는 습관 때문에 오늘도 시인마뇽 선배님과 후미로 오르는 것이다. 선두팀이 건네주는 간식을 먹으면서 쉬었던 짧은 휴식을 접고 다시 출발한다(11:20).
계단을 오르고 바윗길을 오르는 등 쉬엄쉬엄 걷다 보니 밑에서 보았던 거대한 암릉 구릉을 만난다(11:36). 안전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는 전망지인 듯한 이곳에서는 현성산이 윗편으로 가깝게 보인다. 올라온 길을 내려다 보고 기백산에서 금원산으로 이어지는 하늘선을 사진기에 담고서 앞서간 선두를 따라 길을 이어간다.
암릉 구릉을 좌측 아랫편으로 우회하면서 연결되는 산길을 따라 오르니 직각으로 잘려나간 거대한 바위가 나오고 이어서 지도 상에 표기된 작은구름다리를 만난다(11:54). 구름다리라 하여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였지만 막상 만난 구름다리는 다리라 부르기에는 뭔가 부족한 것 같다. 1m 정도의 틈새를 이어주는 다리를 작은구름다리라고 표현한 것으로 다리를 건너면 현성산이 코 앞에 다가선다.
들머리인 미폭을 출발하여 올라왔던 산길을 뒤돌아 바라보니 공룡의 등뼈처럼 솟아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 바윗길이 가지말라고 시선을 사로잡지만 선두가 기다리고 있을 현성산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추락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시설물이 설치된 암릉길이 끝나고 짧지만 제법 경사진 암릉길을 오르면 어느새 현성산 정상부의 아랫편에 세워진 이정표[↖문바위하산 2.5km ↓미폭하산 3km ↗금원산 4.5km]를 만난다(12:27).
금원산은 직진해야 하지만 현성산 정상부를 향해 좌측의 바윗길에 내려진 줄을 잡고 올라선다. 커다란 바윗덩어리로 이루어진 현성산 정상의 기초대에 올려진 작지만 소박한 정상석이 반겨 주는데 거창경찰서 산악회에서 세운 것으로 전면에 '玄城山 (거무시) 965m'라고 새겨져 있다(12:28).
국제신문사(http://www.kookje.co.kr)의 현성산 기사를 보면 '거무시'는 현성산의 옛 이름이라 한다. 다음은 국제신문사의 '근교산&그너머' 2010년 8월 12일자로 연재된 현성산의 기사를 인용해 본다.
원래 현성산은 '거무시' 또는 '거무성'으로 불렸다. 성스럽고 높음을 뜻하는 '감'의 한문 표기를 검을 현(玄)으로 해서 현성산이 됐다는 것이다. '감뫼-검산-거무성-거무시'로 변천한 것의 한문 표기라는 것. 또 '거무시'를 '검은 성'으로 해석해 현성산으로 썼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 현성산의 모산(母山)인 금원산(金猿山) 역시 정상석 뒷면 원래 이름이 '검은산'이었다고 설명돼 있다. 금빛 원숭이가 날뛰는 것을 붙잡아 바위에 가두었다는 전설 때문에 금원산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금원산 역시 '검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성산 남쪽에 솟은 오두산(烏頭峰) 역시 원래 이름이 '가막달'이다. 이 산의 정상에 거무스름하고 둥근 바위가 얹혀 있다. 역시 '검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거창 위천면을 둘러싼 금원산 현성산 오두봉 등은 모두 '검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검다'는 말의 뜻을 단순히 색상의 의미로만 보기보다는 '높고 성스럽다'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현성산의 정상에서는 사방으로 막힘없이 트이는 조망이 일품이다. 지난 2월에 다녀온 백두대간 상의 덕유산 주능선이 하늘선을 그리면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금원산에서 기백산으로 힘차게 달려가는 능선이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산객들의 발걸음을 잠시 붙잡는다. 덕유산의 주능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은 백두대간의 능선을 따라 속리산을 향해 달려가는 듯하다. 잠시나마의 짧은 꿈에서 깨어나 단체사진을 촬영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금원산을 향해 모두들 출발하지만 다시금 정상을 외롭게 지키는 정상석을 사진기에 담고서 일행을 쫓아 내려간다(12:40).
현성산 정싱을 내려와서도 계속되는 암릉의 바위 전시장은 햇빛에 반짝이는 하얀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현성산을 떠나는 아쉬움인가, 다시 한 번 뒤돌아 본 후 앞서간 일행들을 쫓아 발걸음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거대한 바윗덩어리의 허리를 가르고 삐져나온 소나무 한 그루 앞에서 범솥말 선배님의 권유로 권재형님이 포즈를 취한다. 아마도 수십 년을 살아을 법한 작지만 밑둥이 두툼한 소나무이다.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소나무를 뒤로 하면서 서문가바위를 향해 계속 걸어간다.
얼마나 걸었을까, 참사랑산악회 차성섭 회장님과 회원님들 그리고 하이맛 선배님도 함께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였듯이 조금은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각자의 먹거리를 풀고 있는 중이다(13:10). 푸짐한 산상 만찬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먹는 즐거움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제법 흘렀나 보다. 머물렀던 흔적을 깨끗이 지우고 먹은 만큼 움직이기 위해 자리를 떠난다(13:37).
연화봉으로도 불리우는 서문가바위에 대한 국제신문의 기사를 찾아본다. 서문가바위라는 이름은 임진왜한 당시 서씨와 문씨 성을 가진 두 남자가 한 여인과 함께 이 바위 아래 석굴에서 피난생활을 했는데 그 여인이 아이를 낳자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어 성을 서문(西門)씨(氏)로 붙였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것은 전설일 뿐이다. 안음 서문씨의 시조는 고려 말 공민왕의 왕비였던 원나라 노국공주를 따라 원나라에서 건너온 서문기(西門記)이며, 왕으로부터 안음군(현재 거창 위천면, 함양 안의면 일대)의 땅을 식읍으로 받아 이 지역에 정착했다고 알려져 있다. 서문기는 이후 고려가 패망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금원산 자락의 바위 암봉 아래에 숨어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 암봉이 현재의 서문가바위일 가능성이 높다는 설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도 한다.
거대한 바윗덩어리로 이루어진 서문가바위 정상부에 올라 보려 하였지만 식사와 함께 한 반주 때문에 포기한다. 아쉽지만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미련을 접고 금원산을 향해 길을 이어간다. 바위와 소나무가 만드는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몸과 눈으로 보고 느끼면서 암릉을 넘다 보니 거창의 수승대유원지로 분기되는 갈림길이 있는 976봉의 정상을 넘어 이정표를 만난다(14:00). 이정표에는 [↑금원산 3.9km ↓현성산 1.0km →수승대 6.5km]라고 표기되어 있다.
지금까지는 바윗길이었던 반면 금원산 가는 길은 전형적인 육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드러운 흙길로 이어진다. 일찌감치 멀어져 간 선두팀의 모습은 포기하였으므로 상대적으로 걸음이 늦은 시인마뇽 선배님과 범솥말 선배님 그리고 권재형님과 함께 유유자적 유람을 하듯이 나뭇가지로 막은 두무골 하산로의 갈림길을 지난다(14:07).
키 작은 산죽밭을 지나고 바위에 붙어 있는 석이버섯도 보아 가면서 지도 상 쉼터를 지나고 996봉을 넘어서니 이정표[←금원산 정상 2.7km, ↓문바위 2.5km]가 있는 갈림길을 만난다(14:47). 이곳에서 참사랑산악회의 총무인 대박님 부부가 쉬고 있는데 산수화님의 다리근육 경련 때문에 문비위로 하산하겠다는 대박님 부부를 설득하여 일단 가는데까지 가 보기로 하고 다시 출발이다(14:59).
금원산을 향해 고도를 서서히 올리는 주능선에도 봄이 찾아왔는지 진달래가 드문드문 피어 있다. 잡목이 없어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지나온 현성산과 서문가바위를 잠시 돌아보는 등 후미팀의 발걸음에 맞추어 걷다 보니 금원산까지 2.0km, 문바위까지 3.0km 남았다고 표기되어 있는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서 임상택 대장님을 만난다(15:08). 아마도 후미인 우리가 너무 늦어서 기다리고 있었던 듯하다.
이곳에서 시인마뇽 선배님은 금원산을 여러 번 올랐기 때문에 문바위로 하산하겠다고 하신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선배님 때문에 산행시간이 자꾸만 늦어지는 것이 부담스러워 그렇게 한 것이었다. 문바위 방향으로 홀로 내려가시는 시인마뇽 선배님을 보면서 선두를 쫓아 걸음을 재촉한다(15:10). 금원산 정상을 향한 은근한 오르막길이 대박님 부부에게는 다소 버거운지 중간중간 잠깐씩 쉬면서 오른다. 그렇게 힘든 오르막길에 '금원산 휴양림(1코스) 3.4km' 이정표가 있는 1144봉 바로 전의 갈림길을 지나고(15:21) 산죽밭을 거쳐 1144봉에 올라서니 금원산을 중심으로 좌우로 동봉과 서봉이 서로 어깨를 견주고 있다(15:34).
이제 이백여 미터의 고도차를 극복해야 하는 오름길이 시작되는데 산수화님의 배낭을 매고 앞서간 권재형님은 보이질 않고 경남소방서 119 구조대의 '현위치 번호'를 헤아리면서 오르다 보니 어느새 금원산 정상이다(16:19). 금빛 원숭이의 전설이 깃든 금원산(金猿山), 그 정상에서 선두팀과 합류하여 간식을 먹으면서 시원스런 조망을 즐긴다. 하지만 조망의 여유도 잠시 뿐 한결같이 떠나지 않는 덕유산 주능선과 이제는 이별할 시간이 되었나 보다. 십여 분의 휴식을 끝내고 많이 지체된 산행시간을 단축하기 위하여 서둘러 동봉으로 이동한다(16:29).
내리막길이 끝나는 지점의 헬기장을 지나 다시 살짝 올라서니 금원산보다 3m 정도 낮은 동봉의 돌탑을 나온다(16:33). 기백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능선이 와보라 손짓하지만 오늘은 이곳에서 금원산 자연휴양림으로 내려가야 하기에 언젠가 현성산에서 금원산을 거쳐 기백산까지 이어지는 능선 종주를 꿈꾸면서 유안청폭포 2코스로 하산한다(16:36).
암산의 현성산에서 육산의 금원산으로 산길이 이어진 것처럼 완만하던 산길은 이제 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를 향해 다소 가파른 내리막길로 얼굴을 바꾸어 갈길이 바쁜 산객의 발목을 잡는다. 그나마 금원암과 그 너머의 현성산, 서문가바위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는 것으로 위안 삼으며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금원산 2-3' 구조표시목이 있는 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17:04~17:07) 비탈진 산죽밭을 내려가니 임도가 나온다(17:21). 국제신문사 지도에는 표기되지 않은 임도로 해발고도 850m 쯤인 곳으로 금원산 등산로 길목에 세워진 안내도를 보면 좌로는 지재미골, 우측으로는 생태수목원을 거쳐 관리사무소로 연결되는 임도이다. 하산로는 철제 이정표가 가리키는 유안청폭포 방향으로 임도를 가로질러 계곡길로 내려가게 된다.주변 상황을 사진기에 담느라 늦어진 발걸음을 일행을 쫓아 돌계단으로 옮긴다(17:24).
하산로 우측편으로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가 시원스럽게 들리고 간벌지를 지나니 유안청1폭포가 반겨준다(17:35). 유안청폭포의 원래 이름은 가섭동폭이었다고 한다. 옛날 금원산에 자리한 가섭사에서 비롯된 것을 조선 시대에 들어 유생들이 지방 향시(鄕試)를 목표로 공부하였던 공부방 격인 유안청(儒案廳)이 자리해 유안청 계곡으로 부르게 되었다 하며, 3층 폭을 이루는 190m의 와폭과 직폭이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잠시 땀을 식혀가기에 적당한 곳이지만 갈 길이 머니 그저 꿈만 꿀 뿐 바로 떠난다(17:39).
폭포수는 바로 완만한 미끄럼틀 같은 유안청2폭포를 지나면서 이내 숲속수련장으로 연결되는 도로의 다리를 만난다(17:47). 흙길을 벗어나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는 길목에 숲속의 집 개축공사 현장이 나오고 나무다리로 물길을 건넌다. 차도와 인도가 구분이 없던 도로는 계곡쪽으로 만들어진 나무데크의 보행로로 바뀌어 자운폭포를 만나지만(17:54~17:59) 다시금 도로로 내려선 후 기백산 등산로가 있는 삼거리를 지나 우측편의 물놀이장을 보면서 관리사무소에 이른다(16:12).
산행 전 예상했던 시간보다 많이 늦어진 현성산~금원산 연계산행이 무사히 끝났음을 고마워하면서 대기 중인 버스에 승차, 거창을 벗어나려 하니 정체가 시작되었는지 차량의 흐름이 둔하다. 낯선 이방인이 알지 못하는 길로 움직인 버스는 거창을 벗어나 88고속도로에 올라서서 대구를 향해 달리지만 미리 예약한 열차시간 때문에 뒷풀이가 힘든 상황이 서운하다는 대구팀의 설득에 밀려 KTX 열차편을 한 시간 늦춘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도착한 대구 시내의 모처에서 한우와 함께 뒷풀이를 하면서 2007년 5월의 첫 합동산행을 시작으로 13번 째 맞이한 서울 독립군과 대구 참사랑산악회와의 우정산행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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