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하(http://www.koreasanha.net) '산행기 게시판'에 올려진 『산수』님의 글을 퍼온 것입니다.
산수 | 2006-09-28 19:41:07, 조회 : 1,778, 추천 : 0 |
2006년 9월 28일 (목) 11:00 시사저널 인간의 발길질에 발가벗는 설악산
설악산은 하루 종일 등산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사람들이야 즐거울지 몰라도 산은 몸살을 앓는다.요즘 설악산이 사람들의 무심한 발길에 얼마나 망가졌는지 알리고 다니느라 바쁜 사람이 있다.설악녹색연합 대표 박그림씨(59). 그는 1992년부터 산양을 비롯한 설악산의 야생을 보호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그는 조사차 설악산에 들어설 때면 항상 생식을 한다.무거운 배낭을 메고 어찌나 오래 설악산을 헤매고 다녔는지 쇄골이 다 내려앉았다.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그의 독백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여기 실린 사진도 모두 그가 흘린 땀의 결실이다.
1992년 설악산 입장객 수가 3백만명을 넘어선 이래 그 수는 해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특히 10월에는 말 그대로 인산인해다.지난해 10월 주말에 외설악 탐방로에 하루 5만명의 인파가 몰렸다.외설악 탐방로의 1일 수용 가능 인원은 1만5천명이라는 연구 보고가 있다.산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지 이미 오래 되었다. 4백만명에 가까운 탐방객 중 40만명 정도는 대청봉에 오른다.지난해 10월 연휴 대청봉에 이르는 가장 짧은 코스인 오색매표소를 지나는 길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밤 1시가 되면 벌써 전국의 산악회 버스들이 속속 매표소 앞 주차장에 도착해 등산객들을 토해놓는다.무박 산행객들이다.일출 두 시간 전에야 입장할 수 있다는 규정은 사문화된 지 오래이다.국립공원관리공단측에서는 밤 1시30분이면 문을 열고 관광객을 들여보낸다.규정을 지키려고 하자 관광객이 합세해 철문을 밀어 넘어뜨리고 난입한 일도 있었다. 매표소를 지난 사람들은 좁은 등산로를 꽉 메우고 어깨를 부딪치면서 전진하기 시작한다.새벽 3시께가 되면 오색매표소에서 대청봉에 이르는 길에 도회지의 자동차 행렬 같은 긴 불꽃 띠가 그려진다.그리고 잠시 뒤에는 대청봉이 불바다가 된다. 중청대피소는 난민 수용소를 방불케 한다.대피소를 보면 일행들에게 “저기 매점이 있다.빨리 와”라고 소리친다.탈진한 등산객의 신음 소리, 일행을 부르는 소리, 라면 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범벅이 되어 대피소는 소란하기 짝이 없다.산양은 2백m 밖에서 낙엽 떨어지는 소리도 감지해내는 민감한 동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다. ‘생맹’ 양산하는 대피소…산양 70~80여 마리뿐 10월 연휴 직전에는 수학여행 철이다.전국의 1천3백여 개 중·고등학교에서 80만명이 넘는 학생들이 몰려온다.수백 명씩 단체로 오니 울산바위조차 못 보고 비선대 정도나 보고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설악산에는 일곱 군데의 대피소가 있다. 대피소는 말 그대로 산을 오르내릴 때 기상 이변이나 급박한 상황에서 잠시 머무는 곳이다.그러나 설악산의 대피소는 여관이자 레스토랑이다.조리된 음식과 술을 팔고 담요를 빌려주고 있어 산을 빈 몸으로 올라도 된다는 그릇된 생각을 심어준다.사람이 산을 찾는 까닭은 자연과 친해지기 위해서다.자연과 친해지려면 그 두려움도 알아야 한다.두려움에 대비해 무거운 배낭을 꾸리는 것이다.편의점이요, 매점 역할을 하는 대피소는 사람들을 생맹(생태 장님)으로 만든다. 사람이 이렇게 밀려드니 내설악·외설악의 거의 모든 등산로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특히 주등산로인 천불동 계곡과 오색 등산로는 깊이가 2m 이상 깎이고, 폭이 20m 이상 늘어난 곳도 있다.1996년부터 1999년까지 모두 9억원을 들여 대청봉 훼손지에 산 밑의 강바닥 흙을 퍼다가 깔았지만 밑 빠진 독 물 붓기이다.
가장 불쌍한 것은 벌거벗은 산이고, 그 다음은 침묵하는 산이다.몇 년 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심사자들과 설악산에 올랐다가 “이 산은 왜 이리 조용하냐”라는 질문을 받고 당황했던 적이 있다.심사위원의 그 한마디로 설악산의 문화유산 지정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1960년대 말까지 설악산에는 표범을 비롯해 반달가슴곰·꽃사슴·사향노루·양 등이 떼 지어 살았다.하지만 지금은 눈이 와도 짐승 발자국을 찾기가 힘들 정도이다.
1일 입산객 수를 산이 감당할 수 있는 선으로 제한해야 한다.무엇보다도 산에 오는 사람, 산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지리산에서 성장한 국내 유명 산악인들이 에베레스트 산의 쓰레기를 치우겠다며 등반대를 조직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어머니의 산은 죽어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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